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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pr 14. 2024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자유 부인의 2박 3일

금요일 밤, 남편과 딸이 강릉 시댁에 내려갔다. 주말 이틀 간 자유다. 토요일 아침, 정오까지 푹 자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눈 떠보니 겨우 9시다.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대충 썰어 껍질째 씹어 먹는다. 음악부터 켠다. 아이 동요 대신 좋아하는 혼네(HONNE) 앨범으로 플레이. 딱 보니 날씨도 환상이다.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젖히고 거실에 깔린 매트를 걷어낸다. 리트리버 키우는 집 아니랄 까봐 아이보리 털 뭉치가 잔뜩 공중 부양한다. 돌돌이 테이프를 이리저리 굴려 1차로 털을 걷어내고 청소기를 작동한다. 청소기 먼지 통에 가득 찬 개 털과 진동하는 털 냄새도 이제는 익숙하다. 청소를 끝내고 매트를 다시 깔려다 그대로 둔다. 뜀박질할 딸도 없고 바닥도 햇볕을 보고 광합성 할 기회다. 바닥 장판을 드러내고 보니 다른 집에 온 것만 같다.


이번엔 아이 방으로 들어가 맨 귀퉁이에 방치된 회전 형 책 꽂이를 살핀다. 차일피일 정리를 미뤄두었던 스폿이다. 지인들이 물려준 수백 권의 책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다. 회전 형이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돌아가지도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책 꽂이 앞에 아이 장난감이 쌓여 있어 더 멀어진 공간. 책을 꺼내 옮겨 주고 싶어 장소를 물색했다. 아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3단 서랍장이 눈에 들어왔다. 딱 아이 시선과 동일선상에 있고 아이가 스스로 책을 꺼낼 수 있는 높이라 딱 좋았다. 그 대신 서랍장 위에 놓인 25여개 인형을 치워버렸다. 인형을 다른 곳으로 옮긴 대신 딸아이에게 설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정성껏 디스플레이 한다. 캐릭터끼리 혹은 컬러에 맞추어 나름의 규칙을 세워서 정렬한다. 구석에서 책을 꺼내고 눈에 가시 같았던 인형을 시야에서 치우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아이가 더 크고 나면 더 이상 아이 방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열어 두었던 문을 닫으면서 주변을 내려다본다. 날씨 좋은 봄날, 아파트 단지 내에 노오란 개나리, 하얀 목련이 보이고 드문드문 벚꽃도 보인다. 다들 꽃놀이를 갔는지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잠시 침대에 퍼져 눕는다. 아이가 나 몰래 먹으려고 쌀 통 뒤에 숨겨둔 과자를 발견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꼬깔 콘이다. 입이 심심했는데 웬 떡이냐 싶었다. 핸드폰 타임에 인스타도 접속해 본다. 나들이 인증 샷이 넘쳐난다. 평소 같았으면 다들 어디로 꽃 구경 갔나? 궁금해했을 텐데. 그러든지 말든지 1도 궁금하지도 부럽 지도 않다. 지금 이 순간, 누가 뭐래도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꽃 놀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참을 침대에서 사보 작 거리다 보니 두꺼운 이불이 손에 걸렸다. 이때다 싶어 이불, 토퍼, 매트리스 커버, 베개 커버까지 모조리 걷어냈다. 차례차례 하나씩 세탁기에 넣고 쉐킷 쉐킷. 빨래 건조대를 꺼내 매트가 걷어진 바닥에 보란 듯이 놓고 세탁이 끝난 이불을 탈탈 털어 반듯하게 편다. 네모 건조기에서 뱅뱅 돌며 어지러웠을 이불도 오늘만큼은 따뜻한 볕을 마음껏 쬘 수 있길 바라면서. 장 농에서 기다리던 얇은 이불을 꺼내 대기시키고는 한숨 돌린다. 이불 좀 들어 나르고 털었다고 그러는지 팔이 아프다. 배도 고팠다. 어느새 저녁이다. 냉장고를 털어 뭐라도 해 먹을까 고민도 잠시 좋아하는 초밥을 시키고 개 밥도 챙긴다. “누나 주말인데 밖에 안 나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개를 진정시키며 “미안, 그런데 오늘은 말고” 내일을 기약한다. 다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으니까 개 산책에 대한 죄책감도 갖지 않기로 했다.



모처럼 자유를 얻은 주말, 처음에는 작정하고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과 밤새 놀거나 아니면 서울 외곽의 북 카페에 갈까 했다. 혹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런데 몸은 자연스럽게 미뤄두었던 청소를 하고 이불 빨래를 한다. 콧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청소 후 뿌듯함? 이루 말 못 한다. 평소라면 밤샘 작업을 하고 대낮까지 자고 있는 남편에게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을 테다. 나는 도대체 언제 쉴 수 있는 거냐고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할 수 있었던 과거의 주말과 줄곧 비교를 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을 청소하는 일도 결국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 시간이 될 수 있거늘.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을. 카카오톡 단체창에도 꽃놀이 인증 샷이 쏟아진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하루 종일 듣던 혼네 앨범에서 장기하로 플레이 리스트를 넘겼다. 나? 아직 자유 시간 하루 더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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