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이 Aug 26. 2024

달콤한 거짓말



그것은 P가 중국 청도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P는 말도 통하지 않고, 구글맵도 켜지지 않는 곳에서 맥주의 향기를 느끼고자 이곳에 왔다. 그녀 곁에는 3세 연하의 남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있었던 일을 적고자 한다.



청도는 맥주로 유명하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칭다오'라고 하여, 맥주를 즐기지 않는 이들도 다 알 법한 이름이다. P는 바로 그 맥주를 맛보기 위해 청도에 왔지만, 혼자 오기에는 말도, 인터넷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를 동행자로 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P의 풍만한 가슴에만 관심이 있었고, 청도 맥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행은 시작부터 이미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밤이 되자, P와 남자는 청도의 바닷가로 나갔다. 도시는 불빛으로 반짝이고, 바다 위로는 달빛이 일렁거렸다. P는 맥주를 한 병 더 꺼내 들고, 달빛 아래서 한 모금을 마셨다. 그녀는 잠시 야경에 매료되었다. 청도의 밤은 그녀에게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녀 옆에서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경도 맥주도 좋지만, P야. 여기서 맥주만 마실 거야?"



P는 그를 쳐다보며 웃었다. "너도 맥주를 마시러 왔잖아. 무슨 말이야?"



남자는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글쎄... 사실 난 맥주보다는 네가 더 보고 싶었어."



P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와, 진짜? 네가 그런 로맨틱한 말도 할 줄 아네. 근데, 알아? 네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자꾸 내 가슴만 보는 것 같아."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변명했다. "아니, 그건 그냥… 어쩌다 보니… 아니야, 진짜 그런 건 아니야!"



P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하하하. 내가 하고픈 말은, 야경이나 한 잔 더 하고 거짓말이나 먹자고."



그들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도시의 불빛이 물결 위에 반사되며 흔들렸다. 마치 청도의 야경이 그들의 삶을 조롱하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무에겐 날이 가물면  물이나 주고, 추우면 밑동에 짚이라도 싸주면 되지만. P의 영혼이 가물고 추울 땐, 청도도 맥주도 야경도 실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와 주고받는 미묘하게 설레는 거짓말은 샘물의 한 모금처럼 환한 빛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P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여기 왜 온 거야, 진짜로?"



P는 잠시 생각하다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맥주 마시러 왔어. 정말이야." 라며 거짓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맥주 말고. 진짜 이유."



P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음, 사실은…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맥주도 마시고, 야경도 보고, 새로운 걸 느끼고 싶었달까?"라고 또 거짓말했다.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랑은 왜 온 거야? 혼자 올 수도 있었잖아."



P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랬잖아. ‘혼자 여행하면 외롭다’고. 그래서 네가 외롭지 않게 데려온 거야. 사실 나도 외로웠고." 이건 거짓말이었을까?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그럼 됐어. 우리 둘 다 외롭지 않게 여행하면 되지 뭐."



그때, P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기 봐! 바다 위로 달이 떠오르는 것 같아!"



남자는 P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둘은 같은 곳을 처음으로 바라보고선, 두 영혼의 썩은 밑동에 따스한 짚이 감싸짐을 느꼈다. 함께함으로써 거짓말이었는데도 따뜻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특별한 게 뭐가 필요해? 우리는 여기에 있고, 맥주가 있고, 야경이 있네."



P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리고 네가 있잖아. 가슴밖에 볼 줄 모르는 너지만, 크크, 그래도 너와 함께하니까 이 밤이 더 즐겁고 특별해."



남자는 장난스럽게 P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우리 좀 더 걷자. 그리고 다음엔, 네가 진짜 왜 여기 온 건지 말해줄 거지?"



P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먼저, 저기 있는 맥주집에서 한 잔 더 하고!"



그들은 다시 걸어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청도의 밤은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야경은 그들의 어리석은 이야기를 밝게 비추고,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맥주 한 병, 야경 한 폭, 그리고 그들만의 거짓말 속 진실이 그들의 청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달빛 아래, P는 문득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일지라도,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의 밤은 어떻게 변할까?



P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거짓말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진짜 같아."



그 말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다시 조용한 파도 소리만이 울렸다.



P는 거짓말을 먹고 마시더라도, 그 씨앗은 반드시 땅에 묻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씨를 땅속 깊이 묻어야만 겨울나무가 급하지 않게 봄을 기다릴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