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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May 16. 2024

하인리히의 법칙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나의 결혼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Heinrich's Law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수많은 시그널이 있었다.

수백 개의 징후는 물론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도 있었다.

경미 하다기엔 내 인생을 너무 크게 흔들었던 사고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고에는 하나의 원인이 있었다.


 바로 그의 거짓말.






지금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막 결혼을 했을 당시 나는 전업주부였다.

엄마 아빠의 딸로만 살 때, 엄청나게 부유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살았던 나는 너무 당황했다.


남편의 외벌이 수입으로 결혼하기 이전 수준의 소비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대출이자, 카드값, 고정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저축을 한 푼도 못한 채 몇 달이 지나고, 할머니가 시집가서 비상금으로 쓰라고 주셨던 목돈도 남편의 카드값을 갚는데 모두 쓰였다.


(스드메 등 결혼식 준비를 남편 카드로 했었고, 그래서 남편의 카드값이 매우 많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혼이야기가 오갈 때 알게 된 사실인데 반반 부담했다고 생각한 신혼여행 금액이 알고 보니 내가 알던 것보다 많이 컸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좋은 신혼여행을 선물(?)하고 싶어서 나에게 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내 돈으로 내가 간 여행이 어떻게 선물이지? ^^  그래서 카드값이 감당 안되게 많이 나왔던 거라고... 물론 그 돈이 모두 신혼여행에 쓰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 그렇구나 할 뿐)


남는 현금이 전혀 없으니 돈 관리를 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남편 통장으로 들어온 월급은 그대로 카드 할부금으로 나갔으니까.


결혼 후 1년인가 2년인가 시간이 흘러 그가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 오른 월급만큼 전부 대출을 갚으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그가 잠든 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서 가만히 누워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대출을 얼마나 갚았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의 핸드폰 잠금을 풀어 은행 어플에 들어가 봤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처음 보는 2천만 원 정도의 대출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얘가 바람났구나!"였다. 그래서 그의 외도 흔적을 찾아 미친 듯이 그의 핸드폰을 뒤졌다.

모든 메신저와 sns 심지어 메일도 뒤졌다.

모든 은행 어플을 다 들어가 봤다. 외도는 아니었다.

거래처 대표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몇백만 원씩 입금이 되어있는 내역을 확인했다.

너무 이상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냥 그를 깨웠다.


비몽사몽 하던 그는 조금 놀란 듯하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했다.

회사의 거래처 대금을 본인 사비로 메꿨다는 것이다.

회사가 너무 어려워져서 거래처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데, 거래처 사장님들이 자기를 믿고 일을 했는데 돈을 지급받지 못해서 자기를 괴롭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신용대출을 받아 본인이 먼저 그 돈을 줬다는 것이다.

회사 사정이 나아져서 거래처에 대금을 지급하면 그때 거래처 사장님들이 그에게 돈을 돌려주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그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일개 직원이 왜 회사 대금을 대신 납부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네가 그 돈을 왜 대신 내주냐고 미친 듯이 싸웠고 이혼 얘기도 나왔던 것 같다.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난 남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믿었다.


미친 듯이 싸웠지만, 정확하게는 나 혼자 미친년처럼 날뛰었지만, 나는 이혼하지 못했다.

그를 사랑해서였는지, 이혼녀라는 타이틀을 달기가 무서웠던 건지, 그에게 너무 익숙해졌던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주 옛날에 사업을 하다가 큰돈을 날렸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떠나지 않고 가정을 지켰던 엄마의 모습에 그와 나를 대입해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딸의 인생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회사원 하고 결혼한 건데. 결국 이게 나의 운명이었나 싶었다.


(그 새끼를 우리 아빠에 대입해서 생각하다니 아빠한테 미안하다. 근데 그때는 그 새끼가 범죄자인 줄은 몰랐다. 그냥 우리 아빠처럼 성실한 가장이 운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혼할 때 알고 보니 그는 회사에도, 나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단가를 낮춰서 보고하고 비싼 업체를 섭외한 다음 본인 사비로 그 간극을 메우면서 회사에서 일 잘하는 척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진짜 미친놈인 것이 확실^^)


어쨌든 그렇게 그의 첫 번째 경미한(?) 사고를 넘어갔다.




두 번째 경미한(...?) 사고는 내가 취업을 한 뒤 얼마 안 되어서 일어났다.

비슷한 사고였고 금액은 좀 더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난 남편의 첫 번째 사고의 여파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당해 있었다. 이러다 가난한 채로 늙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는 그렇게 어렵던 취업이 너무나 쉽게 쓱 되어버렸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첫 번째와 비슷한 사고를 한번 더 쳤다.


그런데 이맘때 남편과의 기억이 매우 희미하다.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그 일을 뇌가 지워버린 건지, 아니면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거기까지 신경을 못썼던 건지...

금액도, 정확한 상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내가 일을 시작하니까 안심이 되어서 또 이런 사고를 쳤나..? 하는 의구심은 품었다.

 

아마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진짜 우린 이혼이라고 끝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의 두 번째 사고는 마무리되었다.



기적처럼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두 번의 계류유산을 경험한 뒤였고,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내가 난임이라고 확신하던 순간에 찾아온 아기였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아기를 원했던 나는 기뻤다.


그는 승진해서 월급이 오른 상태였고, 나도 이제 직장을 다니니까 우리 둘이 열심히 벌면, 이전에 남편이 쳐 놓은 사고는 잘 수습하고 아이와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진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기가 찾아온 걸 안 다음날,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서방이 8천만 원을 꿔달라고 찾아왔다고.


그래 역시 한국인은 삼세번이지^^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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