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2달 간의 반려 일기 (너를 만나고 보내기까지)

나에게는 늦둥이로 태어나 10살이 어린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뭇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았다. 그 아이가 유일하게 마음을 연 대상은 동물뿐이었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작은 생물들. 그들은 인간처럼 함부로 말을 뱉거나 이기적이지 않았기에 동생은 언제나 그들로부터 안정과 위로를 얻었다.


어른이 된 동생은 본가에서 독립해 혼자만의 공간을 꾸렸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우연찮은 기회로 '임시보호'를 알게 된 동생은 임보를 시작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구조된 강아지가 입양자를 찾기 전까지 돌보아 주는 그 일은 버려진 강아지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값진 일이었다.


지난봄부터 동생은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을 차례로 맞이하고 보내었다. 한 녀석이 왔다가기까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의 시간 동안 그 아이들의 임시 보호자가 되어 살뜰히 돌보았다. 몸은 고되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그렇게 그녀의 손을 거쳐서 새 가족을 만난 강아지는 어느새 4마리가 되었다.




어느 날 그중 한 마리의 보호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개를 키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한창 귀여울 꼬물이 시기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 덕에 제일 먼저 입양되었던 아이는, 평생을 함께 할 거라 믿었던 주인에게 버려져 다시 보호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녀석은 달라져 있었다. 커다랗게 변해버린 몸집에 비해, 마음이 자그맣게 쪼그라든 듯했다. 다리 사이로 꼬리를 잔뜩 말아 넣은 채 바들바들 떨었고, 불안한 눈동자를 뚜룩대며 연신 눈치를 보았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 3달 만에 변해버린 녀석을 마주한 동생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에게는 이 보호 중인 강아지있었기에 다른 아이를 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제 손으로 키운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동생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던 터라 선뜻 그러마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녀석이 해외입양을 가기 전까지만 함께 해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고심 끝에 그 아이의 임시 가족이 되어주기로 했다.

주눅이 흘러넘쳐 사진 밖으로 삐져나온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우리집에 처음 온 날, 문 앞에서 쉬이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아이 곁에 놓여있던 작은 짐보따리가 퍽 서글펐던 것도. 찹쌀떡 같이 동글납작한 모습이 귀여워서 모찌라 불리던 녀석에게서는 더 이상 모찌스러운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고 팠던 우리 부부는 녀석이 크게 헷갈리지 않도록 '뭉치'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산책을 위해 데려나간 바깥세상에서 뭉치는 겁에 질려 돌처럼 굳었다.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뭉치를 들쳐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금껏 뭉치가 산책이란 걸 해본 적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집에 온 지 이틀이 지나도록 뭉치는 먹지도 싸지도 않았다. 가족이 없어져서 슬픈 건지, 이곳이 낯설어 무서운 건지 잔뜩 예민해진 녀석은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뭉치는 집 안팎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크게 짖었고, 무엇보다 검은색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남자를 유난히 경계하고 막대기를 보면 발작하듯 도망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우리는 그 아이에게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겠구나' 짐작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속시원이 한풀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뭉치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족이라 믿었던 이들에게 버려진 상처 때문인지 뭉치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했다. 조금이라도 우리 목소리가 낮아지거나 엄한 분위기가 되면 귀를 잔뜩 뒤로 젖히고서 눈치를 보았다. 남편과 언쟁을 하다 언성을 높였던 날, 뭉치는 그 자리에서 오줌 지린 채 굳어버렸다. 온몸에 오줌을 범벅한 채 벌벌 떠는 뭉치를 씻기며 나는 수십 번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뭉치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뭉치가 망가뜨린 볼펜을 들었을 뿐이다.
필요한 건 '사랑뿐'

뭉치가 우리집에 적응을 마칠 즈음 뭉치의 사회화를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이라고 해봐야 개초보인 두 사람의 서투른 노력에 불과했지만, 뭉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안정감이었기에 우리는 뭉치와 함께 있는 동안 '넘치도록 사랑해주자'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잠자리를 바꾸었다. 굴러들어 온 돌이 못마땅할 고양이들에게 안방 공간을 양보하고, 거실 중앙에 커다란 매트를 깔고 셋이 잠을 청했다. 매트 아래 혹은 먼발치에서 잠을 청하던 뭉치는 3일 만에 우리 부부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어린아이처럼 부비적대며 애교를 부리게 됐다. 새벽녘에 자다 눈을 뜨는 날엔 품에 안겨 물끄렴히 나를 바라보는 뭉치의 배와 등을 쓸어주다 다시 잠이 들었다.


밥을 부어주면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뭉치에게 아무도 너의 밥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남편은 간식과 밥을 줄 때마다 '앉아'와 '기다려'를 가르쳤고, 뭉치는 '옳지'라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며 주인의 지시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모든 훈련의 시작이자 기본'이라며 이제 뭉치는 다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기다려를 시전할 때만 볼 수 있는 저 기대감에 찬 표정
너에게 우주를 줄게

우리는 산책 훈련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집을 나섰다. 산책 첫날 집 앞 주차장을 10 발자국 가까이 맴돌던 것을 시작으로 매일 조금씩 차츰 거리를 늘려나갔다. 겁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티거나 포복자세로 도망치듯 돌진하던 뭉치가 고개를 들고 천천히 제 발로 걷게 되기까지 2주가 넘게 걸렸다. 같은 길을 수십 번 반복해서 걸은 이후에야 뭉치는 조금씩 냄새를 맡고 우리와 속도를 맞춰 걸으며 산책다운 산책을 하게 되었다.


낯선 모든 것을 경계하고 과하게 긴장하는 뭉치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우리는 뭉치가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자극에 대한 경험치를 늘려주었다. 차를 타고 내리는 법, 여러 강아지들과 만나고 인사하는 법, 어린아이와 노인, 남자와 여자, 조깅하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까지. 산책하면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대상들과 만나면서 뭉치는 날이 갈수록 외부 자극에 의연해지게 되었다.


주말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았다. 애견 운동장과 수영장,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카페와 식당은 물론 산과 들,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지금껏 뭉치가 경험해보지 못한 곳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집 안의 소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뭉치는 우리와 무수한 곳들을 함께 돌아다니며 자신의 세상을 넓혀 나갔다.

뭉치와 함께 걷던 모든 길들
좋은 이별을 연습하는 법

뭉치가 날마다 멋진 강아지로 변해가는 동시에, 뭉치와 이별할 날 또한 가까워져 왔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우리가 데리고 살까?' 혹은 '뭉치야 너 우리 강아지 할래?'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곧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뭉치에 대한 애정은 커졌고, 이별이 다가온다는 걸 알 리 없는 뭉치는 날이 갈수록 우리에 대한 신뢰를 키워나갔다.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된 동물책 강연에서 수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각자의 반려동물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 질문 하나를 던졌다. '임시보호 중인 강아지를 이제 곧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잘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저희와 정을 떼고 잘 떠날 수 있도록 거리를 두어야 할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이어나간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명료한 목소리로 답해 주셨다. "그럴 필요 없어요.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가기 전까지 더욱 많이 사랑해주세요. '나는 어딜 가서 든 사랑받을 거야'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이요"라고.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지금껏 잘 해왔다는 생각 일부러 정을 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해외 입양 센터 입소를 기다리던 어느 날, 입양 센터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얼마 간 이전 보호소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미 2번이나 버려졌던 그 장소에 뭉치를 다시 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까 두려웠고, 차마 내 손으로 뭉치를 그곳에 데려다 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직접 뭉치의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뭉치는 우리 남편과 많이 닮았다. 가족처럼.
함께 할 가족을 찾습니다

잘 나온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주변 사람들에게 뿌렸다. 우리집에 정말 똑똑하고 멋진 강아지가 있는데, 혹시 주변에 평생을 함께 할 반려견을 찾는 사람이 있냐고. 많은 이들이 뭉치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대부분이 이미 개를 키우고 있거나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낸 후였기에 가족이 되어 줄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수심은 깊어졌고, 뭉치를 바라보다 한숨짓는 날이 잦아졌다.


뭉치를 보내기 일주일 전, 2달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동료 선생님이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었다. 2달 전 시골 할머님이 키우던 강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강아지 별에 갔다며 그 당시 온 가족이 시름에 잠겼다고 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던 개를 보내는 것은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리고 나는 고작 이렇게 짧은 시간 함께 한 아이를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강아지 이야기는 뭉치의 딱한 견생사 전반을 훑는 대서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의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뭉치의 얼굴을 궁금하다고 했다. 자랑스레 건넨 뭉치 사진을 보던 그녀는 이렇게 순하게 생긴 강아지는 처음이라며 왠지 정이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키우던 강아지라면 믿고 맡을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오늘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회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연락을 기다리는 내내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날 보다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된다고 하면 이 아이를 어떻게 보내지, 안 된다고 하면 진짜 이 아이를 어떻게 보내지?'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뭉치와의 이별이었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늦은 밤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어렵사리 집어 든 수화기 건너편으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몇 마디의 대화를 주고받던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의 손을 잡고 뭉치 주변을 팔짝팔짝 뛰며 소리를 질렀다. 


"뭉치야 너한테도 가족이 생겼데!!!!"

너를 보내며

그날 밤 남편과 뭉치를 깨끗이 씻겼다. 따뜻한 물에 목욕을 마친 뭉치는 일찍 잠이 들었다. 잠든 뭉치를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이불에서 빠져나와 뭉치의 짐을 쌌다. 작은 가방에 밥그릇과 산책 줄, 아끼는 장난감들을 챙겨 넣으며 혼자 몇 번이고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2 달이었지만 뭉치와 지낸 시간 동안 뭉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았다. 나는 뭉치의 새 가족에게 뭉치가 어떤 강아지인지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편지는 3장을 빼곡히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서야 비로소 뭉치와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코까지 도롱 도롱 골며 곤히 잠든 뭉치 곁에 가만히 누웠다. 정수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와 발에서 풍겨오는 꼬순내를 한참 킁킁댔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도 모른 채 깊이 잠든 뭉치를 품에 안고 나도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매일 밤 우리 곁에서 잠들던 뭉치


뭉치를 데리고 도착한 선생님의 집은 넓고 아늑했다. 정이 많아 보이는 부부와 입이 귀에 걸린 고등학생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뭉치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다며 많이 먹여서 키워야겠다고, 녀석의 울음소리가 호탕하다며 우리 가족을 지켜줄 수 있겠다고 흡족해했다. 펫 샵 쇼윈도 속 인형 같은 작은 애들을 사고 싶지 않아 개를 들이지 못했다는 두 분은 단단한 근육질에 순하게 생긴 뭉치가 퍽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집 근처 넓게 펼쳐진 공원과 위 아랫집에서 키우는 여러 마리의 개들, 인생 중반부에서 느껴지는 두 분의 여유로움과 안정감이 지난 날 뭉치로 인해 했던 모든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이제 더 이상 크게 짖는다고 구박받을 일도, 생각보다 개가 크다고 버려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뭉치에게 이보다 좋은 가족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나는 뭉치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집을 빠져나왔다.




뭉치를 두고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터진 눈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통곡에 가까워졌다. 아파트 단지 아래 벤치에 앉아 남편 품에 안겨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나서야 울음이 잦아들었다. 남편은 내게 슬프냐고 물었다. 나는 뭉치와의 이별은 슬프지만 뭉치에게 가족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뭉치와 함께 했던 시간 참 행복했다고 앞으로 뭉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서로의 등을 다독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뭉치가 물고 놀던 솜털공 하나가 거실 탁자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추억이 깊게 베인 그리움일 뿐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연히 내 삶에 찾아온 강아지 한 마리는 2달 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받고, 남긴 채 떠났다. 


뭉치야. 그곳에서는 넘치도록 사랑 받으면서 오래오래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살아. 

짧지만 너와 함께 하면서 누나랑 형아 모두 너로 인해 참 행복했어. 

너는 멋진 강아지라 어디서든 사랑받으며 잘 살거야. 사랑해♡


뭉치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앞으로도 너를 그릴개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길을 잃는 것도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