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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24. 2022

어느 날 문득 탕수육

     

밥해 먹는 일이 중요한 내게 부엌에서 벌어지는 하루는 반복인 것 같지만 매일 다르다. 그 속 이야기를 같다고 단정해 버리고 다시 들어가 바라보지 않을 뿐이다. 매일 먹는 밥과 국이지만 어떤 날은 묵은지가 들어간 청국장이고, 오늘처럼 엄마가 키운 배춧국이 오르기도 한다. 하루 건너 돌아오는 국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맛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괜찮아”라는 탄성이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오늘은 정말 별로야”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종종 매일 같은 밥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이런 마음은 작은 것을 지나쳐 버리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크고 멋진 것을 기대하는 붕 뜬 생각에 가려진 탓이다. 이런 것들이 내 생활에 굳은살처럼 단단히 뿌리내렸다. 먹는 일에서는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 더욱 그렇다. 방학의 점심 밥상은 매일 오르는 것과 선을 그으려 한다. 이때에만 가능한 것들을 올려야 아이들의 반응 또한 확실하고 내 일도 잘 해냈다는 기분이 찾아온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학교를 가지 않는 축제 같은 날들이지만 내게는 무얼 먹을 것인지를 궁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평범함에 선을 그으려 한다. 밥상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그냥 매일 먹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 아침밥은 이른 시간이라는 이유로 기름이 들어간 것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담백하고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 내게는 적당히가 받아들여지는 최고의 시간이다. 그다음 돌아오는 점심은 이벤트 같다. 아이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의 음식을 고민한다.    

 

철저한 준비 끝에 요리한 음식이라면 당연히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집은 종종 빗나가기도 한다. 가끔 즉흥적인 것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더 기분이 좋다. 미리 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머릿속으로 그려 놓는 일은 그만큼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이런 날은 점심이 끝나면 피곤이 밀려온다. 그러다 무심코 툭, 떠오르는 요리는 특별한 노력이 들어가지 않고 단숨에 이어져 끝난다.    

탕수육을 만들었던 날이 그랬다. 물론 탕수육을 완성하려면 손이 여러 번 가는 게 사실이지만 예상에 없이 만드는 건 그냥 대충 하는 마음이다. 설렁설렁하니 오히려 만드는 내가 재밌다. 언젠가 동네 친구가 아이들에게 탕수육을 해 주니 잘 먹더라는 얘기를 듣고부터는 한번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문득 생각날 때마다 뒤로 미뤄두다 이날 하기로 했다. 기름 온도를 적당히 맞추기 어렵기에 고기를 얇게 썰어서 튀기는 시간을 줄였다. 밀가루에 계란 하나를 깨뜨려 넣고 차가운 물을 넣은 다음 묽은 반죽을 만들었다. 고기에는 생강가루를 넣어 고기 냄새를 잡기로 했다. 딱 한 끼 먹을 만큼만 튀겨내었다. 소스는 간장과 물, 식초에 집에 있는 양파 반개를 채 썰고 파프리카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녹말가루를 물에 개어서 설탕 한 스푼과 함께 휘휘 저어 주었다.      


아이들이 식탁으로 모였다. 아이들은 맛있다며 정신없이 먹었다. 별다른 마음 없이 편하게 만든 음식이었다. 언젠가 미리 준비를 열심히 해서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다. 점심때가 되니 자연스레 밥상을 차려야 했고 무얼 먹을까 하다가 탕수육을 차려내었다. 

“엄마 우리 동네 짜장면집보다 더 맛있어.”

막내가 최고의 칭찬을 늘어놓는다.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단골처럼 내뱉는 “행복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이가 행복해라고 말하는 순간은 여행을 가기 전 설렘과 닮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면서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무슨 일이든 계획한 대로 잘 될 수도 있고 정반대로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손 가는 대로 만든 탕수육 한 그릇이 나를 빛나게 했다. 탕수육의 뜨거운 온기가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의 손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젓가락이  멈출 즈음 갈색 소스 잔뜩 묻은 접시가 바닥을 드러냈다. 즐거운 순간이 정말 쏜살같이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잘 지내는 건 순간에 몰입하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그 일은 말처럼 쉬울 수도, 정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도전해 볼 만한 일임은 분명하다. 세상에 딱 이 시간만 존재했을 목요일, 20일의 점심이 그렇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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