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옆사람의 나이와 경험

오늘의 깨달음

by 춤추는 곰

나는 언제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이끄는 쪽보다는 따라가는 쪽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보다는 나이가 좀 많은 상대를 만나면 쉬울 것 같았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어린 사람 중에 어른스러운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 중 철없는 사람이 종종 있는 것도 맞지만 어쨌든 나는 확률적인 접근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이가 있으면 뭐 하나라도 더 경험했을 테고, 그렇다면 나는 자잘한 실수와 실패들을 똑같이 반복할 필요는 없을 테니 조금 더 나은 길로 쉽게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뭐든 더 알고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무엇 하나 만만하지 않고 어렵게만 보이는 인생이 조금이라도 덜 고달플 것 같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나이가 같다.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언제 떠올려도 감사하고 좋지만, 그럼에도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그를 답답해할 때가 많았다.


왜 이걸 모르지. 왜 이걸 안 해봤지. 왜 이런 생각을 내가 말해줘야 시작하는 거지. 미리미리 먼저 해 봤으면. 네가 해보고 오히려 날 좀 알려주면 좋았잖아. 이런 못된 생각들을 많이 했다. 너는 왜 굳이 나와 같이 이 모든 경험과 실패들을 지금 이 시점에 겪어내야 하는 거냐는 말 안 되는 원망도 속으로는 많이 했다. ‘나보다 먼저 좀 했으면 좋았잖아. 적어도 나보다 늦는 건 너무 했잖아. 태어난 걸로 따지면 밥을 먹어도 나보다 백 끼니쯤은 더 먹었을 텐데.’하는 억지를 부리면서.


오늘 깨달은 것은, 경험 많은 사람 옆에서 그 사람 경험과 조언으로 어려움을 쉽게 지나가면 그 순간엔 편하겠지만 그건 모두 그 사람만의 시각으로 이미 해석되고 또 재해석된 가공된 답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정보를 미리 얻어 괜찮은 답안을 하나 만들어 외우고, 직접 부딪혀 실패도 하고 책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 저렇게 보완을 해 가면서 나만의 것을 얻을 기회는 놓쳐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안전하게 잘 지나갔다 편안해했겠지.


그와 같이 겪었던 모든 어리석은 실수와 어떻게 해도 포장되지 않는 답답하고 속상한 순간들을, 쓸모없는 시간들로 치부했고 앞으로도 없었으면 했었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네가 미리 다 알고 가르쳐줬으면 나는 그것들이 편향된 시각인 줄도 모르고 심지어 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그렇게 나이만 들었을 건데. 나중에는 미리 알려주는 길로만 가는 것에 익숙해져 혼자서는 모르는 곳을 향해 가는 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두렵고 괴로웠겠지. 근데 너는 차갑고 힘들고 무섭고 아픈 순간들을 나와 같이 경험하면서 그때마다 나만 겁쟁이 바보가 아니라는 조금 이상한 안도감을 주기까지 했잖아. 그동안 우리가 함께 겪어낸 시간들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어려운 순간이 와도, 또 가끔 그 속에서 헤매게 된다 해도, 너랑 같이 길을 찾으며 성장해 가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장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