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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M Jan 23. 2022

레아 세두,《프랑스》의 얼굴

(※ 이 글에는 영화 '프랑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반란적 상황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관심인가요, 무기력인가요?   


  생중계되는 대통령 공동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가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질문한다. 대통령은 시작부터 공격받았다며 움찔하는 척을 하고는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스타기자이자 방송사 앵커인 프랑스는 대통령의 답변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회견장 뒤쪽에 서있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엄지척을 하고 윙크와 웃음을 주고 받느라 바쁘다. 매니저는 양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뒤 “푸~” 하고 입술로 터트린다. 프랑스의 한탕주의식 공격적 질문이 SNS에서 크게 ‘터졌다’는 뜻이다. 

 회사로 돌아온 프랑스와 매니저는 방송사 문앞에 몰려와 환호하는 대중들을 보면서 입으로 바람을 “뿜빰뿜빰” 내뿜으며 사실상 조롱한다. (영화가 진행되면 진짜 조롱당하는 건 누군지 알게 된다) 레아 세두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스타기자이자 ‘셀럽’이다. 


스타기자이자 앵커인 프랑스 드 뫼르역은 레아 세두가 맡았다.


  대통령도 이름을 아는 유명 기자 프랑스(레아 세두)는 화려한 외모와 패션,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현장 취재로 이름높다. 그런데 실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분쟁지역으로 취재하러 간 프랑스, 뭔가 이상하다. 현장 상황을 취재해서 카메라에 담고 민병대장을 인터뷰하는 일보다 자신의 활약을 영상에 담는 것에 더 진심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총을 든 민병대원들에게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바라보라며 “액션”을 외치고, 민병대장과 인터뷰에서는 뻔한 답변을 촬영한 뒤에 질문하는 자신의 장면만(샷-리버스샷) 따로 찍느라 여념이 없다. (카메라가 한 대뿐이라 질문하는 기자의 모습까지 찍으려면 실제 인터뷰가 다 끝난 뒤 질문만 따로 찍어야 한다. 방송기자들은 통상 이렇게 하지 않는다) 

 민병대장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런 상황을 수줍은 듯 받아들인다. 왜? 그녀는 셀럽이니까. 인터뷰를 마친 민병대장은 프랑스에게 셀카를 함께 찍자고 요청한다. 프랑스는 그 누가 그 어떤 상황에서 셀카를 찍자고 해도 흔쾌히 수락하는 편이다.   


  레아 세두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예고편을 본 뒤 영화 《프랑스》가 언론과 저널리즘 현실을 심도깊게 다루는 흥미진진한 영화일 거라고 기대했다. 물론 이 영화가 언론 또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인 것도 맞고 내용도 흥미롭다. 하지만 133분의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이 영화가 우리 시대의 셀럽(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셜)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이고,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이고, 대중에 대한 이야기이고, 결국에는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작인 《007: 노타임투다이》에서 본드걸을,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누드모델로 나선 간수역을 맡아 과감한 연기를 선보였던 레아 세두는 《프랑스》에서는 스타기자인 프랑스 드 뫼르역을 맡아 셀럽의 페르소나 뒤에 숨겨진 복잡한 내면 풍경을 섬세한 표정 연기 하나만으로도 부족하지 않게 표현해낸다.   

 이제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여배우 중 한 명이 된 30대 중반의 레아 세두를 향해 카메라는 자주, 걸핏하면, 천천히, 줌인한다. 레아 세두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위력적인 줌인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느린 줌인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프레임을 장악한다. 그녀의 표정은 무엇이라 형용하기 쉽지 않다. 미소인지 울기 일보직전인지, 분노인지 연민인지, 자성인지 우월감의 표현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전쟁터에서 취재하는 프랑스


 당신은 왜 늘 당신 중심으로 뉴스영상을 찍죠?


  한 TV토크쇼에 출연한 프랑스는 사회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프랑스는 그게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주관적인 시점으로 뉴스에 다가서는 게 자신의 보도 방식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프랑스는 늘 ‘스펙터클한’ 뉴스의 현장 속에 있고, 그 ‘스펙터클’ 속에서 자신의 활약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방송뉴스를 만들기 때문에 뉴스의 심층으로 들어가지 못하는(또는 않는) 것으로 보이고, 그 때문에 식자층에게는 욕을 먹기도 한다.   

 어느 파티 화장실에서는 만난 한 중년 여성은 프랑스에게 “당신은 좌파냐 우파냐”고 묻는다. 프랑스는 “차이가 뭐죠?”라고 빠져나가지만 그 여성은 “그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 아닌가요?”라고 힐난하듯 되묻는다. 또 프랑스는 자신의 뉴스에 출연한 패널로부터 시청률만 좇는 “쓸모있는 예쁜이”라는 독설을 듣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매니저는 방송사 복도에서 흐느끼는 프랑스를 명품 사러 가자며 달랜다. 이 매니저는 프랑스에게 안 좋은 일이 터지면 “괜찮아. 이틀만 SNS를 안보면 돼”라고 말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 모로코 이민자가 몰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타블로이드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돌보면서 여러가지 심적으로 힘든 일이 겹친 프랑스는 방송 은퇴를 선언하고 알프스가 보이는 요양시설로 향한다. 그러나 요양시설에서 만나 마음을 준 남자와 우여곡절을 겪고 헤어진 끝에 다시 방송 복귀를 선언한다.     

 다시 뉴스의 현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전쟁터를 취재하는가 하면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현장연출을 하지만 목숨(스태프들 것까지) 걸고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 보트에 탑승해 르뽀 뉴스를 제작한다. 

 그런데 방송 중에 문제가 터진다.  자신의 난민 보트 동행취재 보도가 나가는 동안 스튜디오 앵커석에 앉아 뉴스 부조정실에 있는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는 프랑스. 난민들의 불행한 장면을 보면서 주고받은 ”미쳤다”, “아름답다”, “물에 빠졌으면 그림이 더 좋았을 텐데…” 등등의 발언이 매니저의 실수로 그대로 라이브를 타고 방송에 나간다. 사람들은 방송사로 몰려와 항의하고 퇴근 차량에 올라타는 프랑스를 향해 오물을 집어 던진다.  하지만 차량에서 매니저는 말한다. “아이콘은 진흙탕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야.” 

 매니저는 24시간 동안 SNS를 끊고 이틀만 지나면 대중들은 분노도 잠잠해질 거고 다시 조금만 활약을 보이면 오히려 방송사고 전보다 더 뜰 수 있을 거라며 프랑스를 달랜다. 남의 불행과 좌절마저 ‘이야기 구조의 일부’, 즉 스토리로 팔아먹는 미디어 세상이다. 그건 톱스타와 셀럽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톱스타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셀렙으로서 견뎌내야 마땅한) 스토리를 살아가야 한다.     


  휴대폰을 든 대중은 프랑스가 언제, 무슨 상황에 있든 함께 셀카를 찍자고 요청한다. 그녀가 교통사고 피해자를 만나러 병원에 갔을 때도, 방송을 그만두고 요양시설에 있을 때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구한다. 그들은 프랑스의 불행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그 요청을 다 들어준다. 셀카를 부탁받는 것은 프랑스지만, 힘의 균형은 SNS에 중독된 대중에게 있다. 또 그걸 이용해서 셀럽은 살아간다. 그들 역시 중독자이긴 마찬가지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무엇인가에 잔뜩 화가 난 듯한 한 청년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누군가의 자전거를 이유 없이 마구 때려 부순다. 이 청년은 한 발치 떨어져서 쳐다보던 프랑스에게 말한다.    


뭐야, 한 대 갈겨 줘? 


 이 청년은 대중과 언론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그들이 셀럽을 한껏 띄워 올리는 이유는 언제든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레아 세두의 알듯 모를듯한 미소로 줌인하며 막을 내린다.    

 오늘날의 '관심'은 푼돈에 불과하다. 그 푼돈을 땔감으로 우리는 하루를 연소한다. 또한 오늘날의 관심은 중국의 전통 연극 중 하나인 천극(川劇)에 쓰이는 가면술, 변검을 닮았다. 언제든 환호하는 얼굴의 가면을 비난을 퍼붓는 얼굴의 가면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변검처럼 변덕이 죽끓듯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 여론조사를 보다보면 지난주의 지지율과 이번 주의 지지율의 차이에 놀란다. 관심은 '움직이는 것이다.' 성찰은 이제 사치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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