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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16. 2024

5년 지나면 현타 오는 시골 생활

고비를 극복하고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시골 생활의 로망을 가지고 땅을 사고 집을 지어 텃밭과 꽃밭 가꾸기에 빠져 지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주위의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봄이면 나물 군락지를 찾아 자루로 캐면서 시골 재미를 한껏 누리다가 5년이 안되어 차차 도시로 돌아가는 이웃들. 앞집 할머니는 나물을 3년 캐고 나면 쳐다도 안 보게 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억센 잡초를 손으로 뽑다가 건초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고 나니 풀이 무섭고 장마철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한여름에 잔디밭과 꽃밭과 앞뒤 마당에 사정없이 올라오는 온갖 잡초는 집주인처럼 시퍼렇게 버티고 있다. 뽑다 지쳐 내버려 두니 사람 없는 빈집같이 을씨년스럽다.


그리고 가끔 마당에 나타나는 족제비와 황조롱이 그리고 뱀은 시골의 낭만을 찾아온 나에게 이곳은 야생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건초염을 치료하고 나자 다른 손목이 골절되어 또 손을 쓰지 말아야 하는 위기가 닥치니 시골집에 가지던 애정이 점차 희미해졌다. 주인이 마음을 두지 않는 집은 빠른 속도로 표가 났다.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고 꽃은 풀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텃밭은 두더지가 이리저리 굴을 만들어 땅콩은 전멸했고 다른 작물도 뿌리가 들떠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이삼 년 정도 방치하다가 이번 봄부터 남편이 전지가위를 들었다. 무성하던 나무를 가지런히 자르고 지인이 우리에게 맡겨 뒀던 옆밭까지 모두 정리해서 묵은 밭이 훤하게 바뀌었다. 남편이 부지런히 움직이자 나도 모처럼 의욕이 생겨 꽃밭을 옮기고 화초를 다시 심는 작업을 했다.


옆밭의 전후


집 밖을 정리하고 집 안까지 몇 년 만에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나처럼 계획 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겐 한밤중에 가구를 끌고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시골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새벽이 되도록 집 전체를 새로 정리 정돈해서 말끔하게 치웠다.


아무 것도 없이 정리하기


다음날, 시골집에서 가장 반기는 손님인 암카페 <아름다운 동행>의 친한 회원 셋이 하룻밤 봄나들이를 왔다. 항암 효과가 뛰어난 머위, 화살나무순, 가시오가피순, 쑥 그리고 월동시금치와 쪽파가 나는 철이라 누구보다 먼저 나눠 먹고 싶은 사람들이어서 오기 전에 따놓았다가 나물로 요리했다.


쑥국 홑잎나물 머위 오가피순


십 년 넘게 만난 데다 암이라는 같은 아픔을 겪은 처지니 어떤 친구보다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정이 간다. 나이는 달라도 공감과 소통이 잘 되는 벗이라 누구 집이라도 가서 내 집처럼 편하게 자고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올 수 있다. 손재주가 좋아 요리와 바느질까지 잘하는 벗들이라서 재주 없는 나는 얻을 게 많아서 더욱 좋다. 벚꽃이 분분히 날리는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고 화살나무순을 따며 짧아서 아쉬운 봄날의 하루를 누렸다.


우리 동네 카페<리틀포레>를 안 갈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 시작했던 시골 생활이 처음엔 멋모르고 좋기만 하다해가 지나 차차 익숙해지자 벌레와 야생동물과 풀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렵거나 삐거나 붓거나 다치기도 하는 시골 생활은 가끔 위험하기도 하다. 지난 임시공휴일에 다녀간 옆밭주인인 남편분은 전지 하면서 가시가 있는 매실나무에 얼굴이 길게 긁혀 피가 맺히기도 했다. 우리 남편과 옆밭주인도 삽질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농사일을 모른 채 운동으로 단련된 몸만 믿다가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부상을 겪고 나자 이제는 제법 시골 살이의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시골에 온 지 십 년째 접어드니 아는 것도 많아지고 철 따라 나는 나물과 작물에 대해서도 훤하다. 꽃들의 특성을 알게 되어 뽑아내야 할 꽃밭의 빌런과 고이 모셔야 하는 꽃을 구별할 수 있다.


좋아서 시작한 고생이지만 해보니 정말 고생이어서 시골집을 팔아보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바쁘기만 하고 마음의 여유라곤 없는 도시 생활과 비교해 보면 한적한 시골 생활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


해가 질 무렵, 저 멀리 복숭아꽃을 보면서 구슬프게 불어 보는 오카리나 소리가 시골 생활의 고비를 극복하고 다시 안정을 찾은 나에게 청아한 위로를 건넨다.


이제 다시 풀과 싸울 가 되었다!


그냥 보면 낭만적인 시골 풍경. 하지만 유지하려면 빡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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