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것은 일본을 떠나야만 낫는 병입니다
일본 국민병, 카훈쇼
춥고 긴 도쿄의 겨울(이라고 하면 한국에 비해 훨씬 따뜻한데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도쿄는 집이 집 밖보다 매우 춥습니다.)이 서서히 물러갈 기미가 보이는 2월 말이면 나는 사정없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누구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열렬히 맞이한다. 개인적으로는 하루이치방(春一番: 겨울이 끝나갈 때즈음 부는 강한 남풍)이 불어오는 날은 바람보다 그 바람에 실려오는 그 무엇이 더 두렵다. 코로나 때문에 지겹게 썼기에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마스크를 자발적으로 다시 착용하고, 용기가 없어서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물안경을 쓰고 밖으로 나가면 삶의 질이 좀 나아질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아, 물 속에서 살고 싶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피할 수 없으니 약을 먹어야지. 안과와 이비인후과를 예약하려면 예약이 많아서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 감기 같았으면 '과연 내가 일주일 후에도 아플 것인가?' 고민을 했겠지만 이 병은 다르다. 최선을 다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일주일을 버텨 내고 병원에 간다.
일본 국민병, 카훈쇼
카훈쇼(花粉症: 화분증)는 꽃가루에 의해서 발생하는 알레르기 질환으로 재채기, 콧물, 코막힘 등의 알레르기 비염이나 눈가려움, 눈물 등 알레르기성 결막염 증상이 가장 흔하다. 드물게는 천식이나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중증 환자들의 경우 치료를 받고 있어도 증상이 심할 때에는 일이나 면학 등의 능률이 약 35~60% 저하된다고 한다. 의료비 등의 직접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능률 저하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경제 손실도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기시다 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계획하고 있다.
환경성 환경보건부 환경안전과에서 발간한 <화분증 환경 보건 매뉴얼>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약 42.5%의 인구가 카훈쇼를 겪고 있으며, 그 인구는 매년 증가 현재는 2명 중 1명이 카훈쇼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 '국민병'이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꽃가루는 두 종류, 스기(スギ: 삼나무)와 히노키(ヒノキ: 편백나무)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후 건축용 목재의 공급과 하천 범람 방지를 위해서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일본 전역에 계획적으로 식재했다. 수 십 년이 지나 나무가 성장하며 꽃가루의 비산량도 함께 증가하며 카훈쇼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카훈쇼 때문에 해마다 지출해야 하는 의료비도 만만치 않아서 제약회사에서 비밀리에 스기와 히노키를 심고 있다는 음모론이 있을 정도.
카훈 뉴스를 확인하세요
우리나라에 미세먼지 뉴스가 있다면 일본에는 카훈 뉴스가 있다.
일본기상협회에서는 스기와 히노키 꽃가루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를 도시별로 예보한다. 도쿄의 경우 3월부터 4월 중순까지가 절정이고, 다카마쓰의 경우 2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도쿄보다 카훈의 절정 기간이 더 길 것으로 예상된다.
거주하고 있는 시뿐만 아니라 구 단위로 매일의 일기예보와 함께 카훈의 양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도쿄도에서도 산림이 많은 하치오지시, 오쿠타마마치가 카훈의 양이 더 많다.
혹시 알레르기 체질이신가요?
친구의 남편 역시 해마다 카훈쇼를 겪고 있다. 의사에게 카훈쇼를 영원히 낫게 하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것은 일본을 떠나야 낫는 병입니다.'라고 했다나?
내 경험상으로는 일본 병원이 한국에 비해서 보수적으로 약물을 처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훈쇼에 있어서는 달랐다. 이것은 실제로 내가 카훈쇼로 인해서 복용하는 약물이다. 점비액, 점안액, 내복약 3종류의 약을 50일 치 처방받았고, 나의 눈, 코, 입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자신이 알레르기 체질이고, 이 시기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항히스타민제를 가지고 올 것을 권한다.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자. 일본 드럭스토어에서 다양한 제품이 판매 중이다.
맑고 기온이 높은 날, 공기가 건조하고 바람이 강한 날, 비가 그친 다음 날이나 기온이 높은 날이 2~3일 지속된 후에는 카훈이 더 심하다고 하니 참고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