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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Mar 26. 2018

연인 사이에만 이별이 필요한 건 아니야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밍기적 밍기적, 변함없이 잉여로운 퇴사 생활을 보내고 있던 목요일 오후 2시. '드르릉 드르릉' 할 일없이 뒹굴던 핸드폰이 오랜만에 요란하게 울어댔다. 퇴사 후 누구에게, 특히 이 시간대에 연락 올 일이 없던 차라 나는 반가운 마음에 잽싸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C양이었다. 발 빠른 이전 동작과는 상반되게 머뭇거리며 이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잘 지냈어? 어쩐 일이긴 보고 싶으니까 전화했지. 요새 어떻게 지냈어?"


형식적인 내 말투와는 다르게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나는 간단히 대답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그녀의 근황을 예의상 물었다. 그리곤 정말 어쩐 일이냐고 그녀가 전화한 의도를 다시 한번 캐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목적없이 전화하는 부류가 아닌지라. 최근 몇 년간 그녀가 나에게 전화했던 건 수년 전 그녀의 결혼식, 그리고 작년 아이 돌잔치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겐 필요에 의해서만 나를 찾는 사람, 필요에 의해서라도 내가 찾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우리 한 번 만나야지. 다음 주에 시간 돼? 내가 너 사는 쪽으로 갈게. 너 어디서 산댔지?"

 만나자는 그녀의 말에, 그것도 친히 우리 동네로 온다는 말에 잠깐 갸우뚱거렸다. 다음 주면 내 생일, 혹시 이것 때문이었나 싶어 조금은 미안해하려던 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 이제 우리 애 어린이집 보내잖아. 오후 3시까지는 자유야!"

 그녀의 해방감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꽤나 육아에 지쳐있었을 그녀의 나날들이 잠시 안타까웠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어떠한 말에도 내 생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예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나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이번 주 본가에 가서 언제 올지 모르니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해보자고 만남에 확답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사실 C양은 오래전부터 내가 이별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 풀지 못한 숙제 같은 친구다. 그녀는 대학생 때 대여섯이 우르르 몰려다니던 동기 중 한 명이다. 여럿이서 어울릴 때는 몰랐지만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고 일대일로 만나면서, 연애나 공부가 아니라 일이나 결혼, 미래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친구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구나.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구나.  


 20대 중반의 그녀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끝이야, 아무도 안 데려가요. 일적으로 알게 된 여자가 있는데 얼굴이며 능력이며 진짜 괜찮더라고, 그래서 오빠 친구 소개해주려고 나이를 물었는데 서른둘이더라. 아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딱 하나, 그 나이가 너무 걸려."


 매번의 만남에서 내가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생겨났다. 그 자리에선 그냥 흘려듣거나 가볍게 여겼던 말들이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맘속에 그득히 들어차 더 이상 흐르지도 못하고 고여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 관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끊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에서 알게 된 사이가 아니라 오래된 친구이기에 더욱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 조건 없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린 사람들. 함께한 순수의 날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함께 어울렸던 다른 친구들을 저버리는 일이 될까 봐, 10년이라는 세월의 정 그 끈을 차마 놓을 용기가 없기에 관계를 포기하는 대신 가면을 써버리고 말았다.


 이제 나는 그녀가 딱 하나 마음에 걸린다는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녀를 만나 또 무슨 말을 들을까 두렵기도, 가면을 쓰고 누구를 만나는 일에 지치기도 했다. 할 수 있다면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임이 분명 하나, 나에게도 딱 하나 걸리는 게 생겨버렸다. 바로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처절한 삶인지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아이를 낳은 지인들을 통해 대충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나와의 만남이 단순한 자유시간이 아니면 어쩌나, 엄마라는 역할이 아니라 친구라는, 여자라는 역할을 다시 되찾는 첫 시작이면 어쩌나, 쉽사리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앞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에 잠겨있을 때 나는 문득 J가 떠올랐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로 지내던 20년 지기 J와 절교한 일이.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우리의 사이가 틀어진 건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J는 갑작스레 뇌종양으로 쓰러진 오빠를 돌보느라 가장 중요한 고3 시기를 암흑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사실 이것도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점점 외골수처럼 변해가는 그녀와 8시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전해 들을 수 있었던 아픔이었다. 친구들이 너무나 미웠다고,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었다고 혼자만 간직하던 슬픔을 털어놓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 숙인 죄인이 되었다. 미안했다고 알아보지 못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고 진심을 다해 사과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라는 죄인은 그녀가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모든 원망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너도 없었어. 너 내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그게 무슨 친구야. 난 그때 이후로 아무도 내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아무도."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가 컸으면 그 밝던 아이가 저렇게 되었을까. 나는 사죄하고 또 사죄하며 늦었지만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었다.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그녀에게, 대부분의 시간은 잠수를 타고 연락 두절인 그녀에게 언제나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또 죄인이 되고, 연락하고 만나고 또 죄인이 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그 레퍼토리 그대로 변함없이 흘러가던 때 내 참을성도 바닥이 나고야 말았다.

  

"야, 이제 진짜 그만 좀 해라. 언제까지 그렇게 피해 의식 가지고 살래? 나도 그때, 고3 때 아버지 사업 망해서 죽을 생각까지 했었어. 학원비 밀릴 때마다 선생님들한테 죄송하다 사정하고 엄마한테 학원비 좀 먼저 마련해주면 안 되겠냐 사정하고, 그러다가 학원이고 나발이고 혼자 안 되는 머리로 집구석에서, 내 방 하나 없는 그 집구석에서 대학 가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고. 너도 몰랐잖아. 그때 나한테는 누구 있었는 줄 알아? 나 지금도 등록금 때문에 일주일에 과외를 6번씩 뛰어. 세상 너만 힘들게 사는 거 아니야. 다들 꾸역꾸역 버티면서 사는 거라고!"

 

 오락가락 비가 쏟아지고 멈추길 되풀이하던 스물세 살의 여름날, 나는 J에게 참아왔던 이야기를 소나기처럼 퍼붓고선 등을 돌려버렸다. 이 관계를 위해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들진 않았다. 다만 그녀를 두고 오는 게 23살의 J를 두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처음 유치원에서 만났을 때 그 어린 꼬맹이를 두고 오는 것 같아, 2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고무줄 하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땅따먹기 하며 캉캉 뛰어다니던 J가 바로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라는 추억들이 두 눈으로 아려왔다.   


 그렇게 한 6년쯤 그녀를 완전히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코흘리개 시절 J와 함께 어울리던 옛 동네 친구에게서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 얼마 전에 강남역에서 J 봤잖아. 걔 글쎄 도를 아십니까 그거 하고 다니더라. 왜 있잖아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 같은 거  믿으라고 붙잡는 사람들"

"뭐라고? 야, 설마 아니겠지. 걔 그리고 기독교잖아. 너랑 같은 교회 아니었어? 잘못 본 거 아냐?"

"너 말대로 10년 넘게 같은 교회 다녔는데 내가 걔 얼굴 하나 못 알아볼까. 진짜 J였다니까. 몇 년 전부터 교회도 안 나오더라니, 진짜 나도 안 믿겨서 한참을 봤어."


 그날 밤, 너무 오래되어 먼지 쌓인 그녀의 이름을 핸드폰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전화를 걸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그대로 그 번호를 지웠다.


 '다른 인생이지 틀린 인생이라 말할 자격이 지금의 나에겐 없어. 미련 갖지 말자. 다 저마다의 삶이 있는 거야. 이 또한 그녀가 선택한 인생인 거야.'

 피를 나눈 가족도 한 평생 믿었던 그녀의 하나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제 와 감히 내가 할 수 있다 자신하지 못하였다.       


 '그래, 연인 사이에만 이별이 필요한 건 아니야.' J와의 일들을 곱씹어 보니 지금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선명해졌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관계라면, 만남의 의미가 이미 퇴색되어버린 관계라면 과감히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가지, 내가 J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일찍 솔직해지지 못했다는 것. 그녀에 대한 배려라 여기며 애써 감춰왔던 내 감정들, 그 복잡 미묘한 마음들을 한 번에 폭죽놀이하듯 맨 마지막에 터트려 버린 일. 그런 실수를 C양과의 관계에서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을 알려거든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보다 그 사람이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J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C양에게 한 번도 제대로 나란 사람을 알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겁쟁이처럼 피하거나 숨지 말고 최소한 누구와 이별을 하던 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수많은 고민들을 뒤로하고 며칠 뒤 늦은 저녁, 나는 C양에게 메시지 한 통을 남겼다.


'다음 주 화요일 12시, 시간 되면 같이 점심 먹자.'

 평화로운 평일의 런치 타임, 이 만남이 오랜 친구와의 이별이 될지, 그녀 앞에서 써오던 내 가면과의 이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동안 담아두었던 말들을, 나라는 사람을 하나씩 꺼내놓을 생각이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소나기가 아닌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혹시라도 다시 스무 살의 그녀를, 그때의 우리를 만날 수 있길 바라며.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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