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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Jan 10. 2022

오랜만에 집밥 먹으니 너무 맛있다

“내가 요즘 몸이 안정이 안된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자꾸만 걱정이 된다.”

지난주부터 전화만 하면 친정아버지가 힘들어합니다. 

2021.9.24. 엄마가 고관절 골절로 집을 떠나온 지 벌써 3개월 하고도 반이 지나갔습니다.     


그날 엄마의 사고는 뇌졸중으로 왼쪽 편마비가 와 있던 엄마가 걷는 연습을 한다고 아버지랑 거실을 걷다 무게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발생했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버지는 미처 어찌할 사이도 없이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아버지는 자책과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습니다. 

남자이지만 정말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지닌 아버지는 모든 것이 당신 탓인 것처럼 그 상황이 슬프기만 한 것입니다.      


“내가 너그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꼭 좀 낫게 해서 집에 데리고 와라.”

“걱정마세요, 아빠. 그건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사고에요. 제가 얼릉 낫게 할께요.”

그런데 83살의 나이는 뼈가 붙고 정상의 근력으로 돌아가는데 엄청난 기적 같은 무언가를 요구해야 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사실 날이 갈수록 근력이 사라지고 기력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재활운동을 하다 힘이 없어 병실로 돌아왔다는 전화가 와서 가슴이 ‘쿵’했더랬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던 아버지는 외로움과 무기력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 듯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불편함을 전해듣고도 참 이기적입니다.

지난주는 아들의 대입정시 원서접수가 이루어져 온통 그곳에만 신경이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남편의 승진심사가 연이어졌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선약으로 경북 성주에 사시는 지인에게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머릿속이 온통 시간계산으로 복잡해졌습니다. 

하루 휴가를 내서 다음주에 가야겠다 싶기도 하고 뭐 그리 급할게 있나 주말에 가자 싶었는데 가만 보니 또 그날은 엄마의 면회날입니다.      


이래저래 비워져 있는 시간은 쉽지 않습니다. 

1월의 2째 주말 아침, 온 가족이 경북 성주로 떠났습니다. 

재수한 아들 정시원서 접수가 끝나면 가리라 계획되어 있었고 마침 남편도 금요일 심사승진이 확정된지라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빠, 엄마, 딸, 아들 완벽한 4인 가족이 신나는 기분으로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반가운 분을 만나 장작불로 대나무 통 삼겹살과 고구마 감자도 구워 먹고 아름다운 시골 경치도 구경하고 마냥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성주에 계시는 지인이 그러셨습니다. 

“여기서 합천 해인사가 30분 밖에 안 걸려요. 내일 아침 들러다 울산가세요. 팔만대장경도 보고”

“어머, 좋겠네요. 가깝고... 다시 오기 힘든데...”     


맛있는 저녁도 먹고 이래저래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즐거운 만큼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묵지근해져 옵니다. 

가만 생각하니 아버지였습니다. 

선약이라 어쩔수 없이 경북으로 왔지만 이번주에는 꼭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평소처럼 일요일 새벽 5시 잠을 깨고 고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귀엽고 귀한 내 생명 들입니다. 그러니 저절로 아버지가 얼마 전 제게 보내신 일기장이 생각납니다.

1977년 6월 어느날 갑자기 사지마비가 되어버린 저를 부산대학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아버지는 고성에서 병원까지 출·퇴근을 했다고 했습니다.     


새벽 4시까지 잠못드는 나를 할머니와 번갈아 업고 잠을 재우고 또 출근 준비를 했다 했습니다.

그 시절 교통 사정이면 못해도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 이상이었습니다. 

목이 메여오고 가슴이 또 아려옵니다. 

“여보, 우리 오늘 해인사 가지 말고 고성 아빠한테 가자. 얼른 준비해라.”     


그리고 평소보다 제법 이른 시간에 나서 우리는 경북 성주에서 경남 고성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트에 들러 간단히 시장을 봤습니다. 남편이 귀찮은데 국밥이나 한 그릇 사먹자 했지만 제 마음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분명 혼자서 제대로 된 밥을 드시지 못했을텐데 제 손으로 따듯한 밥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초췌하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10시 30분이 넘었지만 아침도 안 드시고 계신다고 합니다. 

오리불고기, 5색 나물, 잡채, 생선, 조개탕, 초밥 등을 준비하고 주부경력 24년 차의 내공으로 30분 만에 뚝딱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하얗고 따듯한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드십니다.

“어째, 밥을 이렇게 잘 했노. 참 맛있게 됐다. 오랜만에 집밥 먹으니 너무 맛있다.”

마음이 또 ‘철렁’합니다. 

따듯한 커피까지 한잔 나눠 먹고 나니 아버지는 어제 잠을 잘 못 잤다며 곤한 낮잠을 주무십니다.    

  

두려움에 떨다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이제 아버지는 숫자로만 어른이지 마음은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졸리우는 눈이 시렵지만 그렇다고 낮잠을 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들과 바닷가 산책을 갔습니다.      


시골 군청 행정정책이지만 여기저기 적극 개발로 바닷가 매립지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고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과 어우러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가 있습니다.

아들이랑 하트 그네에 앉아 무념무상으로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저 말 없는 이 시간이 자녀교육이고 또 감사입니다.     


반가운 손님이 온 시간에 가만히 있을 아버지가 아닙니다.

주문해 두었던 새우튀김, 생선회를 찾아와 저녁상이 마련됩니다. 

한 끼라도 더 갓 지은 밥을 드리고자 또 쌀을 씻고 밥솥에 불을 켭니다. 

‘칙칙칙칙~’ 밥솥 추 돌아가는 소리가 아름다운 멜리디로 전해집니다. 

겨울철 차가운 바다에서 헤엄치던 생선 살은 그 역동감으로 정말 졸깃하고 단단한 달큰함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남편도 아이들도 연신 감탄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밝아진 아버지 얼굴을 봅니다. 

“엊그제 니하고 전화할 때 집에 한번 온다 해서 혹시 오늘 오나 해서 내가 어제 청소를 열심히 했는데 보람이 있다. 집이 좀 깨끗하제?”     


아버지의 말 때문인지 제 감정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얼릉 챙기라. 지금 가도 울산 가모 한밤중 이것다. 내일 출근해야지.”

아버지를 꼭 안아드립니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계세요. 식사도 잘 챙겨드시구요.”     

딸, 아들도 외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립니다.

“와줘서 고맙다. 너그가 왔다가니까 마음이 너무 좋다. 반갑고 감사하다.”

차가 움직이고 아버지는 동네 어귀를 벗어날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또 눈이 아파옵니다.      

딱히 어찌 할 것도 없고 할수도 없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기도만 할 뿐입니다. 


“아빠, 제발 건강하게 마음 편안히 계세요.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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