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Apr 28. 2024

처치 곤란 결혼 5주년 선물

솔직해서 죄송

 결혼 5주년 선물로 남편에게 옷을 여러 벌 사줬다. 그리고 맛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보. 내 선물은 언제 받을 수 있어?" 남편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기다려 보라 했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아주 소박한 것도 좋으니 깜짝 선물을 달라 청했다.

 '그는 대체 무얼 준비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선물을 기다렸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집 앞에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커다란 상자를 보고 웃음꽃이 만개한 아내는 기념으로 언박싱 영상을 찍자고 제안했다.


 "우와. 드디어 선물을 개봉하겠습니다." 상자 안에 커다란 상자 하나가 또 하나 들어 있었다. 어머나. 정성스러운 포장 보소.

 설렘은 배가 되었으나 뭘 샀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상자를 개봉하고 내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마주한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촬영 종료. 카메라 끄세요."


 새빨간 조화로 만들어진 커다란 곰을 보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떤 선물을 받던지 기쁜 척 연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건만 실패.

 바로 어젯밤, 선물이 배송되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답했었다. "조화만 아니면 돼!" 미니멀라이프의 주적인 덩치 큰 장식품. 게다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조화라니. 허허. 최강 조합일세 그려.


 "조화로 만든 곰이네?"

 "안 그래도 어제 조화만 아니면 된단 소리 듣고 진짜 깜짝 놀랐잖아."

 "저번에도 조화 싫어한다고 말했었는데. 빨간색으로 고른 이유는 뭐야?"

 "다른 색은 다 품절이더라고."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기대했는데 뭐시라?

 "혹시 반품해도 되나." 선택의 여지없이 내게 온 빨간 곰을 보고 내 얼굴도 붉어졌다. "이야. 가오나시 가방 이후로 또 한 번 대단한 취향저격이네." 남편과 나는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한참을 웃었다. 생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조화를 선물하는 남편.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에게 처치곤란의 장식품을 선물 남편. 솔직히 배송비를 지불하고라도 반품하고 싶었지만 그의 성의를 생각해 빨간 곰에게 '폭소 곰'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그다지 곰처럼 생기지도 않았음.)

 

 담음 번에는 하얀 곰이나 분홍 곰으로 사주겠다 남편에게 얼른 선을 그었다.

 "이걸 또 산다고? 싫다니까 왜 그래. 약 올리냐."

 명품 가방, 호캉스, 두둑한 용돈 봉투 대신 작은 선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던 나의 아리따운 계획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결혼기념일이 들이닥치자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 상품평 많고 무난한 상품을 고른 남편에게 조금 섭섭다만. 우리 부부의 첫 번째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던가.


 단조로운 아내의 일상을 빛나게 하는 남편의 몇몇 치트키가 있다. 회사에서 받은 간식이나 기념품을 호주머니에 품고 와서는 "맞다. 이거!" 하고 건넬 때의 사랑스러움이란. 바쁜 와중에 나를 생각해 준 챙김이 참으로 맙고 특별하다. 한 시간이 넘는 퇴근길을 건너 내게 전달된 수박 모양의 떡, 텀블러, 호두과자 등을 떠올리니 조화 곰에 서린 아쉬움 사르르 녹는다.


 에세이의 제목을 본 남편이 "왐마. 곰돌이 진짜 싫었나 보네." 하고 한탄하길래 아내는 미안하지만 게 답했다. "응." 역시 우리 부부의 공통점은 솔직함이다. 부디 다음 기념일엔 내 취향이 반영된 선물을 받고 신나서 방방 뛸 수 있기를. 예예.

상자가 열리네요. 빨간 곰 들어오죠. 첫눈에 난...

<백 사건>

https://brunch.co.kr/@huiyeon814/28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여행 마지막 날 따로 다닌 부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