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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y 10. 2024

3평 정원에서 배우는 인생

한국에 왔다. 다니러 왔다고 하기에는 조금 긴 일정의 한국 방문이다.

남편을 따라서 인도에 가기 전부터 나는 인도에서 반년, 한국에서 반년을 살기로 선언을 했고, 남편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4월부터 시작되는 인도 첸나이의 체감온도 4,50도 무더운 기온 속에서 내가 굳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서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 더위에 주말조차도 나 혼자서 지낼 일이 마음 쓰였던 남편의 이른 비행기 티켓팅으로 나는 4월 중순부터 한국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작은 정원이 있는 2층 주택으로 이사 나온 지 3개월 만에 주재원 발령으로 남편이 먼저 가있는 인도에 가게 되었다.

처음 가져 본 내 정원에 애정을 쏟으며 가꾼 지 3개월 만이라는 이야기이다.


작년 3월 초 막 가꾸기 시작한 내 3평 정원 ⬇️


집주인인 남동생이 심어놓은 매랄드그린 담장 안쪽의 3평이 내 정원이다.

목련나무, 보리수, 대추, 뽕나무를 심었고, 장미, 수국, 남천, 맥문동을 심었고, 철쭉과 패랭이와 여러 야생화를 심었다.

인도에 가야 해서 겨울에도 살아남을 것들로만 골라서 정성껏 가꾼 내 정원이었다.


분홍, 빨강 장미꽃이 피었고, 수북하게 보라와 하얀색 수국이 피었고, 모내기를 해 놓은 듯한 맥문동 묘목과 핑크 패랭이들이 귀엽게 핀 내 정원을 두고, 빨간 보리수 열매, 까만 오디를 따 먹고 한여름에 나는 인도로 떠났다.



올해 3월 초, 내 정원 모습.⬇️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가끔 딸이 보여주는 가을, 겨울의 정원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봄이 되어서 내 정원과 마주했다. 인도에서 너무 그리웠고, 염려되었던 내 정원과의 만남은 두 딸과의 만남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반가웠다.


한 달 전 3월에 사진으로 본 정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명체라고는 없는 듯이 황량하고 건조하고 마른땅이었던 내 정원에 초록초록 생명체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심은 나무들과 꽃들이 대문을 여는 나를 반겼다. ⬇️



대문밖의 철쭉들은 분홍 얼굴을 들이밀면서 집에 돌아온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내 정원의 안위를 말해주려는 듯이 나를 안심시켰다.


이미 꽃을 떨군 목련나무는 커다란 초록잎이 무성하게 가득했고, 노란 꽃을 매달고 곧 초록의 열매를 맺을 준비를 보리수나무는 하고 있었고, 뽕나무는 손바닥만 한 이파리들 사이에 커다란 초록 오디들을 많이도 숨기고 있었고, 가을 열매 대추나무는 조금 늦게 그제야 연두색 작은 잎들을 가지에 붙이고 있었다.


장미나무에도 새 잎들이 돋았고, 성격 급한 놈은 이미 작은 꽃봉오리들을 달고 있었다. 초록잎이 가득한 수국은 예쁜 꽃이 필 여름을 기대하게 했다.



겨울을 잘 이겨낸 철쭉, 목련, 보리수, 대추, 뽕, 장미나무가 이렇게 튼실하고 기특하게 봄을 맞고 있었다. ⬇️



무엇보다 신기한 놈은 패랭이들이었다. 작고 여린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작년보다 더 크고 풍성한 새 줄기에 더 많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고, 간간이 진분홍꽃들이 펴있는데 너무 기특하고 예쁘고 귀여웠다.


이렇게 연하고 약해 보이는 패랭이가 겨울을 이기고 화려하고 펴있었다.⬇️



내 3평 정원의 봄은 겨울 동안의 휑한 모습에서는 감히 기대조차도 못했던 기특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다는 지난 겨울이었고, 늦봄에 한국에 가면 정원을 처음부터 다시 가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나무, 내 꽃들은 내 염려를 뒤로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예쁘게 새로운 봄을 맞고 있었다.


나무와 꽃들은 포기를 안 하고 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포기를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자연은 그렇게 나약하지가 않았다. 나만 약한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에게 내 작은 3평 정원의 나무와 화초들이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도 포기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꽁꽁 언 땅을 견뎠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냈고, 건조한 뿌리로도 잘 참고 살아남았다며 자연이 나에게 교훈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직 예순도 안되었는데 꽁꽁 언 땅 속에 나를 가두고, 찬 바람은 피하려고만 하고, 자꾸 나이를 들먹이며 도전보다는 포기를 먼저 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게 했다.


마치 죽은 것만 같았던 겨울의 나무와 화초들은 당당히 살아남아서 더 크고, 화려하고, 예쁜 나뭇잎과 꽃과 열매를 달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인도에서도 내 환경만 탓하며 남편 따라다니느라, 딸들 키우느라 나는 내 꿈을 펼치지 못했다며 핑계만 대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백세 시대에 내 나이 이제 겨우 쉰여덟이다. 아니, 쉰여섯이다. 6할도 못 살고 있다. 그런데도 미래보다는 과거에 갇혀있을 때가 많다. 결혼 전의 내 20대만 그리워하며 그때의 예뻤고, 건강했고, 진취적이었던 나를 자주 떠올리며 현재의 나를 비관할 때가 많다. 그때의 나와 똑 닮은 두 딸을 보며 열심히 꿈을 펼치는 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내 작은 정원이 위로를 하고 있다.

내 3평 정원을 가꾸며 나는 내 미래를 꿈꾼다. 척박한 겨울을 이겨낸 나무와 화초를 보며 내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현재 내 3평 정원 모습(큰 배롱나무를 심었고, 고추, 상추도 기르는 중이다.)⬇️




한국에 온 지 두 주가 지났다.

장미는 곧 꽃봉오리를 터뜨릴 것 같고, 오디는 더 굵어졌고, 병충해에 살아남은 보리수 열매가 몇 개 달렸고, 패랭이들은 한껏 가득 펴있다.


큰 '배롱나무'를 심었고, 작은 '패랭이'들을 더 심었고, '큰꽃으아리'도 한그루 심었다.

겨울을 견뎌낸 식물들에게 용기를 얻어서 식물도 더 심었고 나에게도 용기도 심었다.

아직은 젊다고, 내 남은 인생도 더 멋지고 화려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새로 심은 배롱나무와 패랭이와 으아리를 가꾸며 나도 가꾸기로 다짐도 해 본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내 3평 정원의 기특한 아이들에게 물을 주며 나도 기운을 내본다.


한동안 손 놓았던 글쓰기부터 시작해 본다.


파이팅이다.

내 정원의 꽃들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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