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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Jan 15. 2022

고양이도 이름을 알아듣는다

날라와 호두와 콩떡이는 다른 존재

우리 집엔 세 명의 고양이가 산다. 첫째의 이름은 날라, 둘째 이름은 호두, 셋째 이름은 콩떡이다.


날라는 2019년 4월 21일에 가족이 된 우리 집 서열 1위 고양이다. 2019년 3월 8일 생으로 여성의 날에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화천은 여성 노동 운동을 하시던 한 선생님이 퇴직 후 귀촌처로 점찍어둔 동네였다. 선생님은 화천에 갈 때마다 집 앞 고양이 하나를 돌봤는데 임신 중인 고양이였고, 그 고양이가 낳은 다섯 남매 중 하나가 날라이다. 망원동 산책 중에 갑자기 전화로 입양이 결정되어 헐레벌떡 바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환영 준비 후 만났던 날라는 새로운 환경에 잔뜩 쫄아있던 솜뭉치였다. 한 동안 날라는 며칠을 그냥 '고양이'로 불렸다. 고심하며 이름을 지으려다 생긴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름들을 고민하던 중 동거인의 제안에 따라 <라이온 킹>의 주인공 사자 심바를 뚜까 패는 용맹한 모습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고, 심바의 여자 친구 이름을 따서 이름 붙였다. 날라는 드디어 날라가 되었다. 그날부터 14평 작은 집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단어는 날라가 되었다.


"날라" "날라?" "날라!!!!" "날라~" "나알라아~" "날랄↘︎라↗︎" "나앓ㄹ하 (공기 80%, 소리 20%)" "날라야아~" 억양의 변조가 있어도 날라는 날라였다.


"날라~ 밥 먹자." "날라!!!!!! 뭐해?!?!" "날라, 어딨어?" "날라, 이거 잡을까? 날라 날라 날라아~ 이거 가지고 놀까?" 날라와의 온갖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마다 호들갑스럽게 날라를 불러대니 '날라'라는 소리에 날라가 돌아보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날라는 그 비스끄무레한 소리만 들려도 귀 레이더를 270도씩 돌려가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인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우리 날라 똑똑해.' 날라 귀가 조금만 움직여도 고도로 집중하던 내 시각은 뇌에 답변을 종용했다. ''날라는 똑똑하다'는 결괏값을 저장해. 날라 귀가 저렇게 많이 움직이잖아. 날라는 날라라는 이름을 알아듣고 있는 거라고! 날라는 똑똑해!'


날라 천재설 돌던 시절


날라라는 이름이 며칠의 고심 끝에 지어진 반면, 호두라는 이름은 게으르게 지어졌다. 일산 어느 동네 길가의 아기 고양이었던 호두를 구해준 분이 호두파이 가게 사장님이어서, '호두파이 가게 사장님으로부터 구출된 아이'로 불리다가 호두가 됐다. 호두파이 가게 사장님은 호두가 너무 키우고 싶으셨지만 사장님 와이프 분의 반대가 있었고, 호두는 호두파이 가게 사장님의 트럭에서 한 달을 먹고 자고 싸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혼자 집에서 지낼 첫째 날라가 혹여 외롭지는 않을까 해서 형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시 보호 게시판을 살피던 중, 호두가 눈에 들어왔다. 날라가 호두를 싫어할 경우를 고려해 임시 보호를 전제로 호두를 데려왔다. 2019년 10월 17일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잔뜩 쫄아 의자 밑으로 들어가선 피곤했는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몸보다 더 긴장을 한 가득 짊어진 채 꾸벅꾸벅 졸던 날라와 달리 호두는 날라와의 거리를 두기 위해 세워두었던 격리 펜스를 타고 넘어서는 온 집안을 탐색했다. 날라는 질겁을 하고 싫어했지만 온갖 하악질과 냥냥 펀치에도 굴하지 않던 호두에 두 발 두 발 다 든 날라는 호두를 품기 시작했다. 임시 보호를 마치고, 입양을 결심하며 새로 이름을 지어주려 했지만 호두는 이미 너무 호두였다. 호두는 그냥 호두가 되었다.


호두가 처음 오던 날


호두도 호두로 더 많이 불리기 시작했다.

"호두" "호듀!" "호듀호듀우~" "두두~" "호두두두두!" "두두야~" "호두우~" "홋뚜<3"


날라만이 가득 찼던 집에 호두가 들어서자 날라는 본인이 날라인지 호두인지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한 동안은 다시 날라로 불러도 대답이 없거나, 호두를 부를 때 대답하는 날이나, 날라로 불러도 대답하고 호두로 불러도 대답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한 편 호두는 그냥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호두와 날라가 공존하니 호두는 '호두'가 그냥 알아듣지 못할 인간들의 언어 중 하나로 의미 없이 귓 가에 부서지는 모양이었다. 날라도 날라가 아니고 호두도 호두가 아니고, 무엇보다 천재인 줄 알았던 우리 날라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웃기고도 슬펐다.


날라는 날라로, 호두는 호두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간식을 주거나 상호 작용을 하며 둘을 구분 짓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자아~ (손 끝으로 날라 코와 인사하며) 너는 날라, (손 끝으로 호두 코와 인사하며) 너는 호두! 뭐라고? 다시 한번, 너는 날라, 너는 호두"

"자아~ (날라에게 츄르를 주며) 너는 날라, (호두에게 츄르를 주며) 너는 호두! 뭐라고? 그럼 이제 대답해볼까요?! 날라? 대답이 없네에?! 호두? 음... 호두도 대답이 없네에? 기분이 안 좋은가보다 내일 또 할까?"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나니 날라의 혼란은 사그라들었고, 그와 반대로 호두의 자기 인식(?)은 또렷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고양이가 등장했다. 사실 날라와 호두는 둘이 합쳐 호날두라 부르기에 찰떡이었고 더 많은 고양이 식구를 맞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2020년의 7월 7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문을 닫은 듯한 어지러운 상점의 투명 진열장 한 칸에 고양이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엔 '고양이' '가져' '가세요'라고 매직으로 쓰인 A4 용지들이 붙어있었다. 아이들을 사람들에게 보내주려고 하던 분은 다름 아닌 바로 앞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한 술집의 사장님이었고,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 일곱에 그 고양이들의 어미 하나까지 총 여덟이나 되었다. 작은 크기의 귤 상자에 먼지가 많이 날리는 화장실과 고양이 여덟이 사는 것은 아이들 건강에도 나빠 보였다. 또, 혹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아이들을 데려가서는 해코지하진 않을까 싶었다. 엄마 고양이를 제외하고 아기 고양이 일곱을 몽땅 데려왔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아기 고양이 일곱의 집을 찾아주며 보냈다. 일곱 중 여섯을 보냈고, 그 일곱 중 가족을 찾는 것이 요원해 보였던 마지막 하나를 가족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고양이'의 임시 이름은 콩떡이었다. 콩떡이는 우리 집에 오기로 결정되기 전, 임시인 이름이지만 이미 몇 개월을 그 임시인 이름으로 지냈고, 그렇게 불려 왔다. 콩떡이라는 이름으로 의미가 쌓여 온 이 존재를 가족이 되면서 이전의 역사는 임시였다며 새로 이름을 주고, 이름을 바꾸는 것이 이상스레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콩떡이는 정말 콩떡이 같이 생겼다.


왼쪽 사진의 우측 상단이 처음 만나던 날의 콩떡이, 오른쪽 사진은 요즘의 콩떡이


그렇게 날라와 호두로 구성된 호날두는 콩떡이를 만나 콩날두가 되었다. 다행히 자아가 단단히 형성된(?) 날라와 호두는 콩떡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들려도 자신과 헷갈려하지 않았다. (다만 날라만 새로운 존재를 극도로 혐오했을 뿐이었...)


콩떡이도 날라와 호두 없이 콩떡이로 지냈던 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날라를 부르면 날라가 "이얘용!!!!"으로 화답하며 자신이 날라임을, 호두를 부르면 호두가 "앵~"으로 자신이 호두임을 단단히 주장했기 때문에 곧 콩떡이는 자신이 콩떡이인 것을 눈치챘다. 내 새끼 똑똑하기도 하지.


그렇게 콩날두 체제가 된 지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난 지금은 공고하게 각자가 각자로 존재한다.

"날라" 하고 부르면 "웅냐웅!"

"호두" 하고 부르면 "..." (귀 쫑긋 후 눈 꿈뻑거리며 마주치기)

"콩떡이" 하고 부르면 "우엥?"

(기분이 내킬 때냐 아니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도 하지만 어지간하면) 각자의 타이밍에 맞춰 각자의 방식대로 답한다. 


콩날두의 밤과 낮, 눈에서 보이는 광기의 차이가 있다.


'고양이도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수의학에서 확인해준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명제가 나의 세계와 나의 관계로 오면 호들갑 떨고 싶은 감동이 된다. 날라가 날라라는 사실이, 호두가 호두라는 사실이, 콩떡이가 콩떡이라는 사실이 코 끝 찡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리고 날라가, 호두가, 콩떡이가 각자를 각자로 인식하고 나와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각각의 특별한 관계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벅차고 이 벅참으로 이내 목 울대가 긴장한다. 이때 울대의 긴장감을 잘 삼켜내지 않으면 가끔 주책맞은 눈물이 참을 수 없게 고이다 흐르기도 하고, 그러면 참을 수 없던 게 눈물보단 터져버린 애정인가 싶어 스스로를 더 주책스럽다 느끼게 된다. 결국 날라, 호두, 콩떡이라는 존재가 나의 마음을 만지는 소중한 존재들이란 건 확실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만.


날라에서 그치지 않고 호두라는 이름으로 콩떡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된 고양이들과의 관계와 이 고양이들이 주는 애정을 통해 더 많은 이름 없는 고양이들이 이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특히 요즘처럼 꽁꽁 길이 얼어붙는 추운 계절에는 길 생활하는 고양이들이 그냥 '길고양이'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름 붙여주는 개별적인 고양이가 되면 좋겠다고, 이름 붙은 고양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고양이도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얼핏 보면 당연한 명제가 인간들의 삶에서 실현될 때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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