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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bi May 06. 2024

#08. 멘탈 너덜너덜해진 1박 2일 이사

나 운다, 울어

매일 집이 고쳐지는 걸 보면서도, 과연 이사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사 2일 전, 마루와 도배를 하고 나서야 이사할 수 있겠다 안도했다. 입주 청소까지 끝내고 난 후, 멀끔해진 집을 보니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구나, 어찌 되든 이사는 할 수 있는 집이 되었구나 싶어서.


이사하던 때의 집. 지금 보니 아직도 공사할 게 산더미 같아 보이는데, 그때는 이렇게 집이 생긴 것만으로도 좋았다 ㅎㅎ

서울에서 이곳까지 지방 이사는 쉽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 하루 안에 이사를 할 수 없어 1박 2일 이사를 해야 했고, 그 작은 아파트에 무슨 짐을 이리도 많이 이고지고 살았는지 5톤 트럭에 다 실리지 않아 1톤을 추가했다. 이사짐 싸는 아침, 고양이 이사부터 하려고 우리집 예민보스 고양이 두 마리를 먼저 차에 실었다. 이 고양이들 고생 좀 덜 시키려고 먼저 이사시키기 위해 내가 어떻게 일정을 조율하고, 애를 썼는지 고양이놈들은 평생 모르겠지...


케이지에 넣어 담요 씌우고 뒷자석에 싣고 출발...!


이사하는 날. 짐이 끊임없이 나와서 짐정리하는 내내 놀랐다.


나름 24평 아파트에서 짐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 데 이게 무슨. 5톤 트럭에서 짐이 정말 끊임없이 나왔다. 이게 정녕 모두 내 짐인가 싶었는데, 다 내 짐이 맞았다. 필요하다, 혹은 필요할 거야 라는 이유로 사들였던 많은 물건들. 하지만 결국 사용하지 않고 언젠간 쓰겠지 하며 처박아 두었던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구석구석 쌓아두고, 정리하지 않았던 게 꼭 내 마음 같아서 벌거벗은마냥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앞으로는 물건 하나를 들이더라도 신중하고 신중하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모든 짐을 하나하나 살피며 버리고 또 버렸다. 이런 게 있었나 싶은 물건은 다 버렸다. 가지고 있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이렇게 이고 지고 살아서 서울살이가 부대꼈던 걸까. 너무 쉽게 물건을 살 수 있었고, 무언가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하던 지난 시간이 기억났다. 매일 밤, 쿠팡과 마켓컬리 어플을 켜고 쇼핑하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도착해 있는 물건을 보며 희열을 느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그렇게 쌓아온 물건과 짐들이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징그러워 보였다. 아니다, 사실 그렇게 쌓아두고 돈을 쓰며 살아온 내 자신에게 느낀 감정이었을 거다.     


여기에서는 그런 ‘편리’함이 차단된다. 빠른 배송을 자랑하던 많은 쇼핑몰들의 서비스 지역이 아니고, 배달 어플을 켜면 ‘텅’이라는 글씨가 반겨준다. 다행이었다. 이사하고 거의 한 달 동안 수많은 짐을 버리고 버리면서 쉽게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사한 날, 엄마가 가져다준 밥으로 바닥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떻게 짐을 다 옮기고 난 후, 집 바닥에 앉아 엄마가 준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두 다리를 뻗고 잤다. 밀린 짐정리와 고양이 적응은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사하고 짐정리하면서도 초예민하고, 겁쟁이인 고양이들이 구석구석 숨어버리는 바람에 집 밖으로 나간 줄 알고 심장이 철렁한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짐도 차근차근 정리되어가고, 고양이들도 차차 적응해서 편안히 쉬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쁨이었다. 우리의 삶은 이 공간에서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새로운 일을 겪으며 새로운 행복을 찾아갈까.


고치기 전 후. 아직도 사진만 봐도 눈물이 주륵주륵 난다. 지금은 마당공사도 하고 잔디도 깔아서 더욱 멀끔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 시골집으로 터전을 옮겼다. 귀촌을 결심한 지 4개월 반이 지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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