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씨(이하 이): 양파가 중요한 등장인물.....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중요한 소재라고 해 두자.
점: 음. 그럼 언제 적 중2남학생들인 거야?
이: 때는 2013년. 초빙교장으로 우리 학교에서 교장직을 처음 수행하는 관리자님이 의욕이 넘치셨지. 그래서 학교 특색사업으로 아침 20분 독서시간을 만드셨어.
자, 모든 학생들이 시간에 맞추어 책상에 앉아 각자 자기 책을 읽고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그림이 상상이 되나?
점: 뭐야, 네 말이 어째 싸한데.
이: 흠, 실상은 몇 명은 책을 찾는데 10분을 허비하고, 어떤 이는 한 달째 같은 페이지만 펼치고 앉아 있고, 몇 명은 밤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입과 몸이 근질거려하고, 어떤 이는 간밤의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고, 다양한 몸짓과 소리가 어우러진 시간이었지.
점: 흫,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어?
이: 그니까! 나도 생산적인 독서 시간을 갖고 싶은데, 교실 돌면서 이것저것 신경 쓰고 실랑이하느라 불편함이 쌓여가더라고. 그래서 어느 날 마음먹고 선언을 했지. 아이들에게.
앞으로,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어. 그냥 가만히만 있어!
대신 책은 내가 읽을 거야!
가만히 앉아서 내가 읽는 걸 들어!
점: 뭐야? 테스토스테론의 세례가 시작되는 중2남학생들에게? 무슨 자신감이야?
이: 중2남학생들한테 먹힐만한 책을 읽었거든.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년들. 소녀는 없음.
주요장소배경은 범법행위를 저지른 소년들을 위한 행동교정 캠프. 어때? 남학생들이 호기심을 느낄만하지 않겠어?
여기서 우리 주인공 스탠리와 소년들은 이상한 행동교정 교육을 받게 되지.
바로, 땅을 파는 거.
점: 그래서, 제목이?
이: 구덩이. 영어로는 holes. 캠프의 소장은 소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땅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고 있는 거지.
나의 예상대로 책 읽어주기가 좀 효과를 보이더라고. 아이들이 그림처럼 가만히 앉아서, 나의 낭독소리를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흐흐흐..
아이들이 제목이 뭐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줬어.
책표지도 포장지로 감싸서 숨기고.
그런데,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온 학생이 어느 날 아침에 슬쩍 나한테로 다가오더니, '선생님, 그 책 holes 아니에요?' 묻더라고.
점: 좀 놀랬겠네.
이: 그렇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고. 미국학교 다닐 때 읽었다고 하더군. 내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지.
'아이들한테는 비밀이다!'
싱긋 웃으면서 돌아가더라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
회를 거듭하면서 흥미진진해지니까 결국에는 호기심 많은 애들이 책을 찾아내더라고. 왕성한 호기심과 선점욕?을 가진 친구들은 벌써 책을 다 읽고서 앉아 있는 거야. 눈치채고 약속을 받아냈지. 절대 스포일 안 하기로.
내가 책을 읽어나갈 때, 그 얼굴에 번지는 승리감이랄까? 사건의 전개를 알고 있다는 자부심.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 가는 상상의 과정에 만족스러웠던 모양이야.
그래도, 그 친구들 끝까지 의리를 지켰어. 끝 종이 울리기전 책읽기를 딱 멈추면 친구들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물어봐도, '선생님 읽어주는 거 들어.'라고 답해줬어.
더 지나고서는 귀찮았는지, 책 제목이 '구덩이'이니까 궁금하면 책을 읽으라고 하고 있더군.
점: 황당한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흘러간 거네?
이: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지. 덕분에 우리 반 모든 학생들이 그 학기 독서기록에 '구덩이'를 읽었다고(들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쓸 수 있었어.
점: 구덩이 파는 얘긴데, 양파는 어느 대목에서 나오는 거야?
이: 일종의 액자소설 비슷한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소년들이 땅파기 작업을 하던 곳이 예전에는 호수였고, 거기서 양파장수 샘에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거든.
어쨌거나, 몇 백 년 전 양파장수 샘 덕분에 캠프를 도망쳤던 두 소년, 스탠리와 제로는 생명을 구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흩어졌던 조각들이 마지막을 향해가면서 타다닥 맞춰지면서, 마지막 퍼즐조각이 딱 완성되는 기분.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니까.
점: 영화로도 만들어졌을까?
이: 그렇긴 한데, 영화를 보고 또 실망했지.
다른 건 다 이해할 수 있었어도, 내가 바라는 하나의 요소, 그게 구현이 안되니까, 끝에 가서는 살짝, 영화라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점: 이번 영화는 어떤 점에서?
이: 주인공 스탠리가 이야기 초반에는 살짝 비만이고, 둔하게 나오거든. 근데, 캠프에서 장기간 햇빛 속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몸짱이 된단 말이지. 구리빛 피부에 탄탄한 근육질의 소년으로. 영화에서는 그런 변화가 나오지 않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스탠리의 몸의 변화가 맘에 들었었는데, 참 아쉬웠어. 강인한 몸과 정신을 갖춘 소년으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시각화 하질 않았으니.
성장소설의 핵심은 긍정적 변화! 정신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몸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와도 얼마나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그게 빠졌으니!
스탠리의 경우에는 캠프를 탈출하고 나서의 모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한 체력도 필요했다고.
점: Calm down.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그런 몸상태의 변화까지는 어려웠겠지. 마션에서처럼 주인공 빈약해진 뒷모습 보여주는 정도로는 안될 테였고.
스탠리 얼굴, 표정, 몸, 근육, 뭐 이런 게 다 달라져야 할 텐데.
이: 그러니까. 영화로만 보고 끝내면 너무 아쉬울 소설이야.
점: 조금 더 스포일 해주면 안 될까?
이: ... 지금 분량이면 1회 차 브런치 글로 적당해. 더 길어지면 안 될 거 같아. 손가락은 근질거리지만, 10년 전 입단속할 때처럼 여기서 멈추기로. 끝~
구덩이(창비)_출처 yes24/ Holes (Long Tail Books)/ (아래) 영화 Holes 출처_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