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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y 01. 2024

나물을 좋아하는 이유

짜릿한 손맛과 엄마의 사랑

4월 첫째 주 꽃샘추위가 그러질 

나물들이 땅속에서 자라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것을 보상받듯 이곳저곳 무리 지어 푸릇푸릇 땅을 비집고 나온다.


나물이야 아는 이에게는 약이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한낱 풀이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나물 박사가  계셔서 약초들을 한 달 잠깐 맛볼 수 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엄마이다.


엄마는 시골이 아니라 촌이라고 해야 더 어울리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농사를 짓던 외갓집의 일 잘하는 맏딸이었던  엄마는 농사철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 연례행사처럼 나물을 캐러 다니는 데 중했다.


몇 년 전에 엄마와 함께 나물을 뜯으러 다녀 보니 나물 캐기가 왜 연례행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그 손맛이 강렬했다.


외갓집의 몇 안 되는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거나 시집을 그 동네로 온 사람들인 지라 그 동네 어느 산 어디쯤 나물이 많은지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나물을 누군가 먼저 캐 갈까 은근슬쩍 견제하기도 하며 그렇게 봄을 보낸다.



나물 이름들은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생소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꼬치미 =고비, 추띠=취나물, 머구잎=머위, 배배추=비비추 기타 등등

나물들검색해 가며 등록된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이름도 모르고 먹는 나물들이 꽤 많다.


4월 5일을 기점으로 가장 먼저 목표물이 되는 나물은 바로 꼬치미(고비)이다.

고사리처럼 생긴 포자 식품인 이 나물은 고사리 보다 훨씬 맛있고 비싸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나물이다.


어느 해 4월

엄마와 나는 꼬치미를 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약초꾼처럼 깊은 산속을 돌아다녀야 하고 듣도 보도 못한 벌레들의 공격을 막아야 다. 몸빼바지와 긴소매 티를 입고 농사용 장화로 중무장 후 가장 중요한 나물을 담아 올 보따리를 하나 허리에 맨다.


보따리는 다름 아닌 보자기를 엄마가 즉석에서 큰 주머니처럼 매 허리춤에 차는 게 다다.

이렇게 보따리를 허리춤에 고 나면 마법처럼 내 행색은  6.25 동란 피난민 급으로 변한다.


나물을 캐기 전 이미 이 정도 겉보기 등급이 연출되니 나물 캐기가 끝나면 어떻겠는가?


한 번은 나물을 찾아 산을 헤매다 저녁 무렵 외갓집이 아닌 다른 동네로 내려오게 되었다. 외갓집에서 대기 중이던 남편에게 위치를 설명하고 데리러 와달라 요청했다. 위치를 설명해도 처 외가 동네 어디가 어딘지 알 턱이 없는 남편이 재차 질문을 하는 순간  휴대폰이 바로 옆 강(시골 말로 거랑)에 빠지고 말았다.

엄마는 나를 괜히 데려와 휴대폰 침수 사태를 만들었다며 안타까워하셨지만 돌아갈 일이 더 걱정이었던 나와 엄마는 근처 보이는 한 집으로 전화기를 빌리러 가게 되었다. 때마침 집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나와 있었다. 피난민 꼴에 정체 모를 보따리를 허리에 찬 두 여자의 방문에 놀라고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짓던 아줌마는 결국 찝찝했는지 전화기를 빌려주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그런데 나 같아도 빌려주기 찝찝했을 것이라 이해가 될 정도니 그때 우리 모자의 행색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이 되는지..?


중간에 말을 하다 갑자기 전화가 끊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차를 몰고 내려온 덕에 나와 엄마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대충 이런 느낌~~ 모델은 아빠


어김없이 가파른 산을 오르며 꼬치미 군집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늘진 곳에서 대구이라고 하는 갈색 마른 잎을 찾아야 한다. (대구이 역시 그 동네 말이다.)

그 잎에서 포자가 뿌려지기에 그  주변에 꼬치미가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대구이 찾기도 꼬치미 찾기도 내 눈에는 쉽지 않았지만 나물 캐기 구력 60년 차 엄마 눈은 달랐다.

암모나이트 머리를 가진 꼬치미에 혼이 뺏긴 듯

내가 자세히 구별 방법을 알려 달라는 말을 내심 귀찮아하며 마냥 즐거워하기만 하셨다.

그리고 곧 나도 그 희열의 경지에 도달할 꼬치미 찾는 법을 터득했고 그때부터는 땅만 보며 산을 오르게 되었다.

몇 개 또는 수십 개의 꼬치미를 찾아내는 순간 심마니의 심봤다 급의 포효가 입 밖으로 자동 발사 되었다.


허리에  보자기에 꼬치미가 채워질 때 그 풍요로운 느낌이란 나물을 캐보지 않은 이는 절대 알 수 없으리라...

그렇게 우리 모녀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맸다.

고무장화에 다리가 쓸려 상처가 나도 아픈 줄 모르고 중독성 강한 나물 캐기에 열중하며 그 해 봄을 보냈다.


나물마다 나오는 시기가 다르니 꼬치미가 끝나면 엄마는 두릅, 취나물, 응개잎 등 이름도 생소한 나물들을 캐러 다니신다. 올해도 그랬다.

보드라운 비비추 나물을 마지막으로 엄마의 한해 나물 캐기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나물들은 각종 양념에 맛있게 버무려져 딸인 나의 밥상에 오른다.

엄마는 모른다.

내가 엄마 덕에 나물을 좋아하게 된 것을 말이다.

해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에 좋다고 해 주시는 그 사랑 덕에 나물을 좋아하게 된 것을 말이다.


요 근래 몇 년 동안의 봄은 나물을 캐러 못 갔다.

주말에 나물 캐러 따라가겠다는

나를 한사코 말리시는 엄마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척 고집을 피우지 않고 나물을 캐러 가지 않았다.


엄마는 주말 이틀 쉬는 딸이 나물 캐러 다니다 더 피곤할까 봐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하신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늘 똑같다.

때 네 시간도 보내고, 집도 치우고, 애들도 챙겨라

나물은 내가 캐서 줄 테니...


엄마는 일에 살림에 치이는 딸이 주말에 당신과 나물 캐기 위해 험한 산을 돌다 피곤할까 봐

또 험한 산을 타다 다칠까 봐

산속에서 벌레한테 물리기라도 할까 봐

같이 다니던 그때도 늘 걱정하셨고 지금도 늘 걱정하시며 못 오게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체력에 월요일 출근을 아예 무시하기도 힘들어 엄마 말을 듣는 척 따라나서지 않는다.


난 빨리 퇴직하여 엄마의 다리가 튼튼할 때 같이 나물을 실컷 캐고 싶다.

엄마와 함께 그 손맛을 다시 느껴 보고 싶다.

따뜻한 봄에 나물 봤다를 큰소리로 다시 외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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