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아로운 생각 Apr 04. 2024

100% 망하는 창업의 첫 번째 공식

어느 대기업 임원의 자영업 도전기


"감사합니다. 제가 할게요" 아르바이트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뒤로 비켜섰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가 서 있던 주변이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3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직업병 증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매장을 갔을 때 깔끔 치 못한 구석을 보면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식당에서 얼룩진 유리문을 보았을 때,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를 보았을 때, 옷가게에서 손님들이 어질러놓은 진열대를 보았을 때 특히 그랬다. 상품 기획 업무를 할 당시부터의 습관이 유통업체 지점장으로 근무할 시기에 굳어져 퇴직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또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 만 보를 걸은 후 스파 브랜드에 들러 눈요기하면서 옷 정리를 하는 일과가 벌써 여러 날째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아르바이트 학생이라도 도울까 해서 시작한 일이 몸에 배기 직전이었다. 가끔은 어이없다 생각했지만 괜찮다고 여겼다. 해 끼치는 일도 아닌데 직원은 직원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좋으면 그만이었다. 나로서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듯한 뿌듯함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시간까지 보낼 수 있어 금상첨화였건만, 이제 더하기도 눈치가 보이게 생겼다. 머쓱하게 물러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다시 직업 없이 지낸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친정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근무했던 학원을 그만둔 지가 반년 가까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친정 아빠의 건강 악화는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혹시 모를 아빠의 위급한 상황을 위해 마냥 대기하는 것뿐이었다. 재취업은 물론 하물며 작은 약속까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를 위한 계획은 사치에 가까웠다. 나의 모든 일상은 오직 친정 아빠에게로 맞춰져야 했다.     


그러다 보니 불평과 원망이 쌓여갔다. 퇴직 후 시간은 흘러가는데 점점 더 퇴보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못 견디게 싫었다. 도대체가 첩첩산중이었다. 하다못해 생각지도 못한 부모님까지, 내 발목을 잡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자연히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견디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다짐 또 다짐하였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무슨 일이든 해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다 친정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시간으로만 보면 이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결심한 대로 당장 일을 시작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무엇을 할까. 주어진 형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마트 계산원과 식당 설거지가 전부였다. 어떻게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을까. 잠깐 고심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큰 신경 안 쓰는 작업이기도 했고, 마치고 나면 온몸이 피곤해질 테니 그날은 단잠을 잘 듯했다. 내친김에 바로 집 근처 마트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후 나는 더 큰 절망에 빠져들었다.      


"쉰 넘으시면 안 됩니다" 매니저가 나에게 한 첫 말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이야기도 못 해보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정말 이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걸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소소한 일이 나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없는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나이 역시 대단한 걸림돌이었다. 따져보면 나보다 상품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직장인 시절에 후배들이 인정했던 내 자랑이었다. 이미 갖춰진 실력인데 써보지도 못한다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후 세상을 향한 내 시선은 달라졌다. 한 자리 마련하기 위한 내 노력이 불필요한 낭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환영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앞다퉈 모셔갈 능력도 혈기왕성한 젊음도 내겐 없었다.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회사일뿐인데 그를 증명할 기회를 얻기부터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야 하나. 용기를 잃은 채 실의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띠링" 생각에 빠져 걷다가 하마터면 자전거와 부닥칠 뻔했다. 문득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정처 없이 떠도는 이 여정을 속히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퇴직 후 구상했던 계획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가짓수로만 따져도 수 십여 가지, 모두 해 보았고 끝은 늘 실망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였다.     


‘그래, 창업하자!’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었다. 내가 만드는 내 자리, 그렇게라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다. 마침 퇴직금 일부가 남아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면 몇 개월은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가 가진 집념만으로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새롭게 시작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졌다.      


드디어 내게 다시 명함이 생기다니! 

명함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며칠만 생각해 보자!      


옷 매장을 나온 후 한 시간, 나는 이미 성공한 CEO로 변해 있었다.






※ 선생님의 퇴직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유튜브 「퇴직학교」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potenturger@naver.com)

작가의 이전글 어느 대기업 임원의 자영업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