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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Apr 25. 2024

자기관리역량

육아를 하다 보면 뜻 모를 우울감에 빠질 때가 있다.

이전부터 줄곧 해오던 일들이 새삼 더 힘들고, 벗어날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지는 때가.

세상에서 나만 그런 감정에 휩싸이는 것처럼 억울하고, 남편의 토닥임도 그저 순간의 모면을 위한 손쉬운 위로처럼 느껴져 달갑지 않은 때가, 있다.



지난주부터 이따금씩 그랬다.

우울감은 번식 능력이 좋은 맹수처럼 번져갔고 나를 집어삼켰다. 한 곳에 정착하기로 한 유목민처럼 자리를 잡고 말뚝을 박았다. 마음은 먹구름이 드리운 날씨보다도 어두웠고 그런 날들마다 가족들을 향한 날 선 말투에 집안 분위기는 메마른 가뭄처럼 쩍쩍 갈라졌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엔 잠이 쏟아졌다. 자도 자도 피곤했고 맥없이 쓰러졌다. 하원만 아니라면 그대로 줄곧 몇 날 며칠을 잘 수 있을 법한 컨디션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아무런 수확 없이 보내버리고 나면 또다시 좌절감과 함께 그 어떤 실망감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 삶이 앞으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거라는 무망감이, 자기 확신보단 혐오 따위가 나를 잠식했다.




유치원에서 강사를 초빙해 진행한다는 학부모 교육에 참여하겠다고 신청서를 낸 것은, 우울감으로 점철된 하루에 어떤 변화가 필요해서였다. 우울감이 가장 먼저 손길을 뻗친 일이 육아였고 내가 이대로 주저앉는 일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일 터였다. 육아가 돌연 힘들어진 것은 그래서 내 삶에서 유독 위급한 일이자 위험한 사이렌이었다.


강의의 내용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유아교육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우리가 받아온 교육 과정은 깊이가 없는 교육이었고, 앞으로 개정되는 교육 과정은 깊이가 있는 바야흐로 ”역량 교육“의 시대라는 것. 강의 중에 내가 깊이 빠져들고 주의 깊게 들은 것 중 하나는 ’자기관리역량‘이었다.

‘자기관리역량’이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 역량에 대해 굳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우울감에 빠지는 일말의 이유 중 하나로 이 역량의 부족은 아닐까 생각해서이다.


나는 지난 23년, 브런치에 일기를 게으르게나마 써낸 이유로 좋은 제안을 받아 월간에세이 9월호에 내 이야기를 기고한 적이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잠시 빌리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내 삶에서 나라는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만 했고 하기 싫은 것은 웬만하면 하지 않았으며 하고 싶어 시작한 일에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교묘하게 피해 가거나, 관둬버리는, 어쩌면 무책임한 삶을 살았다. “


내 기억으론 정말 그랬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하던 습관만 떠올려 보더라도 나는 하고 싶은 교과목만 공부했고, 하기 싫거나 어려운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고, 하고 싶은 교과목마저 주의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었다.

이는 얼마 전 친정 집에 아직 묵혀둔 오래된 책상 서랍을 정리하며 발견한 모의고사 성적표로 말미암아 단순 기억뿐 아니라 확신이 되었다. 성적표는 고스란히 내가 문학, 언어(그 와중에 영어는 제외한), 사회문화만을 공부하고 수리영역은 완전히 포기해 버린 사실을 고스란히 수치화하고 있었다.  


오늘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키고 유치원 학부모 교육에 참석해 얻은 사실은 나의 지난 삶들이 스스로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자기관리역량의 부족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탄탄하지 못한 지반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쌓아봤자 오히려 무너지는 일을 부추기는 셈이다. 그러니 하기 싫은 육아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따금씩 우울감이 똬리를 트는 일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당연히 돌보아야 할 내 아이들과 가정을 두고, 어처구니없게도 억울해지고, 마치 얼른 해치워야 하는 사무적 일과처럼 속도전으로 대하는 것 아닌가. 두 아이들이 입 안의 혀처럼 굴어줄 리가 만무한대도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래성도 성이라고 짓밟히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 아닌가.

그리 깨닫고 나니 종종 나를 옭아매고 며칠씩 놓아주지 않는 우울감이, 하기 싫은 일을 어쨌든지 간에 해내고 있다는 자기 위로 혹은 자만, 우월감에서 온 가짜 우울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 어린아이를 기름.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을 하며 도리어 나를 돌아보고 있는 것을 두고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도 자란다더니, 아이보다 더 부족함이 많은 엄마라도 육아를 할 자격은 되는 걸까.


도무지 정답을 모르겠지만 노력은 멈추지 않겠다. 허공에서 비행을 멈추지 않는 새들의 날갯짓처럼, 한없이 넓은 바다를 끝도 없이 헤엄치는 물고기 떼처럼, 지독히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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