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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Apr 24. 2024

똑똑한 강아지

본격 내 새끼 자랑


무강이와 함께 산책을 나가면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는 감탄과 함께 꼭 듣는 소리가 있다. 얘가 그렇게 똑똑하다면서요?     


그러면 역시 나는 줄을 꼭 잡고 잔머리가 비상해요, 라고 답을 한다. 사람들은 그 대답에 웃으며 무강이를 쓰다듬어준다. 영문을 모르는 녀석은 그저 손길이 좋아 헤헤 웃는다.      


보더콜리는 똑똑하다는 말이 정설처럼 퍼져 있다. 얼마나 똑똑한 지 보더콜리로만 이루어진 팀은 어질리티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너무 똑똑해서 다른 강아지의 줄을 물고 사람처럼 다니는 녀석의 영상도 본 적이 있다. 어쩔 때는 사람보다 낫다는 말도 종종 나오기도 한다.      


보더콜리의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이유는 어느 동물학자의 실험 때문이다. 1994년에 138가지 견종의 복종형 지능을 측정했는데 1등을 차지한 견종이 바로 보더콜리였다. 이 결과로 인해 보더콜리의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은 단순히 복종형 지능만을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보더콜리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양몰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적응형 지능과 본능형 지능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카페에 가도 간식만 있으면 문제 없다멍

이런 공식 기록을 찾아보지 않아도 내 옆에 같이 살고 있는 무강이를 보면 보더콜리의 똑똑함을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다. 첫째로 기억력이 좋다. 함께 노는 친구의 이름을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스쳐가는 말로라도 이름을 잠깐 이야기하면 두리번거리며 찾느라 바쁘다.      


또한 산책하다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마주쳤다면 그 위치를 기억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 위치를 지날 때마다 그 사람을 찾는다. 매번 가야 하는 단골 카페, 세차장 아저씨들의 간식 등을 놓쳤다면 미련이 남는지 계속 뒤를 돌아본다. 나름의 루틴이 있는데 수행하지 못해서 아쉬운 눈치였다.      


산책을 하면 늘 직선으로만 걷는 것은 아니다. 냄새를 맡거나 배변을 하기 위해 길을 멈추거나 빙빙 돌 때도 있다. 그럴 때 곤란한 순간이 바로 줄이 꼬이는 때다. 빙글빙글 돌다 보면 나무에 줄이 걸린다. 화단 중앙에 있는 나무에 줄이 돌돌 말리면 참 귀찮다. 그럴 때 나는 무강이에게 손짓으로 나오라고 방향을 가리킨다. 무강이는 내 손의 방향을 따라 스스로 줄을 풀며 나온다. 스스로 줄을 푼다니, 꽤 똑똑하지 않은가?     


똑똑함의 척도를 재보라 한다면 아마 개인기를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를 따질 수도 있겠다. 무강이는 할 수 있는 개인기가 몇 안 되긴 하지만, 배우는 속도는 빨랐다. 워낙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안달을 내며 배웠다. 보통 단어 하나에 2~3일이면 마스터하는 것 같았다. 요즘엔 내 무릎 위에 뛰어올라 안기는 걸 가르쳐보고 있는데 너무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생각만큼 빨리 되지는 않고 있다. 무릎에 안겨야 하는데 애꿎은 내 다리에 무강이의 발톱자국이 죽죽 생기고 있는 중이다. 


똑똑한 무강이는 그래서 호기심이 많다. 계단은 무조건 올라야하고 샛길도 한번은 꼭 들어가 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무리 지쳐도 계단이 눈에 보이면 일단 올라가고 본다. 체력도 좋아서 한 번에 쭉쭉 몇 개씩 오른다. 그런 성격을 이용해 계단만 보이면 오르고 내리길 반복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젠 예전처럼 많이 오르지 않고 내 눈치를 살핀다. 자기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호기심이 많으면 주변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었다. 주변에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예민하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냄새가 자극이 되었다. 똑똑하고 예민한 기질은 개인기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도시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악수가 되기도 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그냥 두지 못하고 예쁘다고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짖기도 했다.      


똑똑하고 예민한 무강이와의 삶은 그래서 힘들다. 산책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주변에 뭐가 오지는 않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의 산책이 매일매일 이어진다.      


다행히 무강이의 똑똑함은 슬슬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낯선 공원에 나들이를 가서 잔뜩 긴장했는데 무사히 산책을 마칠 수 있었다. 근거리에 처음 만나는 강아지들이 가득했지만 우리에게만 집중하며 짖지도 않고 잘 걸어주었다. 처음 가는 카페에 가도 얌전히 앉아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은 무강이를 예쁘게 봐줄 수 있었다.      


아마 무강이는 자신의 주변이 분명히 보였을 것이다. 평소에 다니던 공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기도 냄새도 낯설고 보이는 것도 달라서 예민한 기질이 더욱 폭발했을 테다. 그래서 심장도 더 빨리 뛰고 다리도 더 많이 움직였다. 우리를 따라 걷긴 했지만 똑바로 걷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확인하느라 빙글빙글 돌았다. 가끔 가다 팡팡 튀어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낯선 강아지를 보면 짖지 않았다. 우리가 의자에 앉으면 함께 앉았다. 내가 화장실에 가면 어디에 가는지 계속 지켜보고 기다렸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많이 쓰는 말 : 기다려~

개의 사랑은 인간과 함께 있고 싶은 욕구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날 때가 많아서 미안해질 때도 있다. 무강이 역시 그렇다. 분리불안도, 오토바이가 보이면 달려드는 것도 모두 그렇다. 인간의 사랑에 목말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예쁨 받을 짓을 골라서 한다. 양몰이견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를 쫓으면 사랑 받을 줄 알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런 기질을 죽이는 훈련을 받으며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이 개발시킨 본능이 이제는 필요 없는 문제점이 되어 없애는 훈련을 받으니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무강이는 우리가 좋다고 웃으며 바라본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도 참고, 낯선 개를 보면 우리의 손짓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이런 변화는 너무 느리기 때문에 우리는 빠르게 포착할 수 없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변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맹목적인 사랑의 변화에 둔감하면 안 된다. 결코 편하지만은 않은 무강이와의 산책이지만, 그래서 더욱 멈추지 않고 매일 나가게 된다. 실제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무강이의 산책을 보면 그 똑똑함을 확신하게 된다. 강아지는 모두 똑똑하다. 인간의 사랑을 받기 위해 강아지는 못할 것이 없다. 무지한 인간은 과연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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