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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May 16. 2024

결혼식 때 밥을 안 주는 나라

네덜란드 사람들의 넘사벽 절약노하우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자기가 먹은 것을 나눠 내는 것을 두고 더치페이라고 한다. 그래서 튤립과 풍차 정도의 이미지 정도밖에 없는 네덜란드임에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돈에 인색한 짠돌이라고 여겨진다.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내가 봐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짜다기보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한다. 그 합리의 기준이 나라 밖 사람들에게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면 “과지출은 금기. ‘내’가 빚진 것/ 내야 하는 것에만 쓴다”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물건이든 무엇이든 그렇게 신중하게 산 이상 아주 아껴 쓰고, ‘나’를 위해 심사숙고해 돈을 쓴 만큼 선뜻 나누기 싫어한다.

17세기 무역으로 부자가 된 나라라 장사의 덕이 사고에 베어서일 수도 있겠고, 청교도의 근면성실 금욕주의의 영향일 수도 있고, 나치 점령시절 식량물의 공급에 끊겨 굶주려야 했던 가난한 시절을 겪어서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합리의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친구 밥은 안 사줘도 기부는 많이 하는 나라다.

듣는 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 가슴이 벌렁벌렁, 입이 떡 벌어지는 안 쓰는 관습에

나도 모르게 동화된 경우가 있는 반면 스스로 제발 거기까지는 가지 말자 싶은 관습도 있다. 또, 나도 그렇게 해보면 좋겠다 싶은 것도 있고.


몸에 밴 절약형 살림법

집 안에서는 이렇다. 백이면 백, 네덜란드 가정에서 비눗물을 씻어 낸다는 개념이 없다. 프라이팬을 비눗물에 닦고 그냥 말린다. 아기도 비눗물에 목욕시키고 헹구지 않고 바로 닦는다. 비누칠을 하면 깨끗하다고 생각해서란다. 하지만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다. 목욕도 사치라 여겨 많은 집에 샤워실만 있다.

겨울에 난방은 17-19도에 맞추고 불도 안 키고 어둑하게 있다. 난방비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상상을 못 하게 비싼 이유도 있다. 한 번은 거의 반사신경으로 남의 집에 가서 불을 켰었다. 너무 어두워서 갑갑해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집 안에서 반팔을 입거나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한다. 그 와중에 “윔 호프”라는 네덜란드 사람은 차가운 물로 목욕하고 샤워하면 건강해진다고 하니 과장을 조금 보태 나중에는 뜨거운 물도 안 틀까 싶다.

이사를 갈 때는 바닥재, 전구, 커튼이며 블라인드 등 자기가 설치한 모든 것을 다 떼어간다. 그래서 단기 셋집을 구할 때 바닥재며 커튼까지 달아야 한다는 집까지 있다. 너무 황당해서 왜냐고 물어보면 “각자 취향이 다르니”란다. 도대체 전구까지 떼어가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나는 세입자로 들어가면서 전에 살던 사람한테 가구를 사기도 해봤는데 조명은 다 떼어 갔었다. 그래서 설치기사가 와서 조명을 달기까지 한 달 내내 밤에 촛불 켜고 살았었다. 왜 스탠딩 조명 생각은 못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귀여운 점에는 병에 들은 잼이나 머스터드 같은 걸 싹싹 긁어내는 도구가 있다는 것이다. 숟가락이나 칼로는 도저히 닦아낼 수 없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껴 먹는다. 요플레 뚜껑 안 포일에 붙은 걸 핥아먹는 거랑 비슷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까워했으면 그런 도구를 만들었을까? 있으면 진짜 요긴하다.

따듯한 음식은 하루 한 끼, 나머지는 빵 한 조각에 치즈 한 장 혹은 꿀같이 다른 토핑을 한 종류만 얹어 먹는다. 이렇게 조금을 간단히 먹으니 식비가 절감된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을 때 매 식사마다 국하고 반찬을 여러 가지 하다 보니 여러 끼 나눠 먹을 오징어며 고기거리가 한꺼번에 다 쓰였었다. 그러면서 내일은 뭘 먹지라는 생각이 들자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간단히 먹는 게 진짜 편하고 말도 못 하게 절약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애초에 집에 손님 초대를 자주 하지 않는다. 손님은 먹고 갈 기대가 없고, 만약 먹을 게 없냐고 하면 없다는 답을 들을 것이다. 저녁때까지 있다가 저녁 먹고 가고 그런 문화가 아니다. 자기가 먹을 것만 딱 있는데 왜? 이런 생각이다. 진짜 먼 곳에서 커피를 마시러 집에 온 친구가 하도 집에 안 가 ’도대체 언제쯤 갈까, 곧 저녁시간인데‘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내가 네덜란드 사람이랑 비슷해졌구나 싶었다. 그때 같이 있던 우리 엄마가 저녁을 먹고 가라자 대뜸 그러겠다고 하는 친구를 보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운도 좋구나!


정이나 체면보다 합리 먼저

궁상맞아 보였는데 이제는 당연한 행동도 있다. 슈퍼에서 장 보고 따로 돈을 내 비닐봉지를 사지 않는다. 한 아름 장 본 걸 들고 집에 걸어온다. 보통 우유, 빵 치즈 따위다. 처음에는 몇 십원 아낀다는 걸 광고하며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가지고 가는 이 사람들이 참 얼굴도 두껍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에코백을 깜빡하거나 슈퍼가 코앞이면 왜 굳이 1유로나 주고 비닐봉지를 사야 할까 싶은 거다. 남들이 그러니 내가 장본 게 뭔지 본들 만들 상관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도 우유며 빵이며 과자를 바리바리 들고 간다. 들기 벅차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깟 봉지 그냥 살 것을 후회하게 되지만 말이다!

매일 먹는 물은 수돗물로 대체하고 식재료는 기다렸다가 할인할 때 많이 산다. 어디서 할인하는지 광고하는 주간 할인신문을 눈에 불을 켜고 본다.

사실 할인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라디오를 키면 모든 채널에서 동시에 광고를 트는 데 거의 대부분의 광고가 싸게 판다는 내용이다. 여행 상품, 영화티켓, 그리고 주로 생필품 할인 광고가 하이텐션 네덜란드어로 계속 나오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라 “공짜”를 뜻하는 “흐라티스 (Gratis)”, “할인”을 뜻하는 “콜팅 (Korting)”은 배우고 싶지 않아도 머리에 새겨진다. 전국 단위 슈퍼인 알버트하인에서는 “햄스터른”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볼이 미어지게 도토리를 챙기는 다람쥐처럼 햄스터도 그런가 보다. 아무튼 “햄스터 하기”는 세일 때 왕창 사두는 건데 “벌크업”이란 표현하고 뜻이 같다. 사실 이것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더 하게 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출처: 알버트 하인

주의점도 있다. 네덜란드의 몇 회사들은 소비자가 세일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공략해 소비자가격을 높이 메기고 세일 때 50%까지 할인을 하는 방법으로 파니 할인이 아니면 사지 말아야 할 정도다.

정이나 체면보다 합리적인 자세가 중요한 게 아는 사람들과 외식할 때다. 먹은 만큼 나눠내는 바로 그 더치페이 말이다. 식당에서 술을 시키면 비싼데 술을 안 먹는 사람도 그 돈을 내야 하나? 그렇게 따지다 보면 누구는 50유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누구는 그 반 값이 파스타를 먹었다면 왜 모두 다 같은 양의 돈을 내야 할까? 여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가 쏜다는 개념이 별로 없기에 나눠내도 먹은 것의 값만 합해 계산한다. 음료수 얼마, 식사 얼마, 더하면 얼마, 그러니 얼마~ 친구들과 외식하러 갔을 때 계산기 없으면 곤란할 지경이다. 웨이터는 한 사람 한 사람 카드를 받아 그만큼 값만 계산해 준다. 그게 정석이건만, 암스테르담의 한 음식점에서는 나눠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아마 주인장이 외국인이고 더치페이가 싫었나 보다. 손님들의 불평을 일부러 받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뭐 그래도 나눠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눠내기용 앱도 있으니 말이다.

결혼식마저도 밥을 주는 손님, 식만 보고 가는 손님이 따로 있다. 정말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결혼식 와서 밥도 못 먹고 가는 거다. 한 턱 내거나 쏘는 게 과지출이고 자기가 “신세”진 것이 없으니 안 쏜다는 거다.

결혼식 때 음식을 먹는 팀에 초대받았느냐 아니냐로 그간의 친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니, 거참, 그럴 바에야 좋은 날 다 접대하면 안 될까 싶다만. 결혼자금을 커플이

직접 구해야 하고 케이터링이 비싸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런가 보다 싶다.


비싸다 보니 아끼게 되지요

용역이 비싸 절로 절약하게 되는 다른 예가 바로 집수리다. 집을 가꾸는 게 취미인 만큼 스스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뿌듯해하는 문화기도 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철물, 페인트, 원목 등을 파는 대형 DIY 체인점들도 많다. 뭘 사도 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줘 장기적인 면에서 돈을 절감하게 해주는  예는 또 있다. 비싸고 느린 택시는 웬 말,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아이나 아이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자전거에 의자를 달거나 박스를 달아 자전거로 태우고 다닌다.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이 촘촘히 잘 되어있지 않고 자전거를 타기 좋은 평평한 땅이라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환경오염방지 세금으로 자동차는 우리나라의 두 배 값에 거래되고 소유하는 것으로도 계속 세금을 내야 하니 도심에 살면 차가 없는 가구도 있다.


계획해서 쓰기

어느 날 토요일마다 가는 채소가게에서 생각지 않게 평소와 다른 채소며 과일을 사자 일주일치 예산의 두 배를 썼었다. 멜론, 퍼플아스파라거스, 수박 따위가 그 주범이었다. 그러자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게 돈이 더 많이 드는 일이구나 싶더라. 계획대로 외식하고 여행을 하면 지출정도를 미리 알게 되고 그에 맞춰 조절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외식도 한 가족이 간단히 밖에서 먹으려면 갈 곳이 맥도널드 밖에 없기도 하다. 특별한 날에만 레스토랑에 갈 만큼 비싸다. 그래서 ”대충 오늘은 밖에서 때우자“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커피 한 잔 먹으려 하면 자기 캘린더부터 펼쳐보고 한 3주 후에 시간이 있다고 하고 이년 후 휴가 계획까지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행동 속에는 그렇게 낭비가 싫은 태도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계획소비의 범주는 넓다. 선물은 예산에 맞추어 생일이나 결혼 아기의 탄생 등 특별한 날에만 준다. 답례품, 서프라이즈, 그냥, 기프티콘 이런 거 없다. 예산도 보통 20-30유로 안이다. 내가 만든 받고 싶은 선물리스트와 그 피드백은 이랬다.

정말 읽고 싶었던 책: 10유로 정도 —> 예산에 비해 너무 저렴해 받지 못했다.

아기 돌잔치 선물: 70유로 정도 —> 너무 비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받지 못했다.

예산에 비해 싸도, 비싸도 안 되는 거다. 어린 조카들 선물 리스트에 5유로짜리 색칠공부 그림책이 있어서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 샀는데 이미 가지고 있던 거였다. 그 후로는 우리도 사라는 것만, 덜도 더도 말게 되는 게 다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제일 쉽다 싶다.

또 뭐가 있을까. 럭셔리 본고장인 유럽 사람들의 검소함은 유명할 텐데, 실제로 한번 사면 물건을 오래 쓴다. 어찌 그리 살뜰히 쓰는지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 의류에 별 관심이 없다. 차나 가구는 독일제며 품질을 따지는데 옷만큼은 추레한 것이, 남편은 한국에만 오면 사람들이 옷을 잘 입는다 한다.

그리고 요새 가족행사를 치르며 느낀 건데

포토슛 개념이 없다. 사진사는 결혼식 때나 오고, 스튜디오를 통해 찍는 취미성 혹은 기념 같은 사진은 드물다. 백일, 돌잔치, 가족사진, 바디프로필 등 말이다. 사진에

진심인 우리나라만 그런 걸까?


자료를 보다 보니 네덜란드 사람들의 저축률은 10% 정도, 지출률은 43% 정도란다. 유럽에서는 높은 저축률에 속하지만 보니 우리나라랑 비슷하다. 지출률은 우리나라는 48%로 좀 더 높다. 이렇게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썩 덜 쓰고 더 모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합리주의자들은 어디에 돈을 쓸까?

- 온갖 세금: 일반 샐러리맨 수익의 반이 세금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자산에 세금을 내고 또 낸다. 숨 쉬는 것도 세금일 정도로 공짜가 없는 나라다. 그리고 세금이 또 높다. 유일하게 적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속세이다. 10%에 불과한 것이 아마 떠날 때 가진 것 없이 대부분 다 쓰고 가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으기 힘들다보니 자식한테 무엇을 남겨주고 할 생각들은 없다. 쓰고 싶지 않지만 써야하는 돈이다.

- 보험

우선 의무로 가입해야하는 의료보험이 비싸다. 그리고 온갖 보험이 다 있다. 누가 축구공차서 유리 깨질 때, 와인 엎질렀을 때, 가구가 망가졌을 때 보험을 탈 수 있다!

- 집 레노베이션하기: 대출을 받아 확장공사를 할 정도다. 집이라는 공간에

아주 진심인 사람들이라 확장공사며 정원에 두는 앉는 공간, 차양 설치, 공간 개조 등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데 이게 용역이 들어가는 일이라 아주 비싸다.

- 휴가: 가족들이 해외로 많이 휴가를 간다. 4-5인 가족이 패키지 개념이 없이 미국일주나 스키여행을 간다면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소비패턴을 보면 결국 네덜란드 사람들의 개인주의가 보인다. 나와 내 가족 먼저 누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소한 것 (와인이나 해외기부 등)이 그 다음, 그리고 주변을 돌아본다. 사실 사회를 위해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면 타인을 위해 더 해주고 싶은 마음도 돈도 없어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합리를 신성시하는 개인주의자인 이들은 ‘알아서 잘해야지’ 할 망정 자기가 빚지지

않은 돈은 절대 내지 않고, 누가 나에게

빚을 진다면 10원이라도 돌려받는다. 참 대단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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