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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19. 2022

식기세척기가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꼭 사고 싶어




이사 가기 일주일 전 가전제품 매장을 들렀다. 수평이 맞지 않은 채로 돌아가다 망가져버린 통돌이 세탁기는 이사하면 드럼 세탁기로 바꾸기로 했었는데 떠날 준비를 다 해놓고 보니 세탁기 없이 이사하게 생긴 것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백화점을 들렀다. 가전제품 여러 개를 할 거면 백화점이 싸더라는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남편과는 몇 년만의 백화점행이었다. 위치 안내도 앞에서 현 위치를 짚으며 가전제품 매장을 찾아 걸었다. 많이 바뀌었네. 뭐가 없어진 것 같아. 대신 가구 매장이 크게 생겼네. 요리조리 구경을 하며 걷다가 알록달록한 가전제품을 만났다. 4…400??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 직원에게 물으니 백화점은 신제품만 있는 곳이라고. 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아이에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물리고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맞은편 가전제품 매장으로 가보자.





세탁기를 보러 왔다고 하자 남자 직원은 쪼르르 줄지어 있는 드럼 세탁기 앞으로 안내했다. 맨 앞에 자리한 세탁기부터 소개받았다. 가격을 묻고 옆으로, 안쪽 제품으로 옮겨갔다. 최신 모델과의 가격차이가 몇만 원도 채 나지 않는 점이 이상했지만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무광 스타일도 고려해 볼 만했지만 나는 유광 화이트로 작년 9월에 출시된 모델로 결정했다. 분리 세탁이 가능한 미니 워시는 별 고민 없이 빼고. 쏴아 쏴아. 세탁기를 결정하니 시원하게 쏘아올리는 물줄기에 눈이 갔다. 이건 얼마예요? 식기세척기였다. 빌트인은 못 한다고 하니 프리스탠딩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모델은 현재 전시된 제품 하나밖에 없다고. 그 자리에서 (거의) 바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샀다. 결재하고 다음날 안 사실인데 모델의 스펙을 하나도 묻지 않았다. 백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는데 10분도 채 고민하지 않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아이 과자 사는 것 보다도 덜 고민했다.





이사한 다음  아침, 식기세척기 설치 기사가 왔다. 그런데가슴이 철렁했다. 고객님~ 여기에는 식기세척기를 설치할 수가 없어요. 이삿짐이 들어올  냉장고 위치로 남편과 내가 고민을 하니 작업자  분이 베란다에는 냉장고 자리가 나오지 않으니 식기세척기를 여기에 두고 원래 식기세척기 자리로 생각한 싱크대 옆에 냉장고를 두는  나을  같다고 하셨다. 냉장고에 자리를 양보하며 식기세척기 쓰기는 불편해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싶었는데.   전에나 베란다에 설치했지 요즘은 규정상 그럴  없다고 한다. 남편은 바로 그럼  되는 거지 , 했다. 뭐라고? 식기세척기 때문에 멀쩡한 냉장고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사분은 며칠 고민하시고 결정되면 연락 달라며 떠나셨다. 맙소사.. 그리고 식기세척기는 타공이 필요했다.  간단한 사실도 몰랐다니. 애초부터 전세살이에 식세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사 오기 , 일주일 동안 해도 해도 즐거운 설거지였다.  해방될 거라는 꿈에 부풀어서.





어제저녁은 치킨 말고 보리밥정식을 시켰다. 나물을 한데 섞어 비비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무설치 식기세척기가 있던데. 타공도 필요 없어. 그래도 부피가 있긴 하더라. 조리대가 작아지긴 하겠지만~~ 남편은 여기까지 듣더니 더 이상 식세기에 ㅅ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얼마나 바라 왔는데… 하지만 오늘 주방을 정리하고 이사 온 지 5일 만에 밥을 해 먹으려 요리를 하면서 좁은 주방을 실감했다. 남편이 왜 말을 끊었는지도 이해했다. 떡만둣국이 끓는 동안 불고기와 소시지를 구웠다. 저녁 맛있게 먹어. 8시 뉴스가 끝나니 식사가 마무리 되었다. 식기를 치우니 다시 그릇이 쌓였다. 설거지볼에 물을 틀어 두며 생각했다. 그릇들이 얼른 말라야 할 텐데. 아침에 설거지부터 하자. 식세기는 원래 없었다.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주방을 만들자, 괜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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