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Jul 27. 2015

왜, 책을 만드는 거죠?

왜 굳이 독립출판을 하느냐 물으신다면 그냥 웃지요

내가 보통날의 여행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물었다.


왜, 이 책을 만들죠?

보통날의 여행을 하고 있는 내게 여전히,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 책을 만들죠?



전자도 후자도 그들이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은 사실 한 가지였다. 왜? 돈도 안 되는 이 책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만들려고 애를 쓰냐는 것이다. 나와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도통 이해가 어려운지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그들의 의심은 매우 확신에 가깝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왜 하냐는 것은 그들의 역설적인 질문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맞다.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지금의 나는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만 잔뜩 쓰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는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돈은 다른 곳에서 벌면 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기꺼이 내가 원한 일에 투자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때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정신적 괴리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그런 괴리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 이전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여행작가라는 직업으로 전업을 결심했을 때 이 세계를 몰랐던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돈도 벌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두껍고 단단했으며 어떤 면에 있어서는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내가 기대한 '돈을 적당히(?) 잘 벌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작가'를 아직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한 분 정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문답의 유흥준 교수님 정도랄까.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분은 여행작가가 직업은 아닌 게 함정이다. 어쨌거나 이 외에는 거의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다. 기라성 같이 오래된 선배 작가님들도 늘 직업과 자신의 세계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소위 잘 나가는 선배 작가님들의 고민도 늘 다르지 않았다. 여행작가로 전업을 결심한지 몇 개월만에 나는 심각한 갈등에 시달렸지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배기로 결정했다. 직업은 확실히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이 원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직업적인 글쟁이의 현실과 개인적인 이상 사이에서 극심한 괴리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글, 사진, 여행 모든 것이 그냥 모두 의무가 되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직업적 경제력과도 직결되어 있었다. 업계 경쟁은 치열했고,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비열한 짓들을 음성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선배의 뒤통수를 치는 후배들도 보았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마치 자신의 공인 듯 내세우는 사람도 보았으며 선배라는 작자가 어렵게 얻은 후배의 일감을 코 앞에서 가로채려는 모습도 보았다. 눈 뜨고 코 베일 뻔한 친구의 이야기다. 이게 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혔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집에 쌀독이 비고, 처자식이 굶어 죽게 생겼다면 어쩔 텐가. 다른 길이 없어 그랬으리라. 고 이해해주고 싶으나... 뭐 이런 세상이? 하며 과격해지고 싶다. -.-; 한번은 일을 하면서 신임을 얻게 되자 대형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되었는데, 일을 진행하면서는 심지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가장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취미활동반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던 이들이 갑자기 현업으로 뛰게 되었는데 거기에 돈까지 개입되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를 낳았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잃은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짧은 시간에 직접 겪거나 보거나, 들으면서 쓰나미같이 지나간 일들이다. 순식간에 한 20년쯤은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니 직업이  좋니?라고 물으면, 결론부터 말해 나는 '예스'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글 쓰고, 사진 찍고 새로운 세상을 알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나의 방식으로 정직하게 걸어가면 되는 거니까. 내가 더 좋아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대한 몰입하면 그만이다. 직업의 현실과 개인의 이상을 어느 정도 내가 극복할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에 생긴 여유다. 직업은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100% 행복하기는 어렵다. 일을 매우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는 환경이 어떻든 200% 행복하기가 쉽다. 아니 그것은 환경이 안된다면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마저  끌어올린다.


누가 내게 묻는다. 왜, 이 책을 만들죠?


굳이 대답을 하자면 '취미'다. 누군가는 캠핑을 가고, 누군가는 헬스를 하고, 누군가는 골프를 친다. 그들은 모두 그것을 위해 돈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 분야에서 각자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구현하며 자신들이 충분히 행복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원하는 것이 충족될 때 가장 행복한 법이니까. 일, 삶, 사랑, 취미 등등 그것이 무엇이건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든다. 그리고 글로 사진으로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내가 만드는 책에는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꿈과 여행이, 추억이 담겨 있다.  보통날의 여행을 함께 만들어가는 꼬북이, 소연이를 비롯해 그림작가 아미와 영서, 그리고 현재까지 50명의 저자들이 각자의 꿈을 이 책에 실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만이 꿈은 아니다. 일생에 단 한 번 내가 원하는 글을 써서 나와 비슷한 정서를 나누고 싶은 것도 소박한 보통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소중한 꿈이기 때문이다. 꼭 꿈이라고 말해야 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꿈이라는 것은 본디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해도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원대한 혹은 커다란 꿈도 아주 사소한 것들을 하나 둘 이루어 내면서 성취되는 것이다. 보통날의 여행의 한 권 한 권에 담긴 소소한 글의 주인공은 작지만 위대하다. 결국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는 개인의 몫이지만 사소한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 보통날의 여행이 서 있고 싶은 것이다.


보통날의 여행은 내게 직업과 취미 사이이다. 직업만큼 에너지를 쏟고 취미만큼 무한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보통날의 여행에 대한 입장은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어야만 온전히 순수한 지금의 초심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겪은 여러 가지 일로 나는 확실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하고 똑똑히 지켜 보았고, 아프게 경험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환되었을 때 삶 속에서 얼마나 그 본질이 변질될 수 있는지. 그렇게까지 변질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전의 크기만큼 혹은 그보다 더 그로 인해 행복하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팠지만 대신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을 현명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훌륭한 교훈을 얻었다. 세상의 모든 경험은 쓸데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어느 현자의 말은 정말 진리다.


사회적으로 독림출판물에 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는 분위기다.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소수들이 모여 다수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 더는 단지 부속품으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적으나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들어 낸 작업물이기 때문에 남들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좋다. 함께 나눌 사람들만 있다면 그들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단 한 명 이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셰익스피어 베케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