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다
이제 중요한 주제 두 가지만 남았습니다. 바로 외로움과 지루함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지루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친구와 친척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안정적이고 생각이 비슷한 오십 명 이상의 대가족 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온갖 조직에 가입하기를 권합니다. 그 조직이 아무리 어처구니없더라도 말입니다. 핵심은 여러분의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조직의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 혹은 전부가 멍청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겐 어떤 친척이든 수를 늘리는 게 필요하니까요.
이제 지루함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지루함은 삶의 일부입니다. 그걸 견디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제가 이 졸업반에 속해 있다고 선언한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성숙한 여성과 남성 말이죠. (pp.33-34)
어떤 글이 우리 마음에 와닿는 것은, 글을 읽는 시점에 필요한 우리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사랑이나 정치 혹은 우정에서도 그렇듯,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어떤 가치 있는 작품이 출간 이후 맹비난을 받거나,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작품이 극찬을 받는 이유는 읽는 사람들의 잘잘못 때문이 아니라, 때를 잘 만났거나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해도 당장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돌처럼 가라앉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단명할 것이 뻔한데도 지금, 바로 지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호평을 받는 책도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내면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얻어야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내가 쓴 글을 훑어보면 심각한 편파성에 깜짝 놀라게 되는데, 내가 읽은 책들과 읽은 방식에도 그런 편파성이 반영되어 있다. (중략) 내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편협하면서도 명확한 필요에 따라 글을 읽음으로써 글 쓰는 법을, 그리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pp.188-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