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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을지 Jan 20. 2024

나는 나에게 월급을 주기로 했다.

2024년, 난 나에게 월급을 주기로 했다.


연초엔 다들 지난해 회고와 올해의 계획으로 스스로를 다지는 분위기다.

나 역시 1년에 1~2회 정도 회고를 하는 편인데 이번엔 하기 싫은 숙제를 미루는 것 마냥 손에 잡히질 않았다.

왜 그랬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확실한 넥스트에 기인한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회고가 갖는 의미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배운 것과 아쉬운 것들을 잘 wrap up 하여 더 성장하는 내일을 기약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난 성장할 수 있는 내일일지 그 반대일지 전혀 알 수 없는 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리멤버'에서 23년 12월 31일을 마지막 근무로 자유인이 되었다.

마케팅&그로스팀을 리드했던 7개월 동안은 굉장히 기민하고 숨 가쁘게 움직였던 시간이었고, 덕분에 굉장히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헌데 왜 난 자유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을까?

리멤버 2023 Year End Party �


내가 기억하고 배운 2023년

8월 이후 전사 목표가 조정된 이후로 거의 매달 리드하고 있는 팀 목표를 달성했다. 방법을 물어본다면 답변은 아주 단순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 지표를 정의하고, 이를 인수분해하여 그에 필요한 액션 아이템의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마케팅&그로스팀 성격 상 각자 맡은 역할의 성공지표 기준이 뚜렷했고, 팀원 모두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책임감'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지만 특정 개인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도, 어딘가 모를 섹시함과 엣지가 깃든 묘수도 아닌 책임감이었다. 전사 퍼널 지표 상 우리가 무너지면 그만큼 product팀과 sales팀에서 make up 해야 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일종의 동업자 정신이라고 할까. 우리가 얼마나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왜 해결해야 하는지가 늘 먼저다. 전략과 전술은 그다음 이야기이다. 다들 프로답게 임해준 팀원들 덕분에 팀워크로 달성할 수 있었다.


스스로 반성하는 부분도 있다.

국내 500만 직장인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인 만큼 운영 중인 BM이 복수개였고, CRM이라는 명분으로 동일한 회원이 다양한 BM으로부터 빈도 높은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피로도 관리를 하는 게 맞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유지하는 게 맞을까. 피로도 관리를 하게 되면 일부 사업은 단기간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다고 현행 유지하기엔 불필요한 VoC를 넘어 브랜드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


그 외에도 다른 고민들도 있었다. 채용 플랫폼 서비스의 성장을 위해 지금 당장 계약해 줄 B2B Lead(구인 기업)를 늘리는 게 우선일까, 충분한 채용 성사가 일어날 만큼 B2C 프로필(구직자)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게 우선일까. 또는 우리가 공략하는 시장 내 세그먼트를 빠르게 넓히는 게 좋을까, 뾰족한 세그먼트로 우리가 정의한 시장 내 1등의 포지셔닝을 선점하는 게 좋을까.


결국 늘 선택의 문제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누가 더 좋은 선택을 하냐이다.


나 스스로 아쉬운 부분은 이런 순간에 나의 행동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논리와 데이터를 가지고 내 의견을 피력하거나 때로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까지 했던 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설득하는 과정들이 피곤해졌다.

조직 구조 상 '니 영역도 내 영역도 아닌 Gray area 같은 영역에서 내가 굳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까?'

'이야기를 하더라도 해결하려면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부서들과 지난한 의사소통을 거쳐야 할 텐데 이게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일까?'

'일단 어떻게든 팀 KPI 목표부터 맞추는 게 내 역할이지 않을까?'


시니어가 되고 나름의 짬바가 생기면 좋은 점은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 많은 부분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와 동시에 안 좋은 점은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것.

불필요한 자기 검열과 함께 생각이 많아지고 멈칫하는 순간들이 이따금씩 생기면서 '나 왜 이러지? 뭘 망설이는 거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했다. 처음엔 그냥 기분 탓이거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의 총량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중년이라는 내 나이도 한몫했겠지..ㅎ

퇴사를 앞둔 시점에 회사 동료와 티타임을 가지며 우연히 위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을지님, 그렇다고 하기엔.. 매일 너무 열심히 하시던데요?"
"네 맞아요. 책임감으로 했습니다."


책임감이든 뭐든 어쨌든 직장인이 성과를 내고 팀목표를 맞추면 그만이다.

헌데 난 에너지를 책임감으로만 꽉 채워서 일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책임과 권한과 자율과 보상과 고통 등이 버무려진 내 마음을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 안에서 온전히 잘 다스리고 싶어졌다. 언제부턴가 일의 재미를 잊은 채, 부여된 임무와 역할에만 충실한 Goal 잡이가 되어있던 나를 돌아보며 이런 생각에 다다랐다.

'내가 좀 더 재밌게 더 많은 부분을 기여할 수 있는 스테이지를 만들어가 보자. 그게 언제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싶은 2024년

우리는 언젠가 자의든 타의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에겐 아직 까마득한 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진지하게 고민 중인 시기일 수 있는데 시기의 문제일 뿐 모두에게 다가올 일이라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조조정 소식이 들리는 살얼음판 같은 시장에서 왜 굳이 지금이냐고 묻는다면, 내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차피 내 계획대로 될 리가 없을 테니ㅎㅎ 내가 바라보는 view에선 오히려 내 경쟁력을 시험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도 생각한다. 이젠 버티고 생존하는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성장을 같이 해야 살아남는 시장에서 우상향 그래프를 위해 함께 뛰어줄 인재가 필요한데 즉시 전력감의 시니어를 원하지만 이들은 늘 연봉이 부담이다.


그래서 난 올해 파트타임 형태로 몇 군데 회사와 일을 하는 게 목표다.


자랑스럽지만 부끄럽게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스타트업씬에서 여전히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그간 경험했던 실무 역량과 팀 매니징을 다양한 도메인과 넓은 범위에 쓰임새로 쓰이고 싶은 맘이 크다.

문제는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기업이나 조직, 프로젝트 등이 있어야 하는데 개인 브랜딩이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게 함정..ㅎㅎㅎ ㅠ  (지금까지 저와 일했던 분들 중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면 주변에 추천이나 게시글 공유라도 부탁드립니다..ㅎㅎㅎ) 

직장 다니면서 틈틈이 퍼스널 브랜딩 잘 관리하시는 분들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부럽다.


회사와 동료들에게 감사를, 나에겐 용기를

심각한 저성장 시대의 얼어붙은 채용 시장 속에서도 회사(리멤버)는 성장했고, 특히 하반기엔 창립 10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건 진짜 그야말로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앞선 족적으로 그간의 많은 노고와 헌신으로 쌓아놓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분들께 진심 어린 박수와 경의를.


특히 부족한 날 믿고 잘 따라준 팀원분들, 늘 함께 전사 목표에 최우선 얼라인되어 자기 일처럼 힘써주신 채용사업실 팀리더님들, 나에게 늘 최고였던 채용사업실장님, 높은 인재밀도와 건강한 조직을 위해 늘 애쓰는 피플팀, 그리고 절대적으로 외롭지만 그 만큼 리스펙 하는 CEO 재호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주니어 시절 난 내가 경험이 축적되고 연차가 많이 쌓이면 일이 쉬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만 어려워진다. 늘 익숙지 않은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의 연속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쉽지 않으니 나에게 주어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면 나에게 오지 않았을 테고 난 문제를 푸는 과정 속에 요~만큼씩 성장한다고 믿는다.


내가 나에게 월급을 주기로 했으니 이제 24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분간은 그동안 가슴속 체증처럼 묵혀두었던 교육 커리큘럼부터 하나씩 리뉴얼해 나갈 예정이다. 외부 강의나 기업 교육들도 부지런히 다시 해볼 생각이다. 당분간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의 절반도, 아니 최악의 상황에선 0에 수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불안감과 절실함으로 초사이어인이 되는 미래의 나를 믿어본다ㅎㅎ 홀로서기 실패하면 다시 또 구직활동 해야지.. 별 수 있나..


이걸 쓸까 말까.. 고민 많이 하다 결국 남기는 글  

녹록지 않은 팀목표를 3개월 연속 달성했다는 것 외에 23년 한 해 동안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가 있다면..

K-조축에 몸담고 있는 팀에서 시장기 축구대회 우승과 K7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는 것 (올해부터 K6로 승격!)

이게 내가 위에 쓴 글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지만.. 어지간히 자랑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어 여기에라도 남기고 싶었다ㅋ 끝


우리 모두 Good L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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