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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05. 2015

그래도 그는 글이 먼저였다

내가 사랑한 글쟁이 5. 진중권

태초에 말[言]이 있었다. 그 뒤에 글[文]이 있다. 그에게는 글이 먼저였다. 말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말’로 기억한다. 글이란 ‘텍스트화 된 말’이지만 그것이 항상 같이 노는 것은 아니다. 촌철살인의 논객, 진중권도 그렇다. 


그는 글이 먼저였고, 지금도 많은 글을 쓴다. 물론 ‘말’도 많다. 거의 모든 사안에 그는 코멘트를 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다. ‘글쟁이’ 진중권은 대체로 애정의 대상이지만 ‘독설가’ 진중권은 호불호가 갈린다. 나에게 그는 독설가이기 전에 글쟁이였다.  


어떤 이슈가 생기면 그의 트위터부터 검색해보는 사람이 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아예 ‘진중권이 이렇게 말했다’가 늘 기사화된다. 이런 사람이 국내에 딱 둘 있다. 진중권과 ‘기부천사(왜 이런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변희재. 서울대 미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빼면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 좌와 우를 대표하는 논객이라고 둘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이건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언론의 작품에 불과하다. 분명 둘은 급과 격이 다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잠시 포털을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바쁘다. 친박의 유승민 사퇴 압박에 대해 “새누리당 사태는 마치 한국판 문화혁명을 보는 듯. 주석님의 선동에 거국적으로 반동분자 축출 운동이....."라고 꼬집었다. 또 기독교 단체가 서울 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자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천민 자본주의를 닮아 천민 기독교가 되다 보니... 교회의 수도, 종교적 열정도 과도해요”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한때 그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는 거의 모든 사회적 쟁점에 ‘간섭’한다(최근 표절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신경숙 문제에 대해서만 빼고). “미국의 대통령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축하하는 감동적 멘트를 날릴 때, 한국의 대통령은 배신자들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는 섬뜩한 멘트를 날리셨습니다. 월하의 공동묘지.....”,  “근데 그 홍대 일베 교수...... 영어 문법이 엉망진창, 표현에서 사제까지 견적이 안 나와요. 그 실력에 문제를 왜 영어로 내나?”


◇유학비 마련하기 위해 서른에 쓴 <미학 오디세이>


그래도 그는 글이 먼저였고,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시대 최고의 글쟁이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미학 오디세이(전 3권)>는 명실상부 국내 대표의 스테디셀러다. 그동안 약 80만 부가 팔린데다 해당 분야에서 국내에서 이 책 이상의 평가를 받는 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주로 출판사에서) 성급하게 ‘고전’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처음 썼을 때, 그러니까 1994년,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물론 세계의 명작과 고전은 대부분 이 나이 때, 혹은 20대에 쓰인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미학에 대한 아무런 토양이 없던 그 시절에 서른 살의 석사학위생이 이 책을 썼다는 것은 분명 흔한 일이 아니다.   


하긴 진중권 스스로도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됐을 때의 황홀한 기쁨 속에 쓴 글이자 내가 언제 이런 걸 썼을까 하는 경탄 혹은 경이로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어떤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이 책의 탄생 비화를 더 솔직하게  토로하기도했다. “사실 <미학 오디세이>는 석사 과정 마치고 독일 유학 준비하면서 비행깃값을 마련하기 위해 쓴 책이에요.” 

<미학 오디세이>에 실려 있는 에셔의 그림. 

서울대 미학과에 들어갔지만 진중권은 미학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대학원에서 미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모르던 걸 알게 되니 재미있어 죽겠더란다. 독일로 유학을 간 지 1~2년 정도 지나자 ‘책 잘 읽었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입소문만으로 판매량이 조금씩 늘면서 그렇게 20년 동안 스테디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그리고 '진빠'가 되다


하지만 나에게 진중권의 첫 책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전 2권)>였다. 이 책은 <미학 오디세이>와 <춤추는 죽음(전 2권)>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책이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와 조롱인데, 그것이 이럴 때 이렇게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익히 알 듯 이 책의 제목은 조선일보 조갑제 기자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시) 박정희 찬양에 앞장섰던 이인화 등의 텍스트를 풍자한 글이다. 이들이 그토록  애정해 마지않는 숭고, 비장, 운명, 영웅, 초인 등과 같은 단어들이 이전부터 파시스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악용됐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그들의 글을 조롱한다. 


그 책을 읽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진(중권) 빠'가 되었다. 그가 책을 출간하기만 하면 무섭게 서점(온-오프라인)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그때는 지금처럼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팟캐스트도 없던 시절이다. 그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따라가기가 지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맞는 말만 숱하게 하는데도 여전히 변화(혹은 변혁) 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피로감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 마찬가지 이유로 그가 싫어졌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속사포와 직격탄을 날리는 그에게서 솔직히 '변희재'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최근 팟케스트에서도 활동하는 등 '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있다. 

◇'독설가 진중권'이 필요 없는 세상은 올까?


정점은 진중권이 <나꼼수>를 비판할 때였다. 그는 나꼼수가 MB의 사생활을 언급하자 “검색어 보고 식겁했다, 제발 경쾌하고 유쾌하게 가라. 심지어 박정희 같은 독재자도 김대중의 사생활은 문제 삼지 말라고 했다”고 독설의 화살을 정조준했다. 심지어 나꼼수 팬들의 반격을 받자 “(나꼼수는) 나한테 덤벼야 이길 수도 없고, 좋을 것도 없다는 것 알아. 나꼼수는 자기들 얘기의 한계 아는데 듣는 이들만 모른다"며 그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나갔다. 아마 이때였을 것 같다.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팀의 ‘일절 무대응 전략’으로 그의 조롱과 비판은 조금씩 누그러졌지만 (나에게) 그 전의 진중권이 아니었다. 트위터에서 진중권을 차단하고(물론 나만 일방적으로 친구를 맺은 관계였지만), 책꽂이 VIP석 있던 그의 책을 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의 책은 더 이상 사지 않았다. 


지금도 진중권을 이전처럼 좋아하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몇 권의 책을 사긴 했지만 그냥 책꽂이에 꽂아둔 채 들춰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한때(어쩌면 가장 중요할 때) 나의 소중한 책 읽기 대상이었고, 글쓰기 선생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언감생심 나도 뇌가 섹시해진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다. 어쩌면 그의 독설이 들리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의 독설이 듣기 싫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이 사회를 빨리 정상화시키는 거다. 민간 소형 비행기를 유유자적 모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독설가 진중권'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다. 


문득 <미학 오디세이>를 다시 읽고 싶어 졌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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