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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an 28. 2022

위풍당당 한국김치

Feat 당근 김치

“선생님, 빌니우스에 한국 반찬가게가 있어요”

“어 정말, 한국 반찬가게가 있다고?”

“그 가게 딸이 리투아니아어를 정말 잘해요”     


  한국식당도 발틱 3국을 통틀어 딱 하나 있었다가 지난해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고 했는데......? 공항 근처 Asian mart에서 한국 음식을 대거 쇼핑하는 교환학생들의 블로그를 뒤적이며 ‘여길 언제 한번 가야겠군’ 하던 차에 제자 바보라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교민이라고는 이십 명 내외, 아직 대사관도 없는 빌뉴스에 한국 반찬가게가 있다고? 그 교민들도 지난번 한국-리투아니아 외교 체결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부분 인사했는데 누구시지?

주말 아침, 바보라가 빌뉴스 구시가지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만난 김에 한국 반찬가게도 가 보자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 이세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대뜸 한국어로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어디로 보나 한국인으로 보이는 반찬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왠지 수줍어하시며 자신 없는 한국어로 주저하시며 대답하신다.     

“네, 한국어 못해요”

“아......”

 빌뉴스 기차역 앞에 있는 빌뉴스의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 Hall Market(16세기부터 이 장소에 시장이 있었고 1914년부터 지금의 이름과 건물로 시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에는 정말 한국 반찬이라고 크게 써 붙인 한국 반찬 가게가 있었다.      

“김치도 있어요?”

다른 손님과 리투아니아어로 이야기하시다 주인아주머니는 건너편 쇼케이스에 있는 김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신다. 어딘지 모르게 리투아니아 버전의 야채 절임과 한국식 반찬 사이에 정체성이 있어 보이는 미역무침, 당근 채 절임들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김치가 보인다. 김치 옆에는 한국식 오이지도 보인다.

한국어로 한국반찬이라고 써 놓은 빌니우스 유일무이 한국 반찬가게 
한국의 김치처럼 며칠 발효해서 먹는 양배추와 당근 샐러드
한국 반찬가게에서 만난 반찬들
다양한 리투아니아식 절임
리투아니아 전통 검은 빵 (Kaimiška juoda duona)으로 호밀에 천연효모를 사용하여 시큼하고 건강한 시골스러운 맛이 난다.

당연히 교민이 운영하는 가게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반찬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셨다는 고려인이었고 오래전부터 빌뉴스에서 사신다고 했다. 김치와 진열대에 있는 미역을 사들고 “감사합니다”와 “Labai Aciu(라바이 아츄)”라는 리투아니아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서는데 쉰들러 리스트를 본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주머니는 그 어머니, 그 어머니는 또 그 어머니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셨겠지? 어떻게 리투아니아에 와서 살게 되셨을까? 궁금했지만 그 질문들은 내 마음에 그대로 담았다.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고향이 아닌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한국어가 아닌 이주국의 언어로 살아가면서도 음식은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음이 고마웠다. 강제 이주로 인해 또 다른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또 그 자손의 자손인 2세 3세의 디아스포라들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식사 때 비트채 절임만큼 많이 먹는 당근채 절임에는 ‘Korėjietiškos morkų salotos’라는 ‘한국식 당근 반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또한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이 김치 대신 구하기 쉬운 당근으로 김치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리투아니아에서는 이 ‘코레이에티쉬코스 모르쿠 살로토스’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당근 김치가 이들의 주식인 검은 빵과 감자요리와 함께 늘 식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이다.  


  오래전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만났던 고려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었다. 그때 만났던 아니타와 샤샤는 안산의 키부츠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에서 대학을 가고 싶어 검정고시를 준비하다 결국 비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타슈켄트로 돌아갔었다. 리투아니아에 많은 폴란드어를 하는 국민들은 2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토가 변경되며 강제로 리투아니아에 남게 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한국의 이산가족 같은 아픔이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빌니우스에 살다 보니 잔잔한 감동이 있는 동화인 줄 알고 펼쳤던 동화책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사의 아픔을 직면하게 되는 다큐멘터리도 바뀐 것 같을 때가 많다. 천천히 걷다가 자꾸 마주하게 되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쓸쓸하고 먹먹하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모습들은 골목을 돌아 나서면 만나게 되는 빌니우스의 수많은 성당들만큼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아마도 이 평화로움은 슬픔을 견뎌낸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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