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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24. 2016

갈리시아의 맛, Pulpo

축제가 끝난 멜리데와 아르수아를 지나 별들의 들판으로

설마, 거기서 잔거야?


사리아 이후, 순례자들의 발소리가 행군하는 군인들의 그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성우에 들뜬 마음으로 노숙을 한 우리에게 이른 아침의 그 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린다.

한국인들의 노숙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길을 벗어나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덕분에 늦잠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길은 외길, 끊임없이 순례자들이 지나갈 것이다.

오전 열시도 되지 않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인근 샘에서 대강 씻고 길을 나선다.


[8.18 월요일 / 걸은지 32일째] 앞서 나헤라 순례기에서 소개했던 에우헤니오 신부의 순례시 "Peregrinos a Santiago" 에서 까미노 데 프란세스의 여러 지방에 대한 묘사가 나열되는데, 그 중 "ni los mariscos gallegos(갈리시아의 해산물)"이라는 부분이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지방이 바로 갈리시아. 그렇다면 해산물을 맛보아야겠다.

사실 레온에서도 Pulpo(뿔뽀)를 맛보았었다. 문어를 삶은 뒤 올리브유와 소금, 파프리카 가루 등으로 간을 해서 내놓는 요리인데 멜리데의 뿔페리아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맛보아야겠지.

멜리데의 유명 뿔페리아에서 맛본 뿔뽀요리

어제 오레보레이로까지밖에 못왔지만 원래는 멜리데에서 축제를 즐길 생각이었다. 팔라스데레이에서 어떤 현지인으로부터 멜리데의 축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축제의 밤을 불꽃놀이와 함께 즐길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었지만 날은 금방 어두워졌고, 은하수에 의지하여 걸어야 했기에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길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멜리데는 멀리 있지 않았다. 온 마을에 축제의 기운이 풍겨왔고 사람들도 들떠있는게 보였다. 폰세바돈의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오지랍 넓었던 스페인 친구(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를 멜리데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길가의 레스토랑 하나를 가리키며 "저 곳이 문어요리가 가장 유명한 곳"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Pulperia A Garnacha 라는 뿔뽀전문 레스토랑이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갈리시아 지방은 대서양에 접해 있어서인지 해산물 요리가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뿔뽀는 스페인 사람들이 즐기는 요리 중 하나다. 올리브유와 버터 등으로 부드러워진 문어가 무척 맛깔스럽지만 스페인의 요리는 매우 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설마 문어요리가 짜겠나 싶어서 "뽀꼬쌀(Poco Sal)" 이라는 단어를 써먹지 않았는데 후회했다. 음식이 짜기 때문에 함께 나오는 바게뜨를 다 먹고 더 달라고 했다.

스페인에서 음식을 시켜먹을 때 기억해두면 좋은 말 "Por favor, Poco Sal 뽀르파보르, 뽀꼬쌀"
"소금은 조금만 넣어주세요" 라는 뜻인데, 반드시 기억해 두기 바란다.

멜리데를 벗어나 숲속길로 접어들면 빨간색 밀납을 이용해 발바닥 모양이 그려진 독특한 세요(스탬프)를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 입체적인 세요가 예쁘긴 하지만 당연히 돈을 기부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수많은 기부제 노점들이 있다. 아예 사람이 지키지 않고 과일들을 좌판에 깔아놓은 양심노점도 몇 곳 있었다. 아예 돈통까지 옆에 마련해 놓아서 큰 돈 밖에 없으면 거슬러 갈 수도 있다.

숲길을 지나 K45.5 표지를 지나면 아담한 마을 하나를 지나게 된다. 보엔떼(Boente) 라는 마을인데 이 곳에 있는 순례자 성당은 구조도 독특하고 워낙 작아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특히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 제대가 보이는 여느 성당의 구조와 달리 출입문이 제대 뒤로 열려 있다. 함께 걸었던 준현군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성당들 보다도 마음에 든다며 떠날줄을 몰랐다. 그는 성당의 방명록에도 그렇게 썼다.

보엔떼 마을을 나와 다시 한번 숲길을 지나면 아르수아에 거의다 왔음을 알려주는 이소강(Rio Iso)을 건너게 된다. 아르수아(Arzúa)는 거리가 깔끔하고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에 있는 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아르수아를 빠져나가 도로공사가 한창인 A Calzada 부근의 들판에서 야영을 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 인근 공사장의 버려진 나무토막들과 마른 나뭇가지들로 모닥불을 피우기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까미노의 마지막 사흘 중 하루가 또 지나갔다. 이제 낼모레면 성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벌써 하늘에는 산티아고 공항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들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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