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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30. 2016

이베리아반도의 끝 묵시아에서

소를 업고 다니던 그녀를 대서양에서 다시 만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지만, 아쉬운 발걸음은 다시 100km 정도를 더 걸어 피스테라(Fisterra)까지 가게 한다. 조금 더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들은 묵시아(Muxia)로 향한다. 두 마을 모두 대서양을 향해 열려 있고,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마을이다. 그리고 대서양의 수평선 너머로의 일몰은 지독하게 아름다워서 순례자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갈매기들의 끼룩거림과 파도소리에 묻혀 순례자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 뒤 모든 순례를 마무리한다.


2014.8.21 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의 꿈만 같던 하루가 갔다. 아스토르가 이후 함께 야영을 하며 길을 걸었던 준현군은 풀장이 딸린 한인민박집으로 떠났고, 한국에서 함께 출발했던 정호씨와 나는 산티아고에서 재회한 후 또다른 한인민박집에서 묵었다. 아쉬운 마음에 산티아고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 세시가 되어서야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내일 이 곳 산티아고의 공항에서 예약해 놓은 렌트카를 찾아와야 하기에 땅끝까지 걷는건 다음으로 미뤘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의 버스터미널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길을 걸으며 간혹 만났던 A와 까미노 초반에 보았던 B 등 네명이었다. 그들은 벌써 피스테라까지 걸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버스가 묵시아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경. 숙소를 잡고 대충 씻은 뒤 인근의 바르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갈리시아의 수프와 요리, 무엇보다 손님들과 함께 노래하며 아코디언 연주를 멋지게 해주던 주인장 덕분에 바다에서의 일몰을 못볼 뻔했다. 하지만 못보았어도 후회되지 않았을 저녁식사였다.

묵시아의 첫인상

식사를 마치니 9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묵시아 해변으로 향하는 길을 이번엔 뛰다시피 걸었다. 이번 여행중 대서양에서의 노을을 볼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조급했다.

작은 바위산을 돌아나가자 드디어 보였다. 붉어진 바다와 하늘, 바닷가의 성당, 바위에 걸터앉은 순례자들.

바위를 향하여 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인사를 건네는 여자는 어둠속에서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바로 또르레스델리오에서 소 인형을 업고 걷던 그녀였다. 로그로뇨의 수도원에서도 우연히 만났던 바로 그녀였다. 이 길 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곤 했다. 토마스는 어떻게 됐을까? 소르사 할머니는 순례길을 잘 마쳤나? 준현이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을까? 현호네 남매는 축구를 보러간다고 했는데, 광표, 도원, 보라, 빠스와 이스라엘.... 바닷가에 서니 보고싶은 얼굴들.

아쉬움과 그리움과 뭔지 모르겠는 행복감 속에 묵시아의 밤은 깊어갔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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