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보는 트렌드
때는 바야흐로 2016년 여름 프라하에서였다. 내가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가.
3년 전 프라하에서 처음 오렌지 와인을 마셨을 때만 해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거론되던 내추럴 와인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의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인기는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 이유가 뭘까?
첫째, 소비자들이 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웰빙 식품 건강과 환경에 관한 우리들의 관심과 지식이 높아졌다. 화학물질로 공정된 제품보다는 지속 가능한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포도에 이산화황이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들어가는 전통적 양조방식으로 만들어진 내추럴 와인은 지금 현대 소비자들의 간지러운 속을 긁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일반 소매점에서는 팔지 않는다. 마트에서 쉽게 와인 한 병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와인에 대한 지식과 소비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 이제 더 이상 누가 더 비싼 와인을 마시고 SNS에 인증하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누가 더 새로운 걸 도전하고 느낄 수 있는 ‘힙함’이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이다.
그때 나타난 게 내추럴 와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는 아직 만나보기 어렵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바 또는 와인샵 정보도 아직 적은 편이라, 관심이 있어야만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매니악한 느낌을 심어준다. 심지어 한남동의 모 내추럴 와인바는 다녀간 손님의 소개로만 예약제 할 수 있게끔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덕후 문화로 각광받게 된 것.
셋째, 전형적인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와인의 생산지에 따라 공식처럼 기대되는 기존의 맛을 예상할 수 없다는 매력이 있다. 예를 들면, 샤블리라면 미네랄 리티 이런 공식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랜덤박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구체적으로 이해해보자면, 올가닉 와인과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은 기존의 양조과정의 거쳐 기존의 와인과 비슷한 내는 반면, 내추럴 와인은 화학적 첨가를 거의 하지 않는 양조법을 진행함으로써 이제까지 와인에서 느끼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산화황이 들어가지 않아 와인을 오픈한 후 산소와 만나게 되면 산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편인데, 이때의 모습이 일반 와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변하면서 기존의 와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내가 지금까지 프라하에서의 오렌지 와인을 특별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째, 개성 있고 재밌다.
내추럴 와인은 라벨부터 와인 자체의 색감까지 개성 있고 재밌다. 기존의 와인 라벨은 가문의 문양과 재배된 지역 등급 등 똑같은 규칙 안에서 움직이지만 내추럴 와인은 그런 게 없다. 개성이 톡톡 튄다는 매력이 있다. 와인이 뭐 그게 그거지 라는 사람들이라면 그 생각을 확실하게 바꿔줄 것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 취미활동도 그 안에 재밌는 유행의 흐름들이 있다. 이런 경험들을 잘 관찰하고 정리해서 쌓아두면 그 안에서도 마케팅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싱글즈 11월호>에 실린 글을 재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