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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un 28. 2019

쇠와 기계를 만지는 여자들 (전편)

여자도 제조업계에서 일합니다.

 "네가 남자였다면, 회사를 계속했을 텐데." 아빠는 아쉬운 목소리로 종종 말했다.    


 나는 딸이다. 제조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를 보기 정말 정말 어렵다. 우리 아파트형 공장 단지 안에도 단순 조립이나 제품 검사를 하는 여자들은 많다. 일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강제 동면을 위해 사라지곤 하지만. 그러나 캐드로 도면을 그리거나, 기름 냄새나는 현장 안에서 일하는 여자는 드물다. 거래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도 10곳 중의 2곳 있을까. 있어도 1명, 많으면 2명. "여자 금형 설계사는 처음 뵙네요."라는 말을 우리 회사에 와서 나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들었다. 저도 제가 처음입니다만. (글쩍)


 나도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아빠가 끌고 들어왔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여자인 내가' 어떻게 공장에서 일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다른 대학 동기들은 깨끗한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나도 예전에는 컴퓨터 앞에서 조용히 엑셀에 숫자를 기입하고 있었는데. 왜 나는 지금 여기서 윙윙~~ 쿵쿵!! 소리를 들으며 캐드로 선을 그리고 있는가. 왜 나는 지금 공장 현장 안에 있는가. 왜 나는 여기서 방진 마스크를 끼고, 드라이버로 볼트를 돌리고, 흑 착색 후에 묻어 있는 검은 기름을 걸레로 닦고, 사포로 금형 표면을 문지르며 광택을 내고, 조각기로 금형에 글씨를 세기고, 그놈의 0.01 공차가 뭐길래 이렇게 공들여서 조립하고, 박스에 테이프 질을 하는 것인가. 이러고 있었다.      





 손에 까만 기름이 낄수록 내 마음도 까맣게 찌들고 있었다.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였다.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나는 이 일이 너무 싫어. 토요일에는 당연히 놀아야 하는데 나는 회사에 있어. 우울해. 그렇게 꾸역꾸역 출근했다. 공장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손은 꽤 야무졌다. 0.01mm 공차로 그러니까 머리카락 두께 정도로 조립이 뒤틀려 있는 금형의 틈을 손끝의 감각으로 찾아냈다. 볼트로 묶인 각각의 금형이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어떠한 틈을 주지 않고 꼭 맞췄다. 그리고 금형에 스크레치가 생겨도, 본연의 모습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황동이나 알루미늄은 소재는 물러서 살짝만 박아도 푹 파이곤 했다. 그럴 때는 스크래치 위에 용접하고, 용접하지 않은 면과 단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오일 스폰과 사포로 살살 밀어서 복구시켰다. 게다가 나는 공간 감각이 좋았다. 머릿속에서 제품 형상을 3D로 오른쪽 왼쪽 앞 뒤로 굴리면서, 2D로 캐드 상에 구현할 수 있었다. 적고 보니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나는 힘도 좀 강하다. 금형이 담긴 박스를 번쩍번쩍 까지는 아니지만, 복부와 양팔에 힘을 팍 주고 들어 올려서 납품하러 다니기도 했다. 헬스장에서 긴 바에 왼쪽 25kg, 오른쪽 25kg을 끼고 데드리프트를 한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니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자는 안 하는 일,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있었다. 그것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었다. 자화자찬 얼쑤! 실제도 칭찬도 받았다. "최대리 일하는 것좀 봐봐. 남자였다면 여기 공장 지역을 휩쓸고 다녔을 텐데." 살짝 애매한 칭찬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들의 결과물이 바로바로 눈에 보여서 잦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와 우리 직원들의 손길을 타고 탄생한 금형으로 캐리어 테이프를 찍어서, 국내 S사와 L사 핸드폰의 부품이나 반도체가 담긴다니! 하며 혼자 몰래 뿌듯해했다. 아빠가 그렇게 S사 핸드폰을 권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S폰으로 바꾸지 않고, 꿋꿋하게 I폰을 썼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은 점점 달라졌다. 퉁명스럽게 거래처 전화를 받던 내가 하이톤으로 약간의 코맹맹이 소리로 차장니임~ 하며 받고 있었다.    


  MCT, 연마, 밀링, 방전은 배우기 싫었을 뿐이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이 업계에서 한따까리하는 여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 전 주임님은 여자다. 주임님은 사상과 조립업무를 주로 하신다. 아빠는 말했다. 열 남자보다 일을 잘한다고. 저렇게 꼼꼼하게 일을 할 수 없다고. 맞다. 주임님 덕분에 내가 일을 잘 배웠다. 아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이 업계에서 이 연봉받고 일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은 열 남자보다 잘하는데, 왜 연봉은 열 남자보다 더 주려고 하지 않는 건가. '이 연봉'에 여자는 만족해야만 하는가. 그런데 전 주임님은 방전 업무도 할 줄 아셨다. 방전 가공은 전류가 흐르는 전극이 가공품에 닿으면, 표면이 녹으면서 전극의 형상이 가공품에 담기는 것이다. 이것도 계산기 뚝딱거리며 거리 값을 계산하고, 예리한 눈썰미로 전극과 제품의 접촉을 살펴야 한다. 전 주임님은 우리 회사에서 2년 전쯤 배워서 하셨는데, 나는 주임님이 불량 내는 걸 보지 못했다. 그랬던 주임님이 갑자기 아파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었다. 나와 아빠는 잡았다. 병가 후에 돌아와 달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일을 잘하고 계신다.    


 우리 회사 맞은편에 자동 선반 가공 집에서도 이 사장님이 직접 선반 가공을 하신다. 선반 가공은 공작물을 회전시키면서 소재의 모양과 크기를 변경시키는 것이다. 롤러나 부쉬 같은 원형의 제품을 만들 때 한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사장님 회사로 선반 가공 요청을 하러 갔었다. 이 사장님이 기계 앞에서 마스크도 안 끼고, 작업복도 아닌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위로 바짝 당겨 묵고, 기계 세팅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었다. 와. 상여자다 싶었다. 아빠 피셜, 이 사장님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회사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맡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그 후에 이 사장님과 종종 여자 화장실에서 만나서 손을 씻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이 사장님이 팔뚝까지 묻은 기름을 씻어내고 있을 때, 내가 물었다. 토요일에 출근하는 거 안 힘드시냐고. 이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저는 일하는 게 제일 좋아요." 와우. 같은 여자라도 나와 이렇게 일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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