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수 Jul 29. 2015

셥셥셥 셔부적셔부적

7월 22일 러닝 다이어리

나이키 러닝 앱에서 총 100km를 돌파했다. 오늘은 달리기에 대한 일기를 써 볼 생각이다.


내일부터 장마라기에 오늘은 반드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시 30분쯤 나가면서 나이키 러닝 앱을 켰더니 여태 뛴 거리가 92.5km 남짓이었다. 평소에 나는 6km 내외로 뛰는데 왠지 100km를 채워야 할 것 같은 숫자 강박이 나에게 강한 의지를 심어 주었다.


처음 1km 정도는 몸을 데우고 4km 정도 지나서는 거의 무아지경으로 뛰게 된다. 달리는 내내 머리는 단순한 생각들로 채워진다. 풀밭을 밟으며 공원 산책로에 들어서는데 러닝화 발바닥에 스치는 풀잎소리가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들렸다. 이를테면 ‘셥-셥-셥-’이나 ‘셔부적셔부적’이랄까. 소리가 괜히 애처로웠다. 밟히는 게 일상인 잡초들의 허망한 외침으로 들렸다.


내가 달리는 공원의 이름은 만석공원이다. 가운데 호수가 있고 호수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커다란 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 1.35km쯤 된다. 달리는 동안 나는 호수면에 비치는 것들을 자주 본다. 달이 밝은 밤이 가장 아름답고, 아파트의 불빛들도 맑은 날이면 꽤 장관이다. 때로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오늘은 공원 근처 로열팰리스 아파트 단지 옥상의 노란 불빛이 강렬하게 수면 위를 비추었다. 원래 그 아파트 단지의 불빛이 저렇게 밝고 화려했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거추장스럽게 밝았다. 고개를 들어 우뚝 선 아파트 단지를 봤는데 마치 빛나는 왕관을 걸치고 있는 도시의 왕 같았다. 그만큼 다른 풍경에 비해 로열팰리스 단지가 웅장했다. 전기세가 한 달에 얼마나 나올까. 호수를 둘러선 나무들이 괜스레 더 초라해 보였다. 다 찢어진 나뭇잎 거적때기를 걸치고 어둠 속에서 저만치 위에 군림하고 있는 왕을 바라보는 백성들처럼.


달리다 보면 달리러 나온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달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상한 경쟁심에 휩싸인다. 그들도 나와 같을까? 누가 내 뒤를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추월당하기 싫은 마음이 불쑥 일어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쓰잘머리 없는 경쟁심이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힘든 시점이어도 거리를 벌리고 싶은 욕심에 속도를 높이게 된다. 내 페이스를 잃고 금세 지칠 때가 있는가 하면, 적절한 수준의 경쟁상대를 만나면 서로 윈윈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공원 산책로를 달릴 때 재밌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걷기 운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는 내내 사람들을 추월해야 한다. 그러려면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달리는 루트를 계속 찾아나가야 한다.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보다 요리조리 틈새를 찾는 달리기가 더 재밌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달리기에 도움이 되는 요소 중 하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뛰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쓸 이야기가 꽤 많은 걸 보니 신기하다. 어떤 날에는 호수 근처에서만 맡을 수 있는 호수 냄새가 유독 진할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마음이 상쾌하다. 흔치 않은 냄새를 맡은 기분이라 달리는 중간에 힘이 난다. 물론 가끔 하수구 냄새가 날 때도 있다. 비가 내린 직후에 아마 호수 냄새가 진해지는 것 같다. 비가 내린 직후의 산이나 숲이 매력적이듯이 땅 위의 자연은 대개 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일기가 오랜만에 길어졌다. 200km를 돌파하는 날에 다음 일기를 써야겠다. 밤 11시가 다가오지만 배가 고프니 밥을 먹어야지.



*이 날 밤의 향기(香氣)를 집에 들어와서 짧은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fragrance of the night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공평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