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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을 듣지 않고 본인의 길을 가는 사람도 많다

by 돌돌이


내시경을 하고 나서 회복실에선 여러 가지를 설명해 준다. 진료 예약, 수납, 다른 검사 진행, 기타 다른 주의사항까지.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수면(진정) 내시경을 시행했을 때와 비수면으로 진행했을 때는 조금 달라진다. 수면으로 진행을 했을 경우, 보호자가 있어야 퇴원이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사실 동네 병원에서는 보호자 유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개원한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대학병원처럼 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나? 아무튼, 보호자 동반하에 귀가시키고 무리한 운동과 중요한 결정은 당일에는 시행하지 않도록 교육한다. 술에 취한 채, 잠에 취한 채로 서류에 서명하는 직장인도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되니까.



사실 내시경 전담교수님이 바로 리딩을 넣어서 내시경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조직검사를 했거나 추가적인 검사를 했다면 외래에서 담당 교수님에게 설명을 들어야 한다. 담당 교수님이 병변을 보는 게 다를 수 있고, 조직검사 결과 또한 알 순 없으니까. 위 수술을 하고 내시경을 주기적으로 받는 수검자들도 많은데, 그들이 하는 걱정이 이해가 된다. 암이 또 재발하진 않았는지, 다른 무언가가 없는지 걱정하는 것이다. 조직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내시경 검사를 설명하는 것은 담당 의사의 몫이지만 걱정하는 그들에게 조금은 안심을 주기도 한다.


[오늘 조직검사는 없었습니다.]


보통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눈치 있는 분들은 대부분 알아차린다. 특이사항이나 검사할 병변이 보이면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조금은 안심해도 될 테니까. 회복실을 돌아가면서 보긴 하지만, 나는 주로 주의사항을 크게 여러 번 설명하는 편이다.


[오늘은 절대, 절대 운전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강조한 이유를 잘 아시죠? 음주운전, 졸음운전이랑 다를 게 없죠. 무엇보다 약물이 뒤늦게 발현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오늘은 대장의 용종을 제거하는 시술을 했기 때문에 대변에서 피가 살짝 묻어 나올 순 있습니다. 그런데 변기가 빨갛게 젖을 정도로 피가 나거나 검은 변이 나오면 바로 응급실을 통해서 내원해야 합니다. 위 내시경을 하면서 출혈이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안전제일. 주의사항 밑에 전화번호 있는데 거기로 궁금한 점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어젯밤부터 굶어서 배고프고 지친 건 알지만, 식사는 2시간 이후부터 물부터 드신 후에 부드러운 죽으로 시작하세요. 조직검사를 한 부분이 자극되면 출혈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설명을 하더라도 주의사항을 듣지 않고 본인의 길을 가는 사람도 많다. 외래를 통해 대장내시경을 받는 40대 초반의 수검자가 있었다. 구불결장에서 1cm보다 큰 용종이 있었고 당일 시술을 통해 제거를 한 것이다. 검사가 끝나고 금일은 금식을 해야 하며

무리한 운동이나 사우나와 같은 자극을 주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정도 크기면 입원해서 제거를 하기도 한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응급실로 그 사람이 왔다. 혈변을 본다며 온 것이었다. 나는 그 주에 당직이어서 나갔는데 내가 회복실에서 설명했던 그 사람이온 것이다. 알고 보니 시술을 마치고 저녁에 축구를 하고 거하게 고깃집에서 회식을 했단다. 술은 안 먹었다고 하는데, 알 수가 있나?


납옷만 입다가 내시경실 옷 입으니 편하네.


시술했던 부분을 닫아 놓았던 클립은 빠져 있었고, 그곳에서 출혈이 나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며 사과를 했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장은 연동운동으로 지연출혈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축구를 하고 고기파티를 해서 상처를 들쑤실 필요가 있을까?


p.s - 아직도 그분이 나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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