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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29. 2024

이게 웬 성과급?

내게도 떨어지는 간헐적 콩고물

2024. 3.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여보 한 해 동안 짠돌이 남편 때문에 고생 많았소. 성과급 들어왔네."

라며 그 양반이 낯간지러운 말을 다 했다.

도대체 입술에 침을 얼마나 바른 게지?

그러면서 월급날도 아닌데 거금 10만 원을 내게 보내줬다.

혹시 끝에 '0'이 하나 더 있어야 하는데 착각하고 덜 보낸 건 아닌가 보고 또 뚫어져라 봤지만, 세상에 그럴 리는 없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공무원 성과급이라고 해봤자 수 천만 원 주는 것도 아니고 그 금액이야 뻔한 건데 바랄 걸 바라야지, 나도 양심이 좀 없긴 했다. 그나마 '0'을 하나 덜 눌러서 보낸 게 아니란 점에 크게 안도할 뿐.

그나저나 이게 웬 횡재냐.

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아니 솔직히 생각은 안 했지만 '기대는' 하고 있었다.

말도 아닌 것이 막걸리도 아닌 것이, 아무튼 상반기의 마지막 희망, 내가 기댈 곳은 오로지 남의 성과급이었으니까.

돌이켜 보면 작년에도 이맘때 남편이 성과급을 받고 우리 세 멤버에게 기분 내면서 내게도 얼마간의 콩고물을 떨어뜨려줬다. 그러고 보니 또 일 년이 훌쩍 지났구나.


"고생이야 자기가 더 했지. 일에 치여서. 1년 동안 고생 많았수."

항상 일이 넘쳐 나서 주말도 없다시피 고생한 사람이 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항상 말로써 그 노고를 상기시키진 않았지만 살짝 그 비슷한 일을 해봤던 사람으로서 정말 녹록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을 조금은 아니까.

종종 그 양반은 자신을 짠돌이라고 하지만 절대 짠돌이는 아니다.

"그건 짠돌이랑 다르지. 써야 할 때에 쓰고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 안 쓰는 거랑 무조건 안 쓰고 남한테만 빌붙어 살면서 어떻게든 돈 안 쓰는 거랑은 정말 다르지!"

라고 항상 그를 세뇌시켜 왔으므로 이제 그만 스스로를 '짠돌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말하곤 한다.

내 기억에, 내 경우에는, 5월 전후에 성과급이 들어왔다, 기원전 1억 년경에는. 아무래도 5월은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달이니 그 점을 적극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직렬별로 다른 게 있긴 있었다. 그 양반과 나는 다른 직렬이었으므로 하다 못해 명절 수당을 받는 시기도 차이가 있었고 연가보상비를 지급하는 방법도 달랐고, 연말정산환급금을 받는 시기에도 차이가 있었다. 지금이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간밤에 무슨 돼지꿈이라도 꿨던가? 생각지도 않은 수입이 생기다니.

누구에겐 고작 10만 원 일지 모르지만 무직자에게 10만 원은 꽤나 거금이다. 가끔 보면 저렇게 허술해서 어찌 직장생활을 하실까 살짝, 가끔은 매우, 시원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무사히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성과급씩이나 받아 오시는 걸 보면 용하고 기특할 뿐이다.(우리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시원찮아한다)

지지고 볶고 찌고 굽는 오만가지 일에 써야지.

올해도 성과 한 번 잘 내 보시라고.

요즘처럼 물가가 흉흉한 세상에 과연 저 금액으로 몇 가지나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또 요령껏 굴려 봐야지.

우선은 저 성과급의 주인공을 위해 식단을 짜고(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의 주체에 대한 대우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오래간만에 선심을 써야지.


"근데 정확히 성과급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또 얘기 안 해주네?"

결정적으로 그 양반은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이렇게나 과묵한 양반이라니!

하지만 그거 알아서 뭐 한다고?

어차피 내 성과급도 아닌걸.

그래, 눈감아 주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허술하게 생각해서는 아니 것이야.

내가 항상 주시하고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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