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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May 19. 2024

그가 신발도 옷도 없던 이유를 알았다

퀴블러로스 이론 5단계

차라리 화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덜 서글플 때가 있다. 남편도 그랬다.


남편의 현재 상태를 알려야 할 것인지 아닌지는 고민이 아니었다. 그에겐 치료가 급했기에 본인의 치료에 대해서는 알고 시작하는 게 낫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서 진단소견을 들었으니 환자에게 전달할 사람도 나밖에 없다.


단, 오늘 하룻밤이라도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잠들게 하고 싶었다. 아니, 병원이라는 곳은 숙면하기엔 이미 편한 공간은 아니지.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바이탈체크며 채혈을 해가니 밤이라고 숙면을 할 수는 없다.  하룻밤이라도 덜 불안한 상태로 자게 하고 싶었다.

응급실과 집중치료실을 거쳐 병동으로 온 남편이 제대로 먹은 병원밥이 아직 다섯 끼도 채 안되었다.


남편도 담당과장님 면담 일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묻지를 않았다. 두려운 결과가 나올까 회피하고 싶은 것일까?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치료받는 걸 권유했다고만 둘러댔다.

본인 상태를 예감하는 것인지, 아님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말이 없더니 발을 보여준다.

험한 시간을 지나온 만큼 그 흔적이 남은 발이다.


 연락이 안 되었던 한 때, 그가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걱정도 했었다. 어디서 어떤 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제발 살아있으라고, 부디 아프지 말라고 모순된 바람을 품었었다.

가족력이 있는 데다 술병을 끼고 살던 사람이 건강할 리가 있나.


" 어제부터 발등이 부었어. 이거 봐. 왼쪽이랑 발등이 다르지?"

남편 말대로 왼쪽과 다르게 부종이 있다. 어디 부딪힌 적이 없냐 물으니 그렇단다. 눌러봐도 아프지 않단다.

아들이 아픈 곳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말하는 듯하다. 내가 보호자이고 간병인이니 그럴 수밖에.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 회진 때 물어보자 했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회진이 있으려나? 없겠지.


불안으로 이불을 덮고 뒤척이는 밤이 지나간다.

이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계시는 걸까?


내가 바라는 선한 길은 남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생겨서 표적치료제로  차도가 있고  온 가족이 이제부터라도 함께 살아가는 것, 결신을 하고 믿음생활을 함께 하며 영혼을 구원받는 것,

더 욕심을 내자면 완쾌가 있고 그동안 주지 못한 아빠사랑을 딸, 아들에게 맘껏 베푸는 것.

더 바람을 품자면 소소하게라도 경제활동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것.

너무 야무지고 먼 꿈일지라도 나는 그런 꿈을 꾸고 싶다. 이런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꿈이 되어가는 밤이다.

내일이면 진단소견을 얘기해줘야 할 텐데 어떻게 얘기할까.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려 병실 밖으로 나왔다.

시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소견 내용을 전달하고 월요일에 퇴원할 거니 태우러 오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오빠에게도 전화했다.

도청소재지에 있는 대학병원보다는 집에서 5분 거리의 대학병원이 통원이나 입원 치료가 수월할 것 같았다. 입원치료를 하더라도 잠깐씩 집에 다녀올 수 있으니 그 편이 낫겠다.

담당 과장님은 같은 학회에 속한 멤버 중 각각 두 군데 병원에 계신 분 이름을 알려주시고 그분들께 진료받기를 추천하셨다.

오빠에게 추천받은 교수님 이름을 알려주고 월요일에 퇴원하면 최대한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다.


그리고 또 늦은 시간이었지만 직장 오너에게도 전화를 드려 남편의 상태를 알렸다. 더 이상 근무가 어렵겠다고 퇴사의 뜻도 전달했다.

그분은  상황에 따라 근무가 가능하게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치료에 최선을 다하자며 기도로 함께 하시겠다고 나를 격려해 주셨다. 이렇게 귀한 분을 만나다니 참 감사했다.




아침 식사가 당뇨식으로 어제와 다르게 나왔다.

그동안 굶어서일까? 남편은 식사와 간식에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 불평하는 그를 달래서 약 먹어야 하니 식사를 하도록 했다.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보고 오겠다고 달래고 식후 약까지 먹였다. 어젯밤 부종 있던 발이 생각났다.

당뇨식과 연관이 없지 않을 것 같아서 문의를 했다.

당수치가 기준치보다 조금 높은데 그 보다 신장기능 검사수치가 더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발에 부종이 생긴 것이라고 저염식으로 식사하고 칼륨이 많은 음식도 줄여야 하고...


위장출혈 다음으로 부종을 동반한 신장기능 이상이 두 번째 증세였다.

앞으로 다른 증세가 동반될 텐데 표적치료제는 언제부터 시작될는지, 그전에 남편에게 본인 상태를 알려야 한다.

병실은 조용했다. 중병인 분은 없었다. 창가 쪽 급성 췌장염 환자가 남편 다음으로 중병이다.

부종의 원인을 먼저 알렸다. 그리고 암소견이 나왔다고도.  차마 말기암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얘기를 전하고 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암소견이 있다는 말을 전화로 처음 전해 들은 그때 나처럼 남편도 그럴 텐데...

아무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화장실 가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이 병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 나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적치료제 치료는 그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 듯했다.

감정의 쓰나미를 어떻게 분해할 것인가.

내게 등을 돌리고 오래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을 응시한 것뿐이지 그 눈엔 지난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겠지.




퀴블러로스 이론에 의하면 충격 후(혹은 죽음에 이르는) 심리반응으로  다섯 단계를 말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부정단계는 충격으로 인한 심리적 완충작용을 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 어떤 부정의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침묵이 부정단계인 걸까?

소견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2단계 분노가 곧바로 왔다. 남편이 분노할 대상이 누구였겠나. 바로 나 밖에 없다.

아니, 한 명 더. 어릴 적 친구다.


남편이 6년 전  말없이 집을 나간 후 갔던 곳이 어릴 때 한 동네 살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고향  나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뒤 터를 잡고 사는 곳이 바로 병원과 멀지 않은 곳. 남편 친구가 사업실패 후 교소도에 수감, 출소 후 터를 잡기 시작했을 때 인력사무소에 나가게 됐는데 그때 남편이 합류했다고 한다. 이 얘기들은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 친구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다. 그러니까 남편은 집을 떠나, 아내와 세 자녀를 둔 친구집에서 1년을 얹혀살면서 함께 인력사무소에서 얻은 일자리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남편이 그나마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 집에 왔던 때이다.


그러다 친구가 근처에 땅을 임대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남편 혼자 건설노동자 일을 계속했고 계속 친구집에서 지낼 수 없어서 따로 여관방을 달세로 얻어 나왔고 그 뒤로 연락이 뜸해졌단다.


남편은 그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화를 불같이 냈다. 그에게 화를 낼 만한 어떤 명분이 따로 있는지 그 속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큰 소리 한 번 없던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병실에서 전화로 친구에게 화를 내거나 사소한 일로도 내게 짜증을 냈다. 그런 그와 맞대응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기도하고 찬양을 듣는 수밖에.


바뀐 당뇨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두 끼를 금식했다. 간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애가 탔다. 항암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니 밥을 굶어서는 안 되는데.

두 끼를 굶었다고 하니 일반식으로 변경된 오더가 나왔나 보다. 일반식이 나오자 그제야 밥도 약도 먹었다. 부종은 여전했고 기본 처방외에 항암에 관한 약은 고향에 있는 병원으로 전원 해서 시작하기로 했다.


주일이 되었는데 외출을 할 수 없어 복도를 사이에 둔 빈 병실을 찾아 허락을 받고 혼자 예배를 드렸다.

남편은 친구에게 뭔가를 부탁하면서도 계속 퉁명스러웠다. 남편이 머물던 숙소에 가서 짐을 정리해서 병원으로 갖다 주기를 부탁했다.

많은 짐을 다 가져올 수 없으니 당장 필요한 것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친구 집으로 가져가서 보관하라고 했다.


주일 늦은 오후 남편 친구에게서 짐을 병원 현관 앞으로 가지고 오겠다는 전회가 왔다. 짐 가지러 들른 숙소의 주인 얘기를 전화로 전해주었다. 그제야 남편이 신발도 옷도 없이 구급차를 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편은  3월부터 일을 거의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 간신히 일하고 나면 4~5일을 쉬었단다. 그때부터 술도 담배도 모두 안 먹었단다. 일 나가는 횟수가 거의 없으니 숙박비도 밀리고 방을 들여다보면 음식도 먹은 흔적이 별로 없고 매일같이 쌓이던 술병도 없고.

괜찮냐 물어보면 말은 괜찮다고.

그때가 딸 새 학기 책 값을 마지막으로 보내주고 연락을 받지 않은 때이다.

그러다가 5월 초부터는 두문불출 모습도 보이지 않고 하여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하면 간신히 대답은 하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었는데 고양이가 자꾸 남편 방 앞에서 바닥을 핥다 도망가고  하기에 무슨 일인가 바닥을 살펴보니 검붉은 얼룩이 있더란다.  다시 노크를 했단다. 기척이 없더란다. 큰 일이다 싶어 119에 신고를 했단다.

강제로 문을 열고 보니 속옷만 입은 남편이 온통 피범벅이 된 바닥에 누워있더란다. 그 피가 방문 앞 얼룩으로까지 번져 있었던 것.

바로 구급차에 태우려 하니 남편이 구급차를 타지 않겠다고 버틴 것. 강제 이송은 규정상 할 수 없는데 이대로 그냥 두면 치명적인 일이 발생할까 하여 112에 신고하여 경찰 출동. 설득하였으나 실패. 버티는 걸 강제로 제압하여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이송. 남편은 위장출혈로 엄청난 양의 피를 쏟고 간성혼수로  섬망증세가 극에 달했던 것.


이 말을 전화로 전하면서 친구가 밀린 방세와 청소용역업체 방청소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숙소주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남편이 삶과 죽음의 고비에서 삶으로 발  한쪽을 더딘 덕분에 우린 보호자도 없는 곳에서 객사했을 남편을, 살아서 숨을 쉬는 남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너무 가슴이 저민 듯 아파서(이렇게 간단한 말로 함축이 다 될까 싶지만) 숙소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도 건넬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충만할 듯한 5월 중순, 거기에 걸맞지 않은 한 남자가 5월을 붙들고 버텨보겠노라고 사투를 벌였던 그날을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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