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엄마 과학자 육아기
임신인 것이 확인이 되었다.
입덧이 시작되었다.
배가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실험을 놓치 않고 있었다.
임신기간 입덧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입덧은 어른들 사이에서 말하는 "착한입덧"으로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입덧이 없다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과 동시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다 토해내는....
사실 밖에서 볼땐 매우 건강한 임산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아주 쓸데없는 입덧이었다.
매일같이 아무것도 못먹는 사람들에 비하면 먹고 토하는게 낫다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다.
왜냐면 내 입덧은 고기를 거부하는 입덧이었기에...
고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내 몸에 단백질이 매우 부족해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실험 (이라 쓰고 막노동이라 읽는)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늘 체력이 부족한데 단백질이 부족해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에게 다량의 철분도 공급해야 했기에 내 철분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이제와서 하는 소리지만 나름 빈혈로 인해 임신기간동안 고생 좀 했었다.
사실 입덧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유기화학 실험실 특유의 냄새였다.
실험실이 아무리 배기와 환기를 신경써도 늘 이상한 시약 냄새와 역한 solvent 냄새가 있어서 구역질 심할 줄 알았는데,
실험을 해야 하는 엄마를 배려한 아이 덕분인지 시약 냄새를 맡고 우웩 거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임산부인데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강제로...)
여전히 실험을 하고 있고,
그냥 배가 좀 나온 연구자일 뿐이었으니 아주 평탄한 시간이었다.
배가 나오면서 매우 불편한 사항이 한가지 생겨났다.
바로 실험복이었다.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유기화학자에게 실험복이란 수많은 시약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자상과 화상으로부터 나의 몸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임산부. 내 안에 하나가 더 있으니 실험복 하나가 두명의 생명을 지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배가 나오면 나올수록 배가 안맞았다.
처음에는 한치수 큰 실험복도 입어봤다.
그럭저럭 입어지는데 역시 6개월 넘어서 배가 좀 나오니 잠궈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남자 실험복도 구해서 입어봤다.
난 난쟁이라 이건 땅에 끌렸다.
키는 신체 구조상 별수 없어서 결국 실험복을 포기하고 앞치마를 선택했다.
앞치마도 점점 들떠서 막달엔 그냥 앞치마를 몸에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왜 임산부를 위한 실험복은 없는 걸까?
임산부를 위한 군복도 있고, 승무원복도 있고, 은행원들도 임부복이 있던데
왜 우린 없을까? 임신하고 랩에 나오는 일이 없어서 필요하다 말하는 이가 없어서일까?
지금와서 툴툴대자면 정말이지 더럽게 불편했다.
가뜩이나 배가 나와서 실험 테이블에 배가 닿는 경우도 많아 배쪽에 뭐가 묻어날 때가 많은데
그 배를 지켜줄 보호복이 없다는 점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임부복과 함께 또 불편했던 부분은 안전교육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의 실험실은 안전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실험자에게 노출되는 독성물질에 대한 교육과 연구 역시 부족하다.
사실 교육이 가장 부족하다 본다. 특히나 유전독성에 대한 내용이 매우 부족하다는 경험을 이 시기에 했다.
임신한 사실을 지도박사님께 알리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내가 사용하는 시약들과 solvent등에 대한 독성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흡입 시 문제가 되는 시약들은 없었고, 또 내가 있던 실험실은 장비가 매우 훌륭한 곳이라
흄후드가 빵빵해서 독성물질을 흡입할 일 자체가 없었으나, 그러한 정보를 내가 일일이 찾아야 한다는 점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실험실 안전에 대한 체계가 잘 구축되어 추후 임신하는 내 후배들은 클릭 한번에 임신 시 위험한 시약이나 용매들에 대한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음 참 좋겠다 싶다.
일일이 MSDS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찾아서 독성정보를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천만원을 100원짜리로 바꿔서 일일이 돈을 세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하겠는가?
나에겐 100원으로 천만원 세는것과 실험실에 쌓인 시약의 MSDS를 일일이 찾으면서 유전독성을 찾는 일이 동일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내 몸에 해당되는 일에 대해 알아보고 대처하는 일은 그나마 쉬운 일에 속했다.
이제 다음으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휴가가 존재하지 않는 대학원생이
출산휴가를 어떻게 쓸수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과, (출산휴가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옵션으로 혹시라도 육아휴직은 가능한 것인지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것이 빅 이벤트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런 빅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른 산모들처럼 조리원이나 병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없었다.
그냥 적당한 조리원, 적당한 병원이면 만족할 수 있었다.
사실 나에겐 그러한 일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낳는 것은 의료행위로 생각하고 맡기자라고 생각하고,
남은 임신기간 동안 위의 일들을 걱정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사실 태교를 해본 적도 없던 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해준 태교라고 굳이 말해본다면....
임신기간 동안 진행한 랩 미팅과 랩 세미나에서 논문세미나 한거 정도?
아마도 우리 땡그리는 (아이 태명) 뱃속에서부터 사이언스지와 네이쳐캠과 OL 등의 페이퍼에서
total synthesis와 organic chemistry의 아름다운 메카니즘 공부를 하며 지낸 셈이라고 쳐야 할 것 같다.
얼마전까진 태교를 우습게 생각했는데,
요즘 우리 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태교라고 하는 것이 꼭 무시할 것은 아닌듯 하다.
왜냐하면...지금 내 아들은....
이런걸 좋아하는 사이언스키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것은 에미의 강요가 아니다;;;;;;
그리고 아이는 랩미팅으로 태교를 한 덕에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를 알아서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냥 영어로 누군가 솰라솰라 하는 것을 듣는걸 좋아한다.
이 또한 아기때 주말 출근하는 나를 따라 실험실을 오고가며 외국인 연구자들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기를 봐준 덕분인듯 하기도 하다;;;
여튼
실험복 못 입는 궁휼한 실험인의 생활보다 더 중요한 휴가와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위해
배불뚝이가 된 나는 미친듯이 전화를 돌리는 일을 7개월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 나라는 정말 많은 정책이 존재한다는거....^-^
근데 직접 찾아야 알 수 있다는거....
어디서도 홍보를 안해준다거...^-^
호호호호호 장난하나 정말.....ㅠㅠ
이렇게 격동의 임산부기의 빅 이벤트 휴가와 어린이집을 찾으러 배불뚝이 임산부가 직접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