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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y 11. 2024

나는 전업주부입니다.

"나 구두 하나 사도 돼?"

"사.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우리 집 가장이자 가정 경제의 몫을 담당하는 남편이 '구두를 사도 되는지' 물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지, 때론 그런 질문 자체가 돈을 벌어오라는 압박보다도 '더' 나를 끌어내린다는 점을 정말 모르는 걸까. 남편의 셔츠를 다림질하다 헤진 옷깃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가늘게 옅어 있는 목 부분의 접힘이 안쓰러워 잠시 다림질을 멈췄다. 본인에게는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내가 필요한 것엔 주저함이 없다. 때론 그 이상의 사랑과 사치를 담아 선물을 하기도 하면서 정작 출근용 정장은 교복과 같다며 홈쇼핑의 저렴한 브랜드를 고집하고, 매대에 있는 티셔츠를 살핀다. 아내에겐 명품 지갑을 턱 하니 내놓으면서 자기 지갑은 가죽의 색깔을 잃은 지 오래.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한 울분이 울컥 치솟을 때가 있는데 오늘, 구두 하나 사도 되냐는 그 물음이 마음을 애달프게 쑤시고 말았다.

© unsplash

가끔 기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편에겐 특히나 더 떳떳하게 분주한 일상을 공유하는데 그 이면엔 스스로 가치를 치켜세우는 게 크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한다. 되도록 남편의 돈을 정성스럽게 쓰려고 노력하고 엄마 품으로 많은 걸 하려 하지만, 우리 셋이 매달린 가장의 버거움이 슬쩍 비칠 때마다 더더욱 내 무게를 줄이고 싶은 바람이 덧대진다. 주부의 노동력을 가치로 환산하면 남편의 월급 못지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자꾸만 작아지는 것은 왜일까. 내 노력을 최대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나의 엄마'로 부터 출발한다.



결혼과 함께 한 평생 전업주부로 산 엄마의 삶을 보며 '절대, 전업주부로 살지 않겠다' 다짐했다. 어떤 푼돈이 되었더라도 떳떳하게 경제 활동을 하며 내 주머니에 달콤한 안정감을 채우겠다고 결심했다.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평생직장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결혼과 출산을 해서도 영향을 덜 받는 전문직으로 진로를 바꾸고, 열정페이를 마다하며 청춘을 바쳤다. 귀 막고 3년, 눈 가리고 3년만 버티라는 주변의 위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후, 그렇게도 하찮게 여기던 전업주부의 삶이 펼쳐졌다. '이것만은' 하며 피했던 웅덩이는 깊은 바다가 되어 나를 에워쌌다. 나는 왜 그토록 전업주부의 삶을 기피했을까.

© unsplash

아빠의 하대, 엄마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아빠의 눈초리가 내 신념을 강화했다. 그녀가 없으면 집 안의 공기는 삐거덕댔다. 엄마의 기름칠로 인해 가정의 톱니바퀴가 굴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칠하는 노동력은 기름을 사 오는 재력에 밀려 그 쓰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전업주부를 하찮게 여기면서도 전업주부의 보살핌으로 자란 나는, 똑같이 하찮은 주부가 되어 그 품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하루를 동동거리며 살면서도 이 모든 것이 재화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점은 수시로 마음속 자격지심을 건드렸고, 이렇게 한 번씩 크게 튀어 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가차 없이 내리꽂았다. 그 누가 하대하는 것도 아니건만 세상의 시선을 눈초리로 여기며 오늘도 내 쓸모를 기록하고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남편은 조금 더 유복한 자영업자 부모 밑에서 자랐다. 회사원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던 시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뒷바리지하셨고, 시어머니의 기름칠은 그의 마음을 윤기 나게 했다. 매끼 정성을 다해 집밥으로 마음을 채워주고, 학교 일에 발 벗고 나서서 그의 등을 조금 더 곧게 세워 주셨다. 대학교를 나온 지성으로 교육과 체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고, 엄하지만 다정한 사랑을 실천 하셨다. 남편은 좀 더 고상한 부모 밑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꼈고, 이와 반대로 나는 4남매 속 내 지분을 어떻게든 획득하기 위해 조금 더 아등바등했다. 결국 같은 주부의 기름칠이건만 가족 문화에 따라 '돈값'의 유무가 달라졌다.

© unsplash

그는 내 기름이 등유일지언정 고급 휘발유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분주한 일상의 동동거림을 치하하며 덕분에 바깥일을 할 수 있다 입바른 소리를 한다. 자식을 돌보는 내 팔의 길이를 곱절로 여기며 반듯하게 자란 아이들이 '네 덕택'이라는 말을 하는 그를, 왜 난 믿지 못할까. 자꾸만 내 쓸모를 푼돈이라도 벌어오는 주머니와 비교하며 재화로 대체되기 위해 글을 쓴다.

돈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단지 마음속 하소연을 위한 글이 아닌 기름을 살 수 있는 재력으로 대체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남편 앞에서 조금 더 떳떳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남편의 꾸밈없는 말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내 문제다. 가족 문화 속 습득된, 체화된 내 문제인 것을, 왜 자꾸만 남편에게 이입하는지. 자격지심을 위해서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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