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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22. 2021

그때 그 식당

별님과 올리베또


추억 속 블로그


합정역 자연식 카페 쿡앤북의 셰프이자 주인장은 내가 '별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블로그 명 '별의 적막' 이웃이었다.  '피카소'에게 '청색시대'가 있듯 내게도 일정한 색채나 단어에 탐닉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그 무렵을 '적막의 시대' 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 내 정서는 매사가 막막하고 적막하단 기분에 쌓여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별의 적막' 은 그때 그 시점에 좋아하는 음악과 책 리뷰 , 혹은 내 감정이 가는 대로 써 올리는 일상의 기록이 주를 이루는 블로그였다. 이와는 살짝 결을 달리하는 '올리베또'는 내 사적인 그것보다는 더 보편적이고도 공적인(?) 성격을 띤 블로그였다. 요리 말고도 북 디자인, 요리 강좌 안내 등 나와는 다른 영역의 삶을 참 열심히 부지런히 도 살아가는 그의 일상에 공감했기에 친한 이웃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잔잔한 일상의 포스팅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올리베또의 블로그에 유기동물 후원을 안내하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그 어느 때의 목소리보다 적극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공감의 폭이 확장됨을 느낄 수 있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그때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때였고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요리학교에 유학을 다녀갔다는 이력 또한 둘 사이를 연결해줄 만한 공감 코드였으리라 짐작된다. 이후 우리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별님! " "올리베또님!" 하며 꽤 다정한 소통을 이어나갔었다. 


쿡앤북의 첫 시작은 합정동 주택가로 옮기기 전 홍대 역 부근 부산한 거리의 한편에 위치한 아주 작은 공간의 카페였다고 한다. 블로그 시절이 2004년, 2005년 무렵이었고 나는 2008년에 한국에 귀국했으나 바로 그를 찾지 않았다. 분주하게 살아가던 2017년의 어느 날 그를 좀 만나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왔고 예고도 없이 합정동 쿡앤북을 방문하게 되었다. 서로를 안 지 약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의 첫 만남이었다.  쿡앤북 올리베또와의 첫 만남의 기록을 인스타에 남겼었는데 그때의 방문기를 여기 옮겨본다.  

     


2017년 9월 1일 


쿡앤북 카페, 올리베또, 오늘 드디어 그를 만났다. 우리 인연의 시작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던 2005년이었을 거다. 간간이 블로그를 하며 그냥 이 사람. 참 괜찮다 잔잔하게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미덥고 멋지다 여겼었다. 딱히 만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10여 년 동안 전화통화 딱 한 번 했다. 내 첫 시집이 나왔다는 걸 알 고사 인본 보내주겠다는데도 사양했고, 두 번째 시집도 마찬가지 번번이 시집을 사서는 자기 나름의 리뷰를 올려주곤 했다 참 인상 깊었고 언제고 만날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마침내 나는 오늘 조심스럽게 그의 식당을 찾았고 마주하게 되었다. 메뉴판 정독 후 메인 요리를 주문했고 요리가 나왔을 때, 예상을 뛰어넘고도 남는 멋진 음식 앞에서 감동했다. 메인 디쉬는 물론이고 곁들인 빵은 물론 접시까지도 따뜻했다. 어느 부분 하나도 정성이 깃들여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치 내가 올 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이건 마치 환영의 음식과도 같았다.


나는 올리베또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부담을 줄까 싶어 모르는 손님처럼 음식을 다 주문해서 먹은 후 자연스러울 때를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간 터였다. 마침내 직원에게 디저트를 시키고 나서야 궁금해 못 견뎌했던 마음을 들켜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슬며시 직원 옆에 서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처음엔 스무고개라도 할 의향이었는데 눈을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올리베또님, 나 별님이예요" (말문이 막힌 채 화들짝 놀라는 그^^)

"아니 왜 진작 얘기 안 하셨어요?" 

등등을 비롯해 그 후로도 한동안 우린 두 손을 잡고 서서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말과 미소를 나눴다.


카페 안엔 유기된 강아지를 거둬 한 가족이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창 밖으론 동네 길냥이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길냥이들 밥을 주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이 되는 풍경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블로그에서 봤던 그대로 향기로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카페였다. 그는 이미 두 권의 요리책을 낸 그 방면의 전문가인데 표정도 눈빛도 담백하고 겸손하다. 아까 그 순간을 떠올리니 그냥 막 기분이 좋아져 급히 포스팅을 한다.           

          


이렇게 썼다. 그 감동스러운 첫 방문 이후에 친구와 선배 및 지인들과 몇 번 더 방문했었다. 아쉽게도 현재 합정 '쿡앤북 카페'는 문을 닫은 상태다. 그리고 그는 지금 현재 강화도에 새로운 디저트 카페인 순간의 순간 카페를 열어놓고 있다.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반짝이는 석양 뷰를 보는 순간의 순간도 좋았지만 나는 어쩐지 '쿡앤북'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제고 다시 돌아와 '쿡앤북'의 문을 열어준다면 바로 달려갈 것만 같다. 아직도 맨 처음 쿡앤북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의 설렘과 처음 먹어본 비건 요리를 담은  접시의 온기가 생생하다. 참 고마운 카페의 추억이며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올리베또를 찾아가 처음 먹어 본 감격적인 비건 요리, 현미 뭐로 시작되는 메인 요리였음 


창 밖에 보이던 길냥친구들 급식소, 친구가 다 먹기를 기다리는 신사적인 냥 친구의 모습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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