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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Feb 14. 2024

내 눈에는 보이는 데, 여보 눈에는 안 보여?


우리 신랑은 눈이 좋다. 시력이 1.2 정도 나온다.


그에 반면 나는 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글을 쓰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운전을 할 때는 꼭 안경을 쓴다.


개인적으로 나는 안경이 불편해서 우리 신랑을 부러워한다. 더 나아가서는 딸이 제발 아빠 눈을 닮아라~ 바라기도 한다. 신랑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본인이 눈 좋은 것을 나름 자부심 있게 여긴다. 딸에게도 "아빤 눈 좋잖아!"라며 자주 으스댄다.


그렇게 눈이 좋은 신랑이건만 희한하게 집에서는 내 눈이 훨씬 밝다.


시력은 나보다 두 배 이상 높은데 왜 우리 신랑 눈에는 저 친구가 안 보이는 걸까?






구겨진 옷의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불편해~~~
옆구리가 꼈어!!
나 좀 제자리로 돌려줘~~!!!




나는 행거에서 하부작대며 소리치는 옷의 외침을 듣고 제자리로 돌려놔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이윽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 친구의 덜덜 떠는소리도 들린다.





추워....... 너무 추워.....
얼른 따뜻한 옷장 안으로 넣어줘.......




그럼 나는 앙상하게 뼈를 내보인 옷걸이들을 모아 모아 다시 옷장 안으로 넣어준다.


옷 좀 잘 걸어 놓으라고 옷이 자꾸 하부작 거리며 있는다고 하면 우리 신랑은 나에게 알겠다고 답한다. 딱히 나에게 왜 잔소리를 하냐는 둥, 나를 왜 들들 볶냐는 둥 반항도 없다.


반항도 없지만 행동의 변화도 없다. 늘 똑같은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나는 치우라, 넣어라, 제대로 해놔라 말하고, 신랑은 알겠다 대답한다. 마치 신랑 귀에 미끄럼틀이라도 달려있는 것 같다. 내 말들이 한쪽 귀에서 쭉 미끄러져 내려와 다른 쪽 귀로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것은 사실 약과다. 버젓이 신랑의 눈앞에 있는데도 못 보는 것들을 발견할 때가 제일 당황스럽다.





분명, 신발 신을 때 보라고 신발 앞에 쓰레기봉투를 놔두었건만 보지 못하고 간다.



처음에는 봤는데 신발 신다가 잊어버려서 그냥 간 줄 알았다. 전화해서 왜 안 가져갔냐고 물어보면 신랑 머리는 물음표로 가득하다.



"응???? 거기 쓰레기봉투가 있었어????"



그래서 쓰레기봉투를 신발 쪽이 아니라 문 앞쪽에도 둬봤지만 글쎄,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가기 전에 꼭 일러줘야 한다. 쓰레기봉투 들고나가라고. 일러주지 않으면 정말 못 본다.



나는 이것이 참 신기하다. 왜 보질 못하지? 집에 오면 눈에 막을 씌우고 다니나?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주방에서 콘센트를 써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신랑이 굳이 굳이 비어있는 콘센트를 놔두고 다 꽂혀있는 곳에서 전선을 빼고 있었다.



내가 "왜 거기서 해? 빈 콘센트 있잖아!" 하니까 "거기 콘센트가 있었어?????" 되물었다.





하... 나는 이 사람을 과소평가했다. 우리 신랑은 더 엄청난 사람이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반년이 넘었다. 빈 콘센트가 인덕션과 주방기구 사이에 떡하니 그 자리에 그대로 반년 넘게 있었다. 반년 동안 그렇게 주방을 들락거리면서 콘센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도 물음표로 가득 찬다.


뭐야? 눈 좋은 거 맞아? 근데 왜 못 봐?
진짜 안 보이는 건가? 안 보이는 척하는 건가?
정말 눈에 막이라도 씐 건가? 정말 몰랐다고?
뭘까? 왜 저게 안 보이는 걸까???    


나는 줄곧 우리 신랑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을 통해 그 생각을 무참히 깨뜨린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이미도 배우 인스타 릴스였는데, 세상에 우리 집 동거인처럼 쓰레기봉투도 못 보고 나가, 밖에 있는 택배 박스도 안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빨래 개 놓은 것도 못 보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무려 700만 조회 수를 찍은 영상이었다.


심지어 본문 글 내용이 <나 진짜 물어보는 건데.. 이거 안 보여?>였다.  


아... 그때 알았다. 결혼한 남편들 대부분 눈이 있지만 눈이 안 좋다는 것을.


뭔가 우리 신랑만 유별난 게 아니라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가 다시 부아가 일었다.


아니! 왜 남자에서 남편이 되면 눈이 멀어지는 거야!


결혼한 남편들이 다 못 보는데, 과연 우리 신랑은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기대를 접는 편이 더 빠르려나?


너무 슬프다. 차라리 내 눈이 더 안 보여서 저런 친구들을 보지 않았으면 더 좋을 것 같다.


* 이미도 배우님 릴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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