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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Oct 09. 2017

#1 소청도 여행기

여행 유배


파도는 가만히 있는 돌들을 집어삼켰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파도가 삼킨 돌은 그 속에서 저들끼리 마주치며 둔탁하고 고른 소리를 냈다. 

하얀 거품이 일며 시원한 소리를 내는 파도를 보았을 때, 나는 복잡한 도시로부터 멀리 떠났음을 실감했다.



소청도(小靑島).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약 3시간~4시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몇 년 전, 1박 2일에 백령도 편이 방영되어 백령도는 그나마 잘 알려진 섬이지만, 그 옆에 딸려 있는 대청도와 소청도는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청도(靑島)는 '검푸른 섬'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것이 마치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먹(黛)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 작은 섬에는 약 270명 정도의 주민이 마을을 이뤄 거주하고 있다. 마을은 크게 두 개로 나눠져 있고, 슈퍼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있다. 이곳이 낚시로 유명해 낚시꾼들이 자주 드나들어 민박집은 몇 군데 있다. 


소청도와의 인연

2011년 3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포항에 있는 훈련단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일명 '뺑뺑이'를 돌려 자대가 정해졌는데, 나는 백령도로 결정 났다. 절망적이었다. 수료식 후 모든 짐을 챙겨 인천으로 향했다. 연안부두 근처에 군부대에서 대기했다. 다음날 아침, 웬일인지 보지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 그 날 나는 백령도로 멋모르고 떠났다.

백령도는 그나마 큰 섬이다. 큰 마트나 도시를 밝히는 술집 거리는 없지만, 웬만한 것은 다 있었다. 그때 백령도를 둘러보며 '언제 내가 이런 곳에 와보겠어'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2주 후, 내가 속해 있던 3소대가 소청도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임들은 그곳에 가면 육지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각종 해물이 듬뿍 담긴 라면이 유명하다며,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여 가고 싶지 않은 섬으로 우리를 보내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최종적으로 소청도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됐다.

지긋지긋했다. 북한과 가까워 주 임무는 경계근무였다.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바다만 바라봤다. 그러나 한 가지 행복한 게 있었다. 밤에 근무를 설 때면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과학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수없이 많은 별들은 지루한 초소 근무와 군생활을 달래주었다. 나는 그것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나와 여자 친구) 1박은 소청도, 2박은 백령도를 계획했다. 텐트와 침낭을 포함해 비상식량, 옷가지 등을 두둑이 챙겼다. 10월 1일 아침 7시 50분 배에 우리는 몸을 실었다. 항로는 인천에서 백령도이다. 백령도로 가기 전, 소청도와 대청도를 들리고 최종 백령도로 입항한다. 내리기 30분 전부터, 비가 쏟아지는 것이 배의 창문으로 보였다. 파도는 높아졌고 바람도 거세졌다.  우리는 오전 11시 10분경, 소청도에서 내렸다. 감회가 새로웠다. 꿈에서도 꾸기 싫어한다는 재입대의 느낌이 들었다. 포구에 내리자마자 세찬 바람과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우리를 반겼다. 일단 먼저 비를 피하고 계획을 수정하기 위해 쉼터로 들어갔다. 기다란 나무의자와 바닷바람을 막아주기에 충분한 두터운 유리문으로 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소청도에는 식당도 없기 때문에 배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미리 도시락을 구입했다. 그것을 까서 먹었다. 그리곤 우리는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텐트에서 1박을 할 계획으로 민박을 예약 안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텐트를 치고 자다가는 다 날아갈 판이었다.



명탐정 셜록홈스와 닥터 왓슨이 캠핑을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함께 누워 잠을 잤다.

얼마 후 홈즈가 갑자기 왓슨 박사를 깨웠다.

"왓슨, 하늘을 보고 뭘 알 수 있는지 말해주게"

왓슨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수백만 개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천문학적으로 은하계가 수백만 개 있으며, 측시학적으로는 시간이 새벽 3시쯤 되었다는 것,

기후학적으로는 내일 날씨가 청명하리라는 것, 자네는 무슨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던 홈즈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누군가 우리 텐트를 훔쳐갔다는 걸 알 수 있네"

"바람이 우리 텐트를 날려버렸다는 걸 알 수 있네"


여자 친구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대합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표를 발권해주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왔다.

이따가 오는(표를 발권하러) 아주머니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으니, 기다렸다가 물어보라네

몇 분 후, 우리는 짐을 챙겨 대합실로 옮겼다. 5년 전 군 복무를 했을 때의 대합실과 똑같았다.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아주머니에게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공실이 있다고 했다. 발권을 다 마치면 차를 타고 이동하자고 아주머니께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다음 말씀은 절망적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져서 이제 배가 안뜰 텐데. 10월 4일에나 뜰 꺼야  

군 복무 때도 기상악화로 인해 배가 안 뜨면 꿀맛 같은 휴가도 미뤄지고, 군생활을 청산하고 떠나는 전역도 미뤄진다. 그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행 유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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