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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Apr 11. 2024

아이를 낳으면 사랑이야 하겠지만

딩크와 유자녀의 삶 사이에서

 출산율이야말로 요즘 대한민국 최대 이슈가 아닐까. 관련하여 역대 최저 출산율, 딩크족, 비혼, 비출산 등 많은 키워드가 오르내리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말세네, 말세야'로 요약되는 말들이다. 작년에 혼인신고를 한 신혼부부로서 뉴스를 틀기가 머쓱할 만큼 방송에선 날마다 나라의 존망이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들 한다. 보다 보면 '예? 제가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여튼 나라가 위기라는데 나라도 애를 숨풍숨풍 낳아서 이바지하면 참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연히 아이는 낳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물론 출산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온 지금은 심경이 좀 더 복잡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의 95%는 딩크로 기울고, 5%만 '그래도 하나는 낳아야 할까'로 기울고 있다. 이유는 참 여러 가지가 있는데 딩크를 결심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며 말은 많아도 내 체감상 주위에선 아직 결혼을 하면 아이 낳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라 더욱 그렇다. 다른 부부들은 왜 애를 안 낳기로 했을까? 다 나랑 같은 이유에서일까? 일단 내 마음을 먼저 까보겠다.


 사실 내가 딩크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마디로 딱 정의 내리기 애매한 것이다. 그래도 굳이 정리해 보자면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것들이 두려워서,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랑 불과 30살도 차이 나지 않는 우리 엄마는 딸이라고 대학을 못 갔다. 대신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일찍이 취업했으며,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서 그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여러 일들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엄마'가 본업이고 직업은 부업에 가까웠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적성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여자라는 것만으로 같은 직업(주부)을 갖는 게 일반적인 시대였다.


 그에 비하면 이십여 년만에 세상은 많이 나아졌다. 여자도 얼마든지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몇천 년을 굳건히 이어져 온 가부장제가 1-20년 사이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어서 아직도 육아는 여성에게 좀 더 많은 몫을 요구한다. 물론 요즘 아빠들 가운데는 옛날 아버지들처럼 육아에 손 떼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남편도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가정 내에서 역할을 잘 분담한다고 해도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말하자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부여된 성 역할이 아직 뚜렷이 있는 것이다. 남자 가정주부를 평범한 경우로 보지 않고, 며느리는 시댁에서 손님보단 일꾼 대접을 받는 것처럼, 맞벌이 가정에서도 주양육자는 어디까지나 엄마인 경우가 많다.


 나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된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삶이 좋은데,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을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일을 계속할 수야 있겠지만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나면 '전업주부'나 '워킹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삶에 육아라는 책임을 하나 얹는 차원이 아니라 내 정체성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전업주부는 아이를 낳더라도 계획에 없는데, 경력이 단절되는 것도 싫거니와 그걸 감수하고 고른다 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임에도 가정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 쯤으로 무시하는 시선은 만연해 있다. 그런 일을 자처하고 싶진 않다. 맨날 퇴사하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긴 하지만 막상 알량한 명함 한 장이 주는 소속감을 잃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나중에 로또라도 되어서 진짜 노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퇴사는 그때 하고 싶다.


 그렇담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워킹맘' 하나뿐인 셈인데, 이건 이것대로 두려워 아이 낳기를 망설이게 된다. 사람의 체력과 능력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데 괜히 이도 저도 아니게 50점짜리 엄마, 50점짜리 사회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 과정에서 나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두렵다. 지금과 똑같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아이를 가지고 나면 '워킹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속에 나를 넣어야 할 것이다. 그 삶의 디테일이 어떨지 상상해 보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애초에 맞벌이가 이렇게 흔한 세상인데 아직도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이 달갑지 않다. '워킹대디'란 표현이 잘 쓰이지 않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당연한 것이 되어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없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남성 여성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하고 주 4일제든 근무시간 축소든 하라고. 그럼 정말 당장 내일이라도 임신을 준비할 텐데. 나는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원래 2세를 갖고 싶은 것은 생물의 본능 아니던가. 동물들이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제 새끼를 물어 죽이기도 하는 것처럼, 보다 좋은 환경에서 육아를 하고자 하는 본능이 지금은 더 우세할 뿐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결국 일과 육아를 무리 없이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이제 딩크인 이유를 겨우 하나 적어보았을 뿐인데 말이 길어졌다. 비중은 훨씬 적지만 이 외에도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더 있다. 첫 번째는 역시 경제적인 이유다. 남편 역시 딩크로 나랑 뜻이 같은데, 남편은 이 이유가 가장 크다고 했다. 나는 둘이서 벌면 돈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긴 하지만 아마 내가 위에 구구절절 말했던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민처럼 남편도 경제적인 부담감을 더 무겁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교육비 등 아이를 사람 하나로 온전히 키워내기까지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취업과 분가를 독립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금도 아이를 키워서 독립시키는 데 30년은 족히 걸리지 않던가. 다음 세대는 아마 마흔 쯤이 평균 독립 나이일 지도 모른다. 40년쯤 뒷바라지할 걸 생각하면 막막하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부모님과 불화가 잦았다. 어릴 때부터 이미 비출산을 다짐했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그때는 온전히 이 이유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싸우거나 부모님 때문에 상처받을 때마다 결코 아이를 낳지 않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좋은 부모가 못 된다면 아예 부모가 되지 않는 게 맞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입장도 헤아릴 만한 나이가 되니 점점 '좋은 부모'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진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이며, 세상 부모들 퍼센트가 여기에 해당할까. 우리 부모님이 나쁜 부모라 믿으며 원망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도 부모님에게 쉬운 자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은 부모님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떤 부분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는 과연 우리 부모님만큼은 할 수 있을까? 자녀 양육에 인생을 다 쏟는다 해도 꼭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고민이 깊어진다.


 세 번째 이유는 임신과 출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평생 허약 체질이었다. 내 인생에 진짜 건강했던 시절이 있긴 했던가. 체력으로는 어디서나 단연 최약체다. 이 쓰레기 같은 몸으로 임신/출산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떻게 하긴 한다 치더라도 그 뒤에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슴이 처지거나 배가 나오는 신체변화도 솔직히 싫은 것 중 하나다.


 네 번째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싫어서다. 민망하지만 나는 남편하고 둘이서 알콩달콩 사는 것이 참 행복한데 아이가 있는 집을 보면 모두 아이가 우선이고 배우자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다. 사랑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는 손이 많이 가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일 것이다. 물론 아이가 가족을 더 끈끈하게 이어주기도 하겠지만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남편과 연애질(?) 하는 것이 마냥 좋다. 아이가 생기면 남편하고 둘이서 데이트 할 일도 줄고 서로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그냥 개나 키우면서 평생 신혼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신혼 때나 하는 생각이라고 웃는 결혼 선배들 말처럼 나중엔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이상이 아이를 좋아하는 내가 내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는 이유들이다. 딩크를 결심하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아서 위에 나열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5% 정도는 아직 고민을 하고 있다. 엄연히 시간제한이 있는 고민이기 때문에 더 치열하다. 괜히 이러다가 한 마흔다섯 쯤에 낳아야겠다고 결론이 날까 봐, 그게 제일 두렵다. 대체 이 글에서 두렵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아이를 낳고 내게 닥쳐올 삶의 모습이 아직은 다 두렵다.


 이미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으레 '낳아봐, 낳으면 예뻐'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다는 모르지만 개 키우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개를 만나기 전에는 나도 내가 개를 이렇게 사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우리 댕이를 통해 한 번 했다. 그러니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또 새로운 행복이 열릴지 알 것도 같다. 그렇지만 강아지를 들이기 전에도 그렇게 고민했었는데 인간 하나 세상에 내놓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 하나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 역시 개를 키우면서 느낀 바가 있다. 막상 아이를 낳으면 사랑이야 하겠지만 지금 나의 삶도 너무 소중해서 고민이 깊다아이가 좋지만 아이를 키우는 삶이 두려워서, 매일 딩크와 유자녀의 삶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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