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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y 17. 2024

한국에서 가져온 소중한 식재료

엄마의 사랑이 묻어 있는 음식


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가져오는 것은 음식과 식재료다. 출국하기 전날에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을 본다. 친정집 근처에 시장이 있으니 편리하다. 휴대폰에 적어 놓은 장 볼 목록을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가 알아서 각 물품별로 척척 거래하는 가게에 나를 데리고 간다.


“ㅇㅇ야, 이번에 뭐 사 갈라 카노?”

“어, 내가 적어 놓은 거 말해 볼게. 쌈채소, 애호박, 꽈리고추, 콩나물, 곱창김, 쥐포, 딸기, 참외, 배추김치, 물김치, 문어, 전복… 너무 많나?”

“하하, 그걸 다 우째 가져갈래? 뭐 트렁크에 짐이 별로 없긴 하더라만. 일단 엄마하고 장 보러 가자.”


친정집 현관에 세워 둔 돌돌이 쇼핑카트를 끌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철물점에서 2만 5천 원 주고 샀다는 철제 쇼핑카트에서 삐그덕거리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엄마, 이 쇼핑카트에서 소리가 많이 나네.”

그러게. 앞동 친구는 딸이 15만 원 주고 쇼핑카트 사줬다는데 그건 바퀴가 크고 잘 굴러가서 좋더라.”

“아니 무슨 쇼핑카트가 15만 원이나 해? 나도 하나 사 줄게 그럼.”

“아이고 야야 됐다.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생선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주인에게 미리 주문해 놓은 통영 자연산 돌문어를 보여 달라고 했다. 돌문어가 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다리가 모두 달려 있는지 확인했다. 가게 주인은 돌문어의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단맛이  거라고 했다. 크고 좋은 활전복도 골랐다. 주인아저씨는 문어와 전복을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쇼핑카트에 실어 주었다. 이어서 과일가게로 갔다. 딸기 2팩과 참외 10개를 구매했다. 딸기가 상하지 않도록 쇼핑카트 맨 위에 얹어 놓았다.


쌈채소를 사러 갔다. 상추, 고추, 꽈리고추, 애호박, 콩나물을 샀다. 싱가포르에서 비싸게 사 먹던 한국 야채를 1/3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욕심껏 많이 사고 싶었지만 한두 번 먹을 분량으로만 구매했다. 곱창김 한 속도 사고, 입이 심심할 때 남편과 함께 구워 먹을 쥐포도 샀다. 미리 주문해 둔 물김치도 값을 치르고 카트에 담았다. 구매한 물건이 너무 많아 가벼운 물건은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김치, 조선호텔 포기김치, 곱창김, 콩나물, 꽈리고추, 고추, 딸기


상추, 애호박, 깐 마늘, 쑥인절미, 백명란, 문어숙회, 양념에 재운 더덕, 마른 표고버섯, 쥐포, 찹쌀도넛, 편의점에서 산 연세우유 딸기바나나 생크림빵


집에 돌아와서 모두 꺼내 보니 양이 상당히 많았다. 쿠팡에서 주문한 조선호텔김치 4kg도 있었다. 아이스백에 넣을 물건과 트렁크에 넣을 물건을 구분해 놓았다.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해서 미리 한 번 아이스백에 물건을 넣어 보고 대략적인 위치를 정해 놓았다.


다음 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전날 한 번 싸 보았기 때문에 재빠르게 쌀 수 있었다. 이리저리 꼼꼼하게 넣었더니 대충 다 넣을 수 있었다. 엄마는 냉장고와 냉동고를 살펴보며 뭐 하나라도 더 챙겨 줄 음식이 있는지 찾아보셨다.


“ㅇㅇ야, 양념에 재운 더덕 가져가서 구워 먹어. 쑥떡도 ㅇ서방 잘 먹는데 가져 가. 백명란도 네가 좋아하잖아. 엄마가 2조각씩 랩에 싸서 얼려 놨어. 우엉잎 찐 것도 가져갈래? 네가 잘 먹던데. 어제 엄마가 사 온 찹쌀도넛도 가져 가. 싱가포르 가면 잘 못 먹잖아.”


틈이 없는 것 같아도 어찌어찌 넣으니 쑥인절미, 백명란, 양념에 재운 더덕까지 다 넣을 수 있었다. 찹쌀도넛은 배낭에 넣었다. 옆에서 내가 짐 싸는 걸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아이 우리 딸, 이제 참 미덥다. 짐 챙기고 싸고 하는 걸 보니 인자 됐다.”

“아이 엄마는,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나도 50대인데 이 정도는 하지.”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도 함께 가실 거라고 했다. 아무리 집에 계시라고 해도 딸이 멀리 가는데 공항에 가야지 하시면서 따라 나오셨다. 86세이신 아빠와  80세이신 엄마가 나를 배웅해 주셨다. 가을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선 부모님을 안아 드렸다. 출발장 입구에서 신원 확인을 받은 후 뒤돌아 서서 부모님께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 갈 때 가져가는 크고 작은 아이스백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오니 밤 9시 반이었다. 손만 씻은 후에 가방을 풀었다. 꽁꽁 얼린 아이스팩을 아이스백 안에 군데군데 넣었기 때문에 김치부터 해물까지 모두 냉장 상태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랩으로 씌운 딸기 상자와 신문에 싼 야채도 하나도 상한 게 없었다.


마침 아들이 집에 와 있었다. 시험기간이라 수업이 없어서 며칠 동안 집에서 공부할 거라고 했다. 식탁에 앉아 찹쌀도넛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다음 날 저녁, 육점에서 고기 등심을 사서 아들에게 구워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상추와 고추도 함께 내어 주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니 맛있다며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디저트로 딸기를 주었다. 아들이 “음, 이 맛이지.”하며 먹는 걸 보니 힘들게 싸 온 보람이 느껴졌다.


애써 가져온 음식과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해 두고, 매일 부지런히 요리해 먹었다. 뭐든 잘 먹는 아들이 집에 있어서 요리하는 것도 즐거웠다. 애호박으로 호박전을 부쳤고, 엄마가 볶아 준 전복으로는 뽀얗게 전복국을 끓였다. 문어숙회는 얇게 썰어 초고추장과 곁들였고, 양념에 재운 더덕은 참기름에 살짝 구웠다. 콩나물 무침을 만들고 꽈리고추찜을 준비했다. 백명란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반쯤 익히고, 곱창김은 라이팬에 두 장씩 겹쳐 놓고 구웠다.


상하기 쉬운 야채류는 거의 다 먹었지만 아직 냉장고와 냉동고에는 백명란과 곱창김과 같은 식재료가 남아 있다. 엄마가 볶아 준 전복, 엄마가 삶아 준 문어, 엄마가 2조각씩 랩으로 싸 준 백명란, 엄마와 함께 산 곱창김과 쥐포, 엄마가 싸 준 쑥인절미, 엄마가…



‘엄마……엄마가 없으면 어떡하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 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이든 집안일이든 더 도와 드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나와,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는 자식을 향한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그런 엄마에게 먹으라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짜증을 낸 게 후회되었다. 친정에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나는 엄마의 사랑과 수고를 너무 당연시했던 것 같다. 50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을에 가면 좀 더 잘해드리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와 음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남은 음식을 하나씩 꺼내 먹을 때마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 더 크게 느껴졌다. 고마운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애호박채전


소고기구이, 상추, 고추


문어숙회


전복국


백명란젓, 더덕구이


물김치


딸기. 사진은 더 못 찍었지만 이 외에도 여러 음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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