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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FACT Feb 16. 2020

까페를 만들었더니 힙했다더라

상업 공간을 만들 때 고려해봄직한 이야기들



제목 낚시같지만, 오랜만에 요즘 근황 겸사겸사.

오늘은 까페를 만들어 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까페를 하고 싶다고 맨날 노래를 부르고 다니고 있었는데요. 그게 통했는지 까페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통했다기보다는 까페 프로젝트가 들어올때까지 노래를 불렀다는 인디언 기우제 수준의 아주 조금은 짠한 이야기지만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또 다른 까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까페 됐으니까 제발 까페 말고 다른 일 좀 주세요...


일 들어왔다!


설레임과 기쁨을 가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열심히 달려간 그 곳은 홍대 앞에서도 놀이터 바로 근처였는데, 가장 번화한 길을 걸어 조그마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한적하고 조용함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시끌벅적한 길을 지나 한번만 꺾어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이 나옵니다. 왜 갑자기 낮이 되었냐면, 극적인 대비를 위해 악의적으로 대조되는 사진을 선택해 분위기의 반전을 꾀해본 것이랄까요. 실제로도 번화가 한 가운데에 이런 길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곳입니다.



이미 까페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카페 제인이라고 무슨 150 데시벨 정도의 소리로 대놓고 "여기가 바로 까페다!!!!!!" 라고 외치는 느낌입니다. 대충 뭐 디스 이즈 스파르타! 느낌으로다가..


저 글씨크기를 보세요. 호든 불호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느낌. 지나친 간절함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는데, 한적한 곳에 있어 행여나 눈에 띄지 않을세라, 건축물과 주변 환경을 일절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사인이 먼저 멀리서부터 눈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건물에서 인위적으로 튀어나온 구조물은 골목 끝으로 뻗어있는 시야도 가리고 있네요.



인위적으로 벽을 지나치게 앞으로 잡아빼고, 조금이라도 눈에 더 띄고 접근성을 높여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입구 구조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과하고 불필요한 입구 파사드와 사인들, 심지어는 불법 구조물.. 그런 것들 때문에 건물 윗층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출입구가 마치 굴처럼 변해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고객의 접근을 쉽게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주목적인 상업공간이라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할 일인가 싶기도 했고요. 뭐 그렇게까지 해서 재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 함께 반성해야 할 지점입니다. 브랜드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고객을 상대로 디자인 설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요. 


노답



그래도,

입구를 지나 좀 더 골목 안으로 걸어가보면, 참 한적하고 좋습니다. 사람들도 많지 않고, 길도 넓게 펼쳐져 있고요,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적당히 쾌적한 광장 같은 느낌이 있죠. 길 맞은 편과의 간격이 여유롭고, 갤러리도 있거든요. 저 멀리 틈새라면 간판도 보이네요. 이렇게 봐선 홍대 앞 중심가 같은 느낌은 거의 없죠. 다만 저 하얀 파사드의 이질적인 질감과 인위적으로 잡아늘여 건축물과 따로 노는 듯한 덩어리가 거리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 옥의 티입니다. 




몇 걸음만 다시 걸어 나가면, 이렇게 여느 번화가와 같은 모습이 나타나고요. 물론 홍대 앞에는 매력적인 공간들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왔었고, 임대료의 상승이나 여러가지 사회적 이유 때문에 매력적인 공간들은 점점 더 변두리로 쫓겨나거나, 사라져왔습니다. 이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서도. 


우리의 고객은 까페를 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얻었는데, 기존에 있었던 까페가 총체적 난국 같은 상황이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은 없는 상태였지만, 이미 슬릿(Slit)이라고 하는 이름을 정해두었고, 전개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추후에 개발될 브랜드를 위해 까페와 쇼룸의 요소를 다 가진 곳이 되길 바랐습니다. 한편으론 까페도 쇼룸도 아닌 느낌을 원했고요.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함께 이야기했던 부분이지만 재료 자체의 물성들이 잘 드러나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는 공감대는 처음부터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접근 방향에 있어 고려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무엇보다도, 번화한 길을 걷다가,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거리가 과거의 모습을 잃어가고 번화가가 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건축물의 존재가 원래 의도했던 것을 복원하고 잘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곳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직 때묻지 않고, 과거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골목이었기 때문이죠.



건축 당시 도면을 입수해봤어요. 1층의 원래 주출입구는 건물을 끼고 돌아, 넓은 광장같은 골목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없애고 억지로 옆을 뚫어서, 건물 옆구리를 통해 들어오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렸죠. 번화가로부터 접근성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발악이었다고 하면 그 의도까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 크게 나 있는 창은 방향이 정남향이라 들어오는 빛이 어마어마해서, 항상 커튼을 쳐 놓지 않으면 실내가 과하게 밝아집니다.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한 까페인데, 빛과 분위기를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리하자면,

(1) 측면을 통해 까페로 들어오니, 건물을 끼고 돌아야 느낄 수 있는 거리의 매력을 느낄 여유가 없다.

(2) 창을 통해 뷰를 즐길 수 있게 의도했(던 것 같)으나, 정남향이라 거의 항상 커튼을 쳐놓아야만 하는 현실.

건축물의 형태는 형태대로 망가지고, 그렇다고 뷰가 딱히 좋은 것도 아닌..

(3) 게다가 깨알같이 망한 조경



혼란하다 혼란해


뭐 혼란하다 혼란해 ???? 이런 상황인거죠. 


내가 청진기 대면 진단 나와. 나 김선생이야.


일단 진단부터 해 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시놉시스 형태로 간단 요약부터 하자면, 우선 건축물의 입구가 있던 곳에 다시 입구를 돌려주려고 합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건물 앞의 거리와 그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흉물스런 현재 입구 구조를 허물어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비워주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기고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 될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 위에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덧붙일텐데 덕지덕지 붙이듯 곁가지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즉, 구조적인 부분에서부터 함께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할 거에요.  한마디로 다 때려부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현재의 입구가 있던 곳에는 틈을 남겨둘 겁니다. 역사의 흔적 같은 것이죠. 틈은 일종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지만 공간 내부에서의 시선이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슬릿이라는 이름에서 우리가 떠올렸던 것


그리고, 틈에 대한 이야기를 쓸데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아 보자면.. 틈이라는 것이 존재와 존재 사이의 어떤 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 존재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곧 실재 사이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일테고요.



공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틈이 생긴 곳을 통해 다른 성분이 스며들어 크랙을 야기하게 될 수 있고요.

그 크랙이 진행되면 단단한 베이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어떤 불안정성 같은 함의를 가진다 볼 수 있겠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는..

체제나 사상의 균열이 발생하면, 

그것을 통해 혁명이나 혁신이 일어나고 체제가 전복될 수도 있는.. 급진적 사상의 향기가 느껴지고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는..

네 개소리는 그냥 그만할께요..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90%는 뻘소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틈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불안정하고 동시에 매력적입니다. 슬릿이 위치한 곳도 그렇습니다. 극도로 조밀한 상업지구 한가운데에 틈새처럼 나 있는 조용한 골목안에 위치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검토한 가능성과 방향을 토대로, 이제부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에 대해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볼게요.    


Alex Senchenkov


우리가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을 이걸로 설명할 수 있어요. 존재와 존재 사이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틈... 여기에서 우리는 빛과 그림자, 혹은 블랙 앤 화이트 같은 대비 개념으로 어렵지 않게 생각을 발전시켜 갈 수 있고요. 빛의 부재가 어둠인 것처럼.. 혹은 부재의 영역에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존재의 부재가 곧 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빛과 그림자 사이의 그라데이션이 만들어내는 결의 질감도 우리가 그려내고자 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컨셉 스케치 디자인입니다.

아까 말했듯, 존재와 존재 사이의 부재를 '틈'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그 존재라는 것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존재가 강조되면서 그 사이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함께 강조되는 제시카 - 외동딸 - 일리노이 - 시카고 수준의 아주 단순한 사고의 흐름이랄까. 존재라는 것의 존재감이라니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굉장히 거대한 덩어리가 파고드는 것으로도 틈을 만들어 낼 수 있고요.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틈은 평면적인 느낌이기보다는 입체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정서를 자아냅니다. 정남향을 살짝 빗겨가는 방향으로 치고 들어가는 파사드의 구조 덩어리 덕분에 빛을 억지로 막지 않고도, 블라인드나 커튼 같은 것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시간에 따라 적절하게 달라지는 분위기와 빛의 느낌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아름답고 적절하게 빛이 통제됩니다.
빛.. 그저 빛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빛과 기하학적 질서


프로젝트 시작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남향의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굉장히 신경써서 설계한 부분입니다. 파사드는 건축물의 오리지널리티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상징이자 동시에 디테일인 틈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빛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 태도를 유지한 채 통제함으로써 시시각각 그리고 날씨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틈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감이 더 커져야만 했어요. 멋대로 이름 붙인 '존재의 존재감'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냥 쉽고 편하게 줄 몇개 죽죽 그어서 벌어진 틈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그게 아이덴티티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한 개념에 맞는 틈은 아니니까요. 


휴, 먹고 살기 위해선 원래 많은 고민이 필요한 법입니다. 규모로 조져버릴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가 많이 필요했고요. 그 '존재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틈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개념들이 스트레이트하고 직접적으로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Truly Madly Deeply. 고심끝에파사드를해체하진않았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말은 그럴싸한데, 어떻게 접근하고 이를 구현하느냐. 그냥 즉물적인 솔직함과 소재의 결, 구조와 마감의 일치, 그리고 인위적이지 않은 담백함을 추구하는 거에요. 그런 것들에서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져보거나 가까이서 보면 느낄 수 있는 감각, 그건 그저 눈으로 봐서 예쁘다, 멋지다와는 다른 결의 개념이에요. 그 당당한 존재감 사이에 부재하는 틈은 생각보다 기묘하면서도 큰 깊이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틈.. 그 예측 불가능성과 불안전성이 주는 묘한 느낌 


틈과 빛... 갬성...


동시에 그 틈이 단순히 장식적이거나 미적인 이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일관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큰 그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이제부터 이를 위한 시도 몇 가지 예를 살펴볼텐데, 첫번째로는 먼저



빨간 점선으로 표기한 부분을 기준으로 상부는 1층이 아니에요.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이죠. 저런 식의 과도한 메이크업은 바람직하지 못한, 속이 빈 껍데기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을 돌려주고 주어진 것들만을 솔직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담백하고 엣지있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좀 낯간지럽긴한데, 한 때 홍대 앞 거리를 사랑했고 많은 영감을 받았었던 기억과 즐거운 추억이 있거든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이 거리 전체가 더 오래 지속되기 위해선 모두가 '딱 주어진 것만큼'만을 적절히 활용하고 주위와의 관계성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충분히 무게감있고, 진중하며, 솔직한 파사드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파사드의 외부 물성도 건축물의 외벽 물성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에요. 컬러와 텍스쳐만이 다를 뿐 실제로 완전히 동일한 재질을 사용했어요. 건물 마감과 다른 물성을 사용해서 과도함을 뽐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건물주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사인은 크고 아름다워야 제 맛

잠깐 5초간의 태세전환.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두번째,

의도적으로 두꺼운 금속을 사용했습니다. 문 손잡이, 가구, 좌판 같은 것인데요. 생각 같아선 모든 곳에 후판을 사용하면 너무 좋겠지만 예산 상의 제약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최소한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부분만이라도 모두 후판을 사용했어요. 사람에게 직접 닿는 부분들이 구조이면서 동시에 마감이길 원했거든요. 공간의 아이덴티티와 담백함, 솔직함, 무게감을 위해서 겉과 속이 다른 마감은 피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단순한 시도이지만 공간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시각적 경험 이상으로 촉각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들의 물성과 구조를 마치 울림처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문을 손잡이로 여닫을 때, 그냥 밀고 들어올 때, 가구 같은 곳에 앉거나 일어설 때, 구조 자체가 마감이 되는 물성의 질감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기 힘든 정서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대부분 집에서 생활할 때, 몸에 닿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이 겉과 속이 다른 것들이 많아요. 이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사실은 매우 좁은 곳임에도 건축적인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자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똥싸느라 늦었다

구조나 뼈대가 보여주는 명확함과 정직함 같은게 있습니다. 표정이나 디테일의 부재에도 뭐. 이건 딱 봐도 똥싸느라 늦었다.. 같은 느낌의 해골..


아 너무 멋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사족 같지만 구조나 뼈대를 보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보여주는 어떤 힘의 방향성이나 흐름을 알 수 있잖아요. 선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있을 것이고요. 최종적인 마감이나 디테일에 가려져서 쉽게 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가벼이 여길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큰 영향을.. 아니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입니다. 간과할지라도 실재하는 것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에요. 아 너무 멋지다.




흔히 볼 수 없는 두께의 크고 아름다움


문을 여닫을 때는 어떤 큰 덩어리가 움직인다는 감각이 있는데 손잡이의 두꺼운 판이 가진 판재 특유의 탄성에서 오는, 나를 밀어내는 듯한 묵직한 피드백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묘하다거나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존재만으로도 묵직한 덩어리 형태의 가구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며칠동안 근처에 위치한 많은 장소들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경쟁의 과도함에서 시작이 돼요.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수많은 유동인구로 넘쳐나고 눈을 어지럽히는 각종 광고물들이 여기저기 질서없이 걸려있는 리테일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야만 이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자리 사이의 간격도 욕 나올 정도로 좁은게 홍대 앞의 현실이고요. 


그런데 어떻게든 사람들을 받아들일까에 대해서만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고, 그 이후엔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빼곡이 채워서 앉을 수만 있게 해 놓으면, 그저 어떻게든 들어오도록 일차원적으로만 고민하면 그걸로 끝인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고민고민을 좀 해 봤는데, 차라리 사람들을 그냥 흘려보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제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는 거에요. 혼자와도 잠깐 앉아 있다 갈 수 있고, 뭐 정 있고 싶으면 좀 더 머물수는 있지만 굳이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나 필요성은 없는 곳이죠. 오래 머물기엔 그리 편하지만도 않고요. 막상 왔는데 자리가 없어도 뻘쭘(?)한 느낌 없이 그냥 쿨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 농담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도 몇 번이나 말했어요, 여기 사람들 머물게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고 커피나 한잔 사서 빨리빨리 나가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저는 그때 진심이었어요. 전략적인 관점에서이기도 했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솔직함이랄까. 자낳괴


그리고 클라이언트님의 반응.jpg


하지만 적당히 솔직해야


자, 세번째로 사람들을 흘려보내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그런 의도로 작업을 했으니까요. 비슷한 예로는 길을 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원 같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기가 테이블이다!" 하고 정해놓은 판이 존재하진 않잖아요. 존재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테이블이라고 정확히 규정할 만한 어떤 것들도 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틈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성이라는 아이덴티티에 근거한 불안정한 믿음이 있었어요. 근처 다른 곳에 가면 넘쳐나는게 테이블인데 뭐 어때, 역설적이지만 이곳은 주변에 넘쳐나는 수많은 비슷비슷한 상업 공간들(슬릿이 가지지 않은 기능을 보완해주는) 덕분에 비로소 상업적 기능을 가진 곳으로 완성되고, 또 번화가의 일부분으로써 다른 상업 공간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곳이 됩니다. 동시에 공간이 아닌 장소로 완성되고요. 이 포인트 때문에 홍대 앞이라는 거대한 상업지구 안에서 다른 공간과의 관계성을 가지게 됩니다. 번화가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이 계획은 장소가 아닌, 반쪽짜리 공간이 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대신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이미 획일화 된 홍대 앞에 약간의 다양성과 또 하나의 선택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존재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존재 화이팅

빵상빵상! 앗 존재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모르게 그만... 



제각각 높이가 다른 저 가구들은 얼핏 보면 이동 가능한 스툴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무려 10T의 금속으로 만든 저 가구는 각 잡고 스쾃자세로 배에 힘 딱 주고, 파워 넘치는 남성이 제대로 들지 않고서는 쉽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거부감 없이 앉을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음대로 쉽게 들었다놨다 할 수 없어서 많이 불편해요. 두껍고 투박한 재질을 들어오면서부터 촉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할지언정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도록 의도한 부분입니다. 높이들이 다른데, 뭐가 테이블인지 뭐가 의자인지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고 중요하지 않아요. 규정되어 있지도 않고요. 그냥 사용하고 싶은 방법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파사드 바깥에 위치한 계단과 파사드 내부에 위치한 가구는 서로 형태가 달라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광장의 벤치처럼 앉았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이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형태와 방식에 의해서 비로소 모든 것은 완성돼요. 


그리고 네번째로는 환경 자체를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주변과의 연결성 그리고 조화를 많이 고민했어요. 이 글에서 내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혼자 휴식을 할 수도 있고, 여럿이 시끌시끌 떠들어도 되는 공간, 그리고 부분 부분 분리된 곳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 모든 분리된 곳은 같은 흐름으로 서로 개방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어려웠다고 고백할게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바의 덩어리 구조 자체가 껍데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들어가면 직관적으로 그렇게 보여요. 입구를 통해 들어갔더니 또 파사드 같은게 있더라, 파사드의 대구적인 표현이라고 볼수도 있고요. 광장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개념을 표현하는 메타포적인 하나의 방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파사드의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에, 내외부의 경계를 흐리기 위한 시도의 일환입니다.



얼핏 눈으로 보기엔 블랙과 화이트의 콘트라스트를 이 곳의 주요 포인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우리에겐 크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단 구조나 골격으로 승부하고자 하는 의도가 컸습니다. 물론 인터페이스 같은 부분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각 구조들로 인해 나눠진 각각 다른 작은 공간 속에서 그 어느 곳에 있더라도, 혹은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밖에 있거나, 안에 있거나에 상관없이 비슷한 감상과 느낌을 갖길 원했습니다. 이 공간의 일부만을 체험하더라도 슬릿이 가진 전체성을 이해하게 되길 바랐던 것이죠. 구조의 흐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저 커피바의 영역은 언제든지 리테일 쇼룸의 리셉션으로 사용되어도 기능상 혹은 연결 구조상 아무런 어색함이 없습니다. 



이런 느낌이에요. 위 사진들은 모두 다른 위치에서 바라본 뷰인데요.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어디에서든 구조가 가진 흐름이 동일하게 이어집니다. 불규칙한 사선의 흐름이 안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사선의 형태 하나하나가 단순한 디테일이 아니라 구조 계획의 일부로서 작용해 전체적인 느낌이 온전하게 전달되기 때문인 것이고, 이 구조들은 단절된 공간 사이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 주고 있거든요. 리테일 쇼룸으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재프로그램해서 두개의 홀 형태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 위에서 보듯 어디서든 같은 흐름과 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블랙앤화이트의 대비와 표면 텍스쳐들은 구조감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이것이 곧 컨셉이거나 본질이 되진 않아요. 애시당초 우리의 초기 아이디어는 화이트 파사드였기도 했고요, 블랙과 화이트가 반전되건, 다른 컬러를 사용했건 어쨌건 이러한 컬러톤 자체가 본질은 아니에요. 우리는 가오픈 기간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을 모니터하고 있는데 대체로 묘하다, 특이한 기분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분명 이것은 단순히 블랙앤화이트라는 톤과 대비로만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입구에서의 구조와 고유한 선의 흐름은 스툴 형태의 가구 구조와 틈을 모티브로 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가구와 파사드의 스케일은 다르지만 아이덴티티와 물성은 동일하고 이는 작업하면서도 광적으로 집착하다시피 고집한 부분입니다.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블랙앤화이트 같은 것은 그 자체로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만 2392180981개 정도의 블랙앤화이트 까페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이 고만고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컨셉 그 자체가 블랙앤화이트이기 때문이에요. 본질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결국 껍데기나 방식에 불과한 도구일 뿐이니 알맹이가 빈약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곧 겨울이 가고 나서 찾아올 봄의 슬릿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음료에 대한 평도 좋더군요. 멋진 까페를 넘어 동시에 브랜드 쇼룸이 될 수도 있고... 맨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추후에 리테일 쇼룸으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습니다. 입구 앞 광장이 특히 재밌어 질 것 같습니다. 가오픈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이슈가 되기도 했고, 클라이언트님도 좋아하신 듯하고. 이 자리를 빌어 오픈 전부터 이 곳을 찾아주시고 즐겨주신 #가오픈단속반 님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셜 땡스 투 + 소소한 비하인드 이야기.



별 것 아니지만 건물에 거주하는 분들께 분에 넘치게 감사하단 말을 들어서 뿌듯했던 부분입니다. 건물 드나드는 입구가 너무 쾌적해져서 감사하다고...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데. 상업공간을 설계할 때 땅따먹기 하듯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활용하고자 하는 행태가 심해진 것이 (대부분은 심지어 불법)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두달 동안 현장 앞을 지키느라 고생한 이름모를 길고양이. 넘모 귀여운 아이죠. 

미장해 놓은 현장에 발자국을 찍어놓은 것만 빼면 완벽했는데...



공간 내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브제 같은 판때기

이것은 어떤 의도의 판때기 오브제냐면..



딱히 의도한 건 아니고, 레이저 가공해서 외부 사인 타이포를 떼어내고 나니 저렇게 남았어요. 보통은 그냥 버리는 것이죠. 근데, 막상 세워두고 보니 안과 밖을 이어주는 매개체 같은 느낌도 있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뭔가 있어보여서 그냥 놔뒀습니다. 거저 먹은 것 같아 좋네요. 인스타에 많이들 찍어올리시길래 숟가락 한 번 얹어봅니다. 우리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참고로 외부 사인의 구조는 함께 작업한 아이덴티티의 조형 그 자체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었고요. 

 



형광등이 잘 어울려요. 궁금합니다? 

예상을 1도 못했는데 생각외로 저희 인스타 계정 @artefact_seoul 에 조명을 문의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아무래도 감매거진 조명편 발행 이후 조명 설계나 각종 조명에 관한 문의를 지속적으로 받는 편입니다. 사실은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라이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니멀함이 인위적이거나 장식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고요. 미니멀한 룩을 가진 것들도 때론 과하게 장식적일 수 있습니다. 형태가 미니멀하다고 해서, 장식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소위 '상업공간에서 흔히 보이는 인더스트리얼룩의 조명' 같은 것은 인더스트리얼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장식적이고 '척'한 것이죠. 이거 자칫하면 가장 미니멀한 형태의 조명조차도 이 곳에선 굉장히+투머치 장식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라고 봤습니다. 



그저 미니멀 룩이 아닌 기능적으로 혹은 존재 자체로 미니멀한 조명을 연구해 봅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게 있어서 썼다.. 일부러 만들어진 미니멀한 느낌도 아닌데 너무 딱 어울리네", 같은 느낌이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공장이나 산업 현장 같은 곳에서 쓰는 방폭 조명이라는게 있어요. 방폭이라는게 Anti-Explosion이라고 폭발 방지 조명인데, 실제로 공장 같은 곳에서 쓰기 때문에 와트 부속도 저렇게 막 노출시키고 뭔가 매쉬 재단도 이음새가 거칠어 보이지만 간결한 질서가 있죠. 그래서 '척'하는 느낌이 없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뭘 구겨넣고 숨겨서 미니멀하거나 미니멀한 척한게 아니라, 그냥 미니멀한 거에요. 본질만 남아서 미니멀한 느낌이랄까. 


그 왜, 인더스트리얼 조명이랍시고, 인더스트리얼 Look으로만 만드는 것들은 결국 가짜인 것처럼요. 좀 더 솔직한 느낌이 들어서 이 제품이 좋았습니다. 샘플 받아보기 전엔 괜찮을까 하고,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긴 했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방폭 조명이 있는데, 찾아보시면 재미있는 제품들이 많아요. 


자 그럼 여기까지. 작업하면서 일관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견지하고 또 솔직 담백함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까페 만들고 싶다고 노래 불렀다가 일복이 터져가지고, 지금도 새롭게 작업하고 있는 까페가 있는데, 조만간 새로운 까페 작업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완성된 공간 사진 링크로 마무리 합니다.



완성된 공간 사진 보러 가기


- Project Management : 김형진 / ARTEFACT

- Spatial Design : 강예경 / ARTEFACT
- Identity Design : 조중현 / 퇴사자

- 금속 : 한라메탈 

- 설비 : 대영설비

- 잘 찍은 사진 : 여인우

- 대충 폰카로 찍은 사진 : 김형진

- 미팅 시 음료수 제공 : 장혜원 (고객님)


프로젝트 문의 : contact@artefact.co.kr

인스타그램 : @artefact.kr

웹사이트 : http://artefac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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