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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Feb 07. 2022

캐나다에서 가전제품 고장내면 안 되는 이유

며칠 전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러니까 렌트한 집, 에 빌트인 되어 있는 세탁물 건조기를 고장 낸 적이 있습니다. 튼튼하기 짝이 없는 건조기를 고장 냈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시죠? 저도 어이가 없었답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사실 우리 집 공식 파괴 왕입니다. 손이 야물지 못해 툭하면 깨고 부수는 게 일이고 남편이 고치고 수습해 주길 벌써 데이트 기간까지 합해 20여 년이 다 되어 가네요.


우리 집 지하에는 보일러실이 있는데 그곳에 월풀에서 만든 세탁기와 건조기가 함께 있어요. 집에 빌트인 되어 있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모두 월풀 제품인데 큼직큼직하고 튼튼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플라스틱으로 된 건조기 손잡이가 약간 덜렁덜렁 거리는 것이 늘 불안했어요. 느낌이 오더라고요... 아... 이 녀석을 내가 언젠가는 부서뜨리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세탁물을 건조하기 위해 잠시 딴생각을 하며 건조기 문을 힘차게 잡아당겼는데 우두두둑 소리가 나더니 손잡이 이음새가 모두 깨져 버린 거죠. 오 마이 갓! 아... 남편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차마 고장 냈다고 말을 못 하고 가만히 며칠 있었는데 남편이 세탁물 건조를 시키고 오더니 웃으면서 '또 부셨어?'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라면 모르겠는데 여기는 캐나다잖아요. 모든 서비스 비용이 한국보다 훨씬 비싼 나라라서 수리 비용이 도무지 가늠이 안되더군요. 일단 월풀 서비스 홈페이지에 건조기 모델명과 함께 손잡이 부품을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해 봤어요. 그런데 대뜸 방문을 하겠다고 답이 달린 거죠. 그때부터 좀 불안 불안했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한쪽에 보일러 실이 있어요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붙어 있어요. 오른쪽이 건조기
건조기 손잡이를 잡아 당기다가 저렇게 부러지고 말았어요. 요 손잡이 가격이 얼마게요?


캐나다에 온 이래로 가장 눈이 많이 내려 초등학교 일부는 학교를 닫았던 험악한 날에 드디어 월풀 수리 기사님이 집에 방문했어요. 덩치가 큰 백인 아저씨였죠. 그리고 손잡이를 보자마자 제게 묻더군요.


"네가 부순 거 맞니?"

"응, 내가 잡아당겼는데 저렇게 부러졌어"

"너, 되게 힘이 센 여자구나"

"응, 사실이야. 나 힘이 좀 세. 하하하"

"근데, 이 건조기 산지 1년 넘었니? 비용은 누가 내니?"

"난 집주인이 아니라서 1년이 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고장 냈으니 비용은 내가 계산해"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고는 해당 부품이 있는지 찾았는데 아이고 저 작은 플라스틱 손잡이 가격이 무려 캐나다 달러로 42불, 약 4만 2천 원인 거죠. 순간 어질어질하더라고요. 아... 42불이면 돼지고기 삼겹살 2킬로그램도 넘게 살 수 있는데...


수리 기사님은 해당 부품이 다행히 런던시내에 있어서 가져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몇 시간 후 또 엄청난 눈보라를 헤치고 다시 우리 집에 방문해서 건조기 손잡이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어요. 그리고 토털 수리비용이 얼마가 나올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두구두구두구... 캐나다 온 이래로 둘째 아이 치과에 가서 비용 청구받을 때만큼이나 떨렸지요(치과 다녀온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175불! 띠요옹~~

네. 글쎄 수리비용이 175불이 나왔어요. 손잡이 42불과 인건비가 133불이 나왔답니다. 수리 기사님이 말씀하길 더 비싼 부품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만일 다른 전자제품이 하나 더 고장이 나서 그 부품을 다른 곳에 가서 가져오면 추가적으로 100불 이상이 더 든다는 거예요. 아이고오 머리야... 175불이면 4인 가족 일주일치 식비인데 그 큰 돈이 제 부주의로 한순간에 나가버린 거죠.


제가 너무 비싸다고 혹시 할인 찬스 가능하냐고 물으니 건조기가 1년 넘은 제품이라 할인이 안된다고 하는 걸 보니 구입 후 1년 미만의 제품들은 수리할 때 할인이 가능한 가 봐요. 그리고 저에게 수리비는 누가 낼 거냐고 묻는 이유가 캐나다는 집 임차인(Tenant)의 권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지금 키우고 있는 햄스터가 들어갈까 봐 냉장고 바닥의 틈을 종이로 막아 두었는데 착한 수리 기사 아저씨가 그걸 보더니 냉장고의 열이 빠져나가야 한다고 절대 막아두지 말라고 알려주었어요. Over heat로 고장이 나면 지금 수리비보다 더 어마어마한 비용이 나올 거라면서요. 그리고 덧붙이더라고요.


"Be careful with your arms, you're so strong"


제게 마음 써 준 기사님을 배웅하며 저도 인삿말을 했어요.

"Be careful your drive, it's so hard weather! ^^"


만일 캐나다에서 집을 임차하여 살게 되는 경우, 집주인의 권리와 책임, 그리고 임차인의 권리와 책임을 잘 알고 계시면 도움이 좀 되실 거예요. 집주인은 자신이 빌려주는 집과 집 주변을 청결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어요. 특히 바퀴벌레나 벌레가 나왔을 때 반드시 집주인이 모두 방역을 해주게 되어 있어요. 또 임차인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일러, 가스, 수도, 가전제품 등 생존과 직결되는 서비스는 반드시 집주인이 수리해주고 해결해 주게 되어 있지요.


캐나다 헌법에서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집주인이 임차인의 성별, 인종, 젠더, 종교 등을 차별하여 집을 임차하지 않는 경우에는 불법이 됩니다. 또, 렌트비 가격은 집주인이 임의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세금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매년 상한선을 정해 두고 있어요. 한가지 더, 집주인이 지금까지 설명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에도 구제를 요청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요.


관련된 내용은 링크해 둘 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참고해 보세요. 단, 제가 링크하는 내용은 온타리오주에 한한 내용입니다.


https://settlement.org/ontario/housing/rent-a-home/


캐나다에서 사는 동안은 파괴 왕의 자리에서 빨리 내려와야겠어요. 왕관을 차지한 자, 그 무게를 견디라더니 무게 값이 만만찮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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