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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15. 2016

폭풍구름 사이로, 비야반떼

누군가 이 길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길은 외길, 멀리 보이는 길 위를 가득 덮고 있는 어마어마한 덩치의 폭풍구름. 한 눈에 봐도 저 구름을 만나면 몸을 가누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길을 걷는 동안 폭풍구름은 길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비껴나 주었고 오히려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작은 구름덩어리만 나의 길을 따라 흘러주었다.

분명 레온의 산타마리아 델 까미노(길 위의 수호자 성모마리아)께서 나를 보호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비야반떼의 산타루시아 알베르게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참아주었던 구름은 폭풍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너무도 시원하고 경쾌한 빗소리였다.


[8.8 금요일 / 걸은지 22일째] 레온의 밤도 만시야와 마찬가지로 흥청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는 수도원 알베르게였기에 밤 10시가 되자 길로 향하는 출입문을 걸어 잠궜다. 각 숙소의 출입문도 10시 반 이후 출입금지다.

그토록 원하던 도시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려니 좀이 쑤셨다. 살짝 침대를 빠져나와 숙소 입구의 출입문쪽으로 오니 나처럼 잠 못드는 이탈리아인 두사람이 출입문을 열고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다. 곧 슈퍼문이 뜬다더니 달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그 두사람에게 "문 잠그지 말아줘, 나 담배 좀 피우고 올게" 라고 말한 뒤 알베르게 마당 한켠에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어두컴컴한 벤치에 앉아 있는데 그들 중 한사람이 내려오더니 "우리도 피울건데 같이 피울래?" 그런데 마리화나다. "아 됐어, 우리나라는 이거 피우면 잡혀가" 라고 말했....을까? 믿거나 말거나.


광장으로 나가 레온의 아침을 실컷 감상한 뒤 다시 순례길을 나섰다. 레온 시가지를 벗어나 언덕을 오르니 벙커처럼 생긴 와인저장고(?)들이 길 옆에 즐비하다. 떠나온 레온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레온을 벗어나면 또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라는 마을을 향해 걸었다. 또다시 삭막한 풍경이 펼쳐지고, 걷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마사리페의 성당은 무척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성당 마당의 순례자상 앞에서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이미 함께 레온을 출발한 일행들과는 멀어진지 오래다. 아마 이 마을에서들 머물겠지.

오랜만에 혼자만의 길을 걷고 싶어 한 마을을 더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너무도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를 떠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길 옆의 전깃줄에 까마귀로 보이는 새떼가 가득 내려앉기 시작하더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의 폭풍구름이 나의 잎길에 몰려들고 있었다. 구름을 보며 두려움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시간은 오후 네시를 넘어가고, 구름은 점점 두텁게 길을 덮고 있었다. 저 길을 내가 통과해야 하다니. 주변에 비를 피할 만한 곳도 보이지 않고, 다음 마을은 아직 멀었다.

까리온에서 배운 스페인 노래 Santa Maria del Camino 를 큰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휘파람도 불어댔다. 휘휘 내리막을 내닫다 보니 어느덧 그 구름의 중심부를 통과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

그 순간, 기적처럼 폭풍구름 덩어리가 두개로 나뉘더니 길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모세의 기적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신비로운 일이었다.

오히려 구름 한 가운데로 빛이 들고,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작은 구름만 내 머리 위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비야반떼(Villabante)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입구에 작은 알베르게가 보였다. 산타루시아 알베르게(Albergue Santa Lucia)다. 알베르게에는 일찌감치 도착한 외국인 순례자들만 몇몇 보였고, 특이하게도 리셉션에 커다란 앵무새 한마리가 쉴새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 들어서기 무섭게 한참동안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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