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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1. 2022

원작을 열심히 좇긴 했지만...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요하네스 로버츠 2021

 어릴 적 오빠 크리스(로비 아멜)와 함께 고아원에서 살아가던 클레어(카야 스코델라리오)는 그곳을 탈출하여 홀로 살아가고 있다. 라쿤시티를 본거지로 삼던 거대 제약회사 엄브렐라가 그곳에서 무언가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라쿤시티로 되돌아간다. 한편 라쿤시티 경찰서에 이제 막 부임한 레온(에반 조지아)은 발렌타인(해나 존 케이먼), 웨스커(톰 호퍼) 등의 동료, 서장 브라이언(다널 로귀) 등에게 무시당하기 일수다. 그러던 중 라쿤시티의 시민들이 이상하게 변화하는 일이 발생하고, 엄브렐라의 연구를 담당하던 윌리엄 박사(닐 맥도너)는 도시를 빠져나가려 한다. 웨스커에게 접근한 의문의 인물을 통해 라쿤시티가 오전 6시 통째로 폭파될 예정임이 알려지고, 엄브렐라의 T바이러스 유출로 인해 좀비처럼 변한 시민들을 피해 클레어와 레온을 비롯한 이들은 탈출을 시도한다. 폴 W.S. 앤더슨이 연출하고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을 맡은 기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결별한 채 새로이 시작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전작과는 다른 노선을 택한다. 앨리스라는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를 내세우며,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선 밑바탕이 되는 설정들만을 가져왔을 뿐인 전작과 다르게, 이번 영화는 원작의 주요 인물들을 데려오고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간다.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방대한 원작 게임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바이오하자드]와 [바이오하자드 RE:2], 그리고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등에서 인물과 스토리라인을 따왔다. 물론 여러 편의 게임을 통해 전개된 이야기를 압축 및 각색함에 있어 인물관계나 사건 순서 등이 달라진 점은 있지만, 기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물론 게임의 주인공 대부분을 팬서비스 수준의 소모품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한 것이다. 더군다나 좀비/호러보단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액션/크리처 장르에 가까웠던 이전 시리즈와 다르게, 이번 영화는 호러에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원작 게임 중 [바이오하자드 RE:2]에서 호러를 구성하는 방식, 즉 약간의 암시를 준 뒤 등장하는 점프스케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며 물량보단 좁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긴장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에서, 원작에 충실하다. 더군다나 라쿤시티 경찰서나 스펜서 저택 등 원작의 주요 공간을 유사하게 재현해낸 미술, 원작 속 유명한 장면들을 오마주한 순간들 등은 원작 팬들에게 나름의 인상적인 순간을 제공할 것이다.

 다만 게임의 호러 방법론을 영화로 이식해오는 과정에서 다소 뻔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 기존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킬링타임용 호러 액션 영화로써는 나쁘지 않은 장면들, 가령 스펜서 맨션에서 홀로 생존하려는 크리스가 어둠 속에서 좀비들을 상대하는 장면과 같은 것이 나름대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2]가 기술상의 제약을 유려한 시점변경 및 카메라 조작방식을 통해 독특한 공포감을 조성한 것과 달리,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호러영화적인 점프스케어를 남발하게 된 리메이크 판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은 역으로 신선함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인상적인 장면은 다른 좀비/크리처 영화, 가령 <R.E.C.>나 <디센트>에서 봤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

 또한 애초에 빈약했던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만,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개입하면서 몰입감과 공포감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게임과 다르게 수동적 관람을 할 수밖에 없는 영화로 같은 스토리라인을 담아내기엔 다소 지루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해결해야 할 떡밥을 빠르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런저런 설정들을 몰아넣은 후반부는 다소 다급하게 느껴진다. 고아원에 있던 클레어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몇몇 편집은 튄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어설프기까지 하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요하네스 로버츠는 비디오용 B급 호러영화들부터 <노크> 리메이크와 <47 미터> 시리즈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호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일정부분 성공할지라도, 이야기를 운용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설픔이 느껴진다. 리부트 된 <레지던트 이블>이 이전 시리즈처럼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게임 원작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시리즈였던 전작만큼의 흥행과 개성은 갖추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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