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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an 09. 2018

저를 발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中



2018년 1월 8일에 발행한 제 신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발행 이틀만에 1쇄 3천부를 소진했습니다. 

김애란 소설 속 표현처럼,

독자들이 제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었습니다.  

책이 나오자마자 매진되어 버려서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

약 3일 간 책을 비치하지 못했어요.
이 책을 찾아 서점 여행을 떠났다는

독자분들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책이 잘 되어서 기쁩니다.
책이 잘 되지 않았어도 계속해서 글을 썼겠지만  
저를 좋아해준 분들에게
"보세요. 당신 눈이 틀리지 않았죠?"

하고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이 책은 처음부터

20대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했습니다.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남성들과 달리
권위적인 한국의 문화에선

20대 여성들이 유독  
세상 속에서 어딘가 나 혼자 삐걱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교과서와 부모님에게 배운 것과 달리

커가면서 남자친구와의 관계나

주변인과의 관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착한 여자 콤플렉스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고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이장애를 겪는 이들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들을 타겟으로 한

에세이류나 자기계발서류에서는
자꾸만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하지만
그건 기도문 같은 것일 뿐이죠.
잠시 마음의 위안은 되겠지만

당장의 치열한 현실에서는
써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걸 쓰는 사람들도 종교인이거나

회사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고요.
여행이나 퇴사를 낭만적으로 포장해

내놓는 것도 유행이지만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나고

퇴사 후에는 다시 밥벌이를 고민해야 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와 내 주변이 바뀔 수 있는 게 뭘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는

'갑질'과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였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갑질이 넘치는 세상에서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이야기하게 되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들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서툴러 보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계속되면서

여성들은 대화 그 자체를 포기하거나
'이상하고 과격한 사람'이 되어서

조직에서 어느새 사라져버리곤 했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어떤 편견이 사라지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대상이 조직에서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10명의 서울대생이 있는 회사에서

1명의 고려대생이 있다면
그 1명의 모든 행동은

고려대생 특유의 형질로 설명되어 버릴 거예요.
하지만 고려대생이 3명으로 늘어난다면? 

심지어 그 고려대생 중 1명이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외부에서 그들을 평가하는

말하기의 방식은 달라지겠죠.

우리 사라지지 말고 오래오래 남아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자기 표현의 기술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왔습니다.

출간 직후 책의 서문을 <Brunch>에 올렸는데

이 글이
<ㅍㅍㅅㅅ>와 <1boon>에 업로드되며
동시에 kakao 채널 메인에까지 올라갔습니다.
ㅍㅍㅅㅅ에 업로드된 글은

업로드 직후 조회수 70만을 기록했으며
페이스북 좋아요는 5000에 육박했어요.
사람들이 해당 글을

각종 커뮤니티와 개인 SNS에 계속해 공유했죠.
때문에 이 책은 광고비를 하나도 쓰지 않고도 (광고비를 쓰기도 전에!)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출판사와 미팅을 많이 했지만
그들은 에세이는 팔리지 않으니

자기계발서를 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국에서 에세이가 잘 팔리는 건

'김연아 급'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또 제게 SNS를 열심히 해서
인플루언서가 되라고 말했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제 글을 읽는다고요.
하지만 저는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때문에
퇴근 이후에는 뻗어버립니다.
글 마감이 있는 주간에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요.
SNS를 자주 하려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뱉아야 하고
그 반응들을 자꾸만 관리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분산해 써야 해요.
그게 잘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맞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더라도
괜찮다는 걸 저 자신에게도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어 기쁩니다.
남들의 말에 불안한 누군가에게도

이 이야기가 가닿았으면 좋겠네요.

2월부터 독자만남 행사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독자분들 만나뵙길 고대할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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