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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27. 2022

엄마 잡채의 비밀


아침부터 잡채를 만들었다. 일어나 보니 6시 반, 평소보다 삼십 분 늦었다. 자기 전에 잡채를 미리 생각해 두었던 터라 그냥 하기로 했다. 남편은 7시면 아침을 먹는다. 피곤한지 아직도 깨지 않았다. 십여 분의 여유가 생겼다. 어떡하지 잠깐 망설였지만 별 찬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엄마가 준 시금치가 넉넉하다. 우선 시금치를 씻고는 끓는 물에 데쳐 두었다. 새송이버섯과 며칠째 말라가는 남은 당근을 채 썰어 볶았다. 당면까지 삶아 두었으니 준비는 다 끝났다. 한 20여 분 만에 잡채 준비를 마쳤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별로 많지 않으니 간단하다. 여기에 간장과 참기름, 매실청, 깨소금을 넣고 버무리니 그런대로 괜찮다.     


잡채는 복잡하다고들 한다. 당면부터 야채와 고기 등 여러 가지를 각기 따로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재료 수를 줄이니 그리 힘을 주고 해야 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잡채에는 노랑 빨강, 초록이 어울려  눈이 가는 화려한 색깔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지난가을 엄마의 잡채를 만나고부터는 달라졌다. 그때 아마 집에 노랑 파프리카가 있었나 보다. 그것과 표고버섯이 전부인 잡채였다. 얼핏 보기에는 순간 확 끌어당기는 그런 매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으로 잡채 몇 가닥을 후루룩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침 잡채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날이었다. 집에 가니 9시가 다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그랬을까? 그때 먹은 잡채는 그동안 먹었던 화려한 잡채의 향연을 잊게 했다. 붉은색이 없어서 허전했고 낯설었다. 하지만 먹어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면은 쫄깃하고 간은 세지 않으면서도 적당했다. 담백함에 정성이 더해졌다. 잡채를 먹을수록 손이 갔던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농사지은 참깨로 만든 참기름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까닭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엄마, 할머니 잡채 정말 맛있어.”

“엄마가 만든 것보다 느끼하지 않고 완전 최고야!”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잡채 칭찬을 이어갔다. 나 역시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충분히 공감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간단히 보이는 것이었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건 한참이나 만나지 못한 그리움과 반가움, 여기에 행복이 가득 담긴 맛이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할머니 잡채를 종종 얘기했다.     

 

“엄마, 이 잡채 할머니 맛이랑 좀 비슷하다.”

아침상에 앉은 큰아이가 맛을 보고는 평한다. 그건 오랜만에 오른 잡채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설거지하면서 엄마의 잡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 가지가 더해졌다. 잡채를 중심으로 해서 엄마의 음식은 엄마의 삶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 요리에는 만드는 이의 정서와 태도가 담긴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것을 경험하는 자리가 쉽지는 않은 현실이 아쉽다. 음식에서 솔직함이 느껴진다는 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무언가를 더해 화려하게 꾸미는 일이 쉬울 수도 있겠다 싶다.      


엄마는 꾸밈없는 담백한 사람이다. 그것이 세상살이에 별 도움이 안 되어도 한결같음을 유지한다. 이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지만 그래도 타인에게 정성스럽다. 엄마의 음식도 이렇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가득 들어가는 게 보통인 닭볶음탕만 봐도 엄마의 것은 허여멀겋다. 붉은색이라면 고추를 조금 썰어두거나 당근을 넣는 게 전부이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해서 깔끔하다. 언젠가 먹었던 뼈다귀탕 역시 시래기와 토란, 토란 줄기에 메밀가루를 살짝 넣어 정갈한 회색 빛깔을 머금었다. 국물은 텁텁함 대신 시원하고 포근하다. 엄마의 손을 거친 먹거리는 본래 재료의 맛에 더 충실하다.     


“난 사람들이 뻘겋게 해서 만드는 거 마음에 안 들더라. 깔끔하게 먹어야지.”

엄마는 음식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가장 잘 보여주도록 하는 것. 엄마가 고집하는 요리의 중요한 지점이다. 이건 엄마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다. 누군가의 평가를 의식하게 되면 내 색깔을 잃어버리기 쉬운데 엄마는 그저 자기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엄마의 음식에는 ‘소박하다’ 단어가 어울린다. 꾸미려 하지 않는 것.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딸을 위해 만든 밥상도 그러했다. 요란하지 않게 양념은 최소화해 신선함을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강하지 않아서 순간에 밀려오는 감동이 적을진 몰라도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나는 맛을 선물한다.      


“그게 어려울 게 뭐 있니. 집에 있는 거로 만들면 되지.”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답했다. 이 말은 만들어 준다는 긍정의 표시다. 과하지 않게 가능한 범위에서 만드는 것도 엄마의 오랜 습관이다.  15년 이상을 엄마로 살아오면서 이제야 어렴풋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건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서 특별한 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 아닐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밥상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를 만날 생각에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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