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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가영 Apr 30. 2024

5만 원 이라니까 4만 원만 받으라는 손님.

시술비용엔 저의 기술력과 노고, 가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다시 일을 시작했다. 평일엔 육아를 하느라 집에서 보내고, 주말엔 남편의 손을 빌려 아기를 잠시 맡기고 난 출근을 한다. 평일에 할 일을 주말에 다 몰아서 하는 격이라 토요일, 일요일 내내 바쁘다. 손님들께 단체문자로 [당분간 주말에만 예약받습니다. 예약문의하실 분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보냈다. 후로 평일 내내 문의 전화가 쇄도했고 토요일, 일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약이 꽉 차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느라 3개월이나 쉬었는데 다시 찾아주심에 너무 감사했다. 신규 손님들도 주말만 예약 가능하다는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주말에 예약을 해 주신다. 시간을 맞춰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인가? 기쁨에 심취해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봬서 반갑고 또, 처음 뵙는데 시간을 맞춰주심에 감사해서 나는 나름의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다. 찢어진 손톱에 실크보수 서비스 해드리기, 타샵 제거 무료로 해드리기, 글리터 서비스 해드리기 등 1~2만 원 상당의 시술들을 "이건 서비스로 해드릴게요!"라고 하며 해드린다. 그럼 감사하는 나도 기분이 좋고 서비스받는 손님들도 기분 좋아라 하신다. 네일손님이 아닐 땐, 속눈썹빗이라도 챙겨드리고 마스크팩 한 장이라도 챙겨드린다.


 몇 주 전 한창 바쁘게 일하던 일요일 아침, 11시쯤 손님이 들어오셨다. 그날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예약이 꽉 차있던 상태라 "혹시 예약을 안 하신 거면 오늘 관리받으시기 힘드세요."라고 안내드렸다. 그분은 그래도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오늘 꼭 받아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이면 꽤 난감하기도 한데 요즘은 주말 내내 아기 보느라 힘들 남편이 걱정되어 일요일 마지막타임을 5시로 단축시켜 놓았기 때문에 "정 급하신 거면 5시에 다시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마지막 한 타임 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말씀드리니 알겠다고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며 발걸음을 돌리셨다. 괜히 헛발걸음 하시게 한 거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5시에 오신다고 하시니 정말 꼼꼼히 잘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가고 4시 30분쯤 아까 그 오전에 찾아오신 손님이 오셨다. 미리 오셔서 기다리신다고 하셨다. 괜히 또 죄송한 마음이 솟구쳐서 서비스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5시가 되어서야 그 손님의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톤(색하나 바르는 것) 기준 4만 원이라고 안내드리고 디자인 상담을 했다. 원래 손에는 다른 숍에서 받은 네일이 있었고 제거를 먼저 해 드리며 여쭤보니 글리터에 포인트를 준 아트를 원하셨다.  


"제거는 원래 비용이 있는데,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찡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씀드렸다.

보통 '서비스'라는 단어에 손님들은 기분 좋아하시던데 그냥 한번 쳐다보고 별 반응이 없으시길래 오래 기다리셔서 조금 기분이 안 좋으신가 생각했다. 그러고선 몇 분 후 고심하듯이 한마디를 꺼내셨다.


"000이라는 회사가 있는데...(중략) 가입회비가 5만 원 정도예요. 가입하세요."


 회사 가입 권유였다. 워낙 이런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기에 이미 굳은살이 배겨 있었다.


" 죄송해요. 제가 육아 중이라 주말만 일하거든요. 어디 회사든 가입할 여유가 현재로서는 없네요."


라고 나름 최선의(?) 거절을 했다.


 후로는 그냥 일상의 얘기를 했다. 종종 가입을 유도하는 회사 얘기를 하시면 다른 말로 돌리곤 했다. 손에는 두 가지 색을 넣고 글리터 그라이션과 전체글리터를 섞어가며 아트해 드렸다. 오전에 헛발걸음으로 돌아가시고도 마지막타임에 다시 찾아주신 노고에 대한 고마움과 일찍 오셔서 기다리신 거지만 그래도 기다리신 것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의 표현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꼼꼼히 표현해 드렸다.


 시술이 다 끝나고 고객님께 가격을 안내해 드렸다.


" 원래는 다른 숍에서 받아오신 아트 제거하면 추가비용이 발생하는데 서비스해 드릴게요. 색도 두 가지 쓰셨는데 그냥 서비스로 해드리고 글리터 아트도 추가비용이 있는데 마지막 손님이시니까 그냥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원톤 가격에 글리터 1만 원 추가만 해서 5만 원만 주시면 됩니다."


 마지막 손님이라 퇴근하고 남편과 아기를 보러 갈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서비스를 아낌없이 분출했다. 한주의 마지막 손님이시기도 했고 멀리서 찾아와 주시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를 찾아 주심에 그저 감사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 뭐가 그렇게 비싸요? 저는 5만 원이나 주고 네일을 받아본 역사가 없어요. 계좌이체 해드릴 테니 4만 원만 받으세요."


 상당한 당황스러움. 황당함이 나를 덮쳤다. 마스크를 끼지 않았으면 얼굴에 드러난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노출시켰으리라 생각했다. '시술은 제가 했는데 왜 손님께서 제 시술의 값을 매기시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종종 가격이 비싸다고 하시거나 "보석 한두 개 그 얼마 하지도 않는데 그거 붙여주고 왜 돈을 받아? 그냥 서비스로 해주면 되지!"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때마다 "고객님, 저의 시간도 소중하니까요. 제가 기술을 배우고 갈고닦으며 할애한 시간과 노력. 재료값과 가게유지비용 등 이 시술을 하기 위한 부수적인 모든 노력들과 소비용이 포함된 가격이고 제 기술에 대한 저의 값어치를 측정한 값이에요. 존중해 주시길 바랄게요."라고 설명해 드리곤 했다.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하하.. 네, 알겠어요. 대신 손님들 소개 많이 해주셔야 돼요. 그리고 오늘 가격은 다른 고객님들한테는 절대 비밀이에요 저 이 가격으로 시술했다는 거 소문나면 망해요!"


 5만 원을 꾸역꾸역 다 받는다고 이미 상한 나의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4만 원을 받는다고 내 기분이 아주 영 썩어 문 드러 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만원을 더 받는다고 내가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고 만원을 덜 받는다고 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너무 피곤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있잖아.'


 남편이 가게밑에 데리러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손님을 배웅하고 가게 정리를 대충 해두고 잽싸게 내려가 차에 올라타 남편과 아이를 보니 다시 행복해졌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까 낮에 오셨다가 마지막 타임에 다시 온다는 손님 오셨는데 무슨 회사 가입을 권유하더라 내가 여유 안된다고 거절하니까 엄마 명함도 챙겨 가셨거든, 전화 오거나 찾아오면 안 한다고 그래!"


 소심한 복수를 했다. 제 가치를 부정하셨으니 저도 손님회사 가입 안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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