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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Feb 09. 2023

점심시간만큼은 오아시스에 가고 싶다

공감 06 l 직장인 점심시간에 필요한 세 가지



오늘도..

우리는 발이 푹푹 박히고, 눈 뜨기도 힘든 바람이 날린다. 태양이 끊임없이 내리쬐는 사막을 지친 낙타를 곁에 두고 그저 앞으로 걷고 또 걷는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나침반 하나만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일단 앞으로... 대화를 하는 순간 뭔가 에너지가 쓰이는 느낌이라, 말을 하는 건 사치이다.


지쳤다. 재미없다…

목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끊임없이 발을 떼다 보니 더욱더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 같다. 건조해서 등에 땀이 나지도 않았건만, 수분이 필요하다. 물만 있으면 지금 이 순간을 더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물.. 물.. 하면서 터벅터벅 걷다가 드디어…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그래 이거야!'


오아시스 주변에는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는다. 그동안 걸어왔던 모래와 다를 리가 없는데도 왠지 여기의 모래는 덜 뜨겁고 쿠션처럼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야 못다 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 조장님 아까 왜 그리 빨리 걸으셨어요?'

'내 뒤에 막내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괜찮니?'

'아까 태양 옆으로 독수리 날아가는 거 진짜 멋있던데 못 보셨죠?'

‘이번에 이 향신료 팔아서 돈 벌면 진짜 큰 망원경을 살 거야!‘


조장님이 이제 목적지를 향해 다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과 대화로 휴식을 즐긴 동료들은 어느덧 재충전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탄력감이 달라져서 탱탱볼인 줄…


새롭게 나아갈 추진력을 얻은 것 같다. 저기 멀리 낙타들이 왠지 키가 더 큰 것 같다. 아니, 동료 모두가 더 키가 큰 것 같다.

 



“팀장님, 어디로 갈까요? 지하? 아니면 밖으로?“

우리 팀은 과거에는 구내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팀의 예산으로 저녁 회식 같은 것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쓸 돈 정도는 예산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다. 그러나 경기침체 우려감의 영향으로 올해 많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경영진들이 자꾸 이상한 말을 한다. 특히, 비용에 대한 통제를 공공연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팀장으로서 많이 움츠려 들게 되었다.


그러나, 팀원의 저 질문은 “나가서 먹어요” 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같음을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구내식당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팀원들의 말에서 오히려 합리화한다.

‘팀원들이 원하니까, 그럼 나가볼까.?’


나도 그리고 팀원들의 일부도 구내식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맛에 대한 부분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무실의 연속, 회사의 연장 같다.‘라는 생각이 그중 하나이다. 사무실을 벗어나 또 회사 사람이 가득한 지하 구내식당을 가는 것은 팀의 공간이 그대로 움직여진 것뿐, 즐거운 점심식사의 여유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최근 몇 년은 구내식당에 심지어 앞사람과 소통을 막아버리는 칸막이마저 설치되어 있어서 더욱 말없이 밥만 먹는 경우가 많았다.


점심시간은 회사의 공식적인 휴게시간이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진부한 얘기이지만 다 먹고살자고 일하는 것 아닌가. 그런 먹는 것과 휴게시간의 교집합인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하루에 있어서 항상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저녁 회식이 현저하게 줄어든 오늘날,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이다.


이러한 점심시간을 우리는 정말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 회사가 힘들면 힘들수록,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면 생길수록, 점심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어떨 때는 혼자 먹는 맘편함과 해방감도 있겠지만, 그래도 같이 다닌다면 어떤 것이 있어야 행복한 점심시간이 될까.


20년 가까운 회사생활에 다양한 회사를 경험하면서 기억에 남는 점심시간은 세 가지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알 듯한 그 세 가지를 언급하자면,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맛있는 음식


오아시스가 아무리 그늘이 있다고 한들, 물이 없으면 아무도 오아시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점심시간의 핵심은 일단 맛있는 음식이다. 오랜 시간 동료들이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지켜본 결과, 음식에 대한 호불호나 양식/중식/한식/일식 등에 대한 선호도는 절대 남녀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냥 개인들의 성향 차이임이 명백하다. 그러니까 음식 선호에 대한 선입견은 금물이다.


세 군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가 이사도 했었기 때문에 수원, 남대문 근처, 을지로입구 쪽에서 그리고 강남 한복판에서 일을 했는데 여기저기 맛있는 것이 많았다. 나는 맛집은 유명한 곳이 맛집이 아니고 오래된 곳이 맛집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의 입맛은 간사해서 맛있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해도 다시 가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된 곳을 찾으면 그래도 평타 이상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찌개를 원할 수 있고, 누군가는 스파게티를 아니면 돈가스를 원할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고 또 그날따라 먹고 싶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점심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종류를 먹더라도 “더” 맛있는 음식이 좋다. 같은 냉면을 먹더라도 - 그게 비록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곳일지라도 - 더 맛있는 냉면집에 가는 게 좋다.  그날따라 그 음식이 땡기지 않았더라도 음식이 맛있다면, '오~' 하면서 음식을 다시 보게 된다.


"저희는 맛있는 거 먹으면 힐링이 돼요."

"뭐가 그렇게 단순해요?"  

"진짜 그래요. 맛있는 거 먹고 있으면 오전에 힘들었던 거 좀 잊을 수 있던데요?"


두 번째, 불편함이 없는 자리


"아, 오늘 저희끼리 가려고 했는데 상무님이 우리 팀이랑 점심 같이 하신답니다."

"네..?“

“네.. 어디로 갈지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점심도 또 똑같은 얘기 계속 듣겠네요."

"그럼 뭐, 맛있는 거라도 사주면 좋겠다."

"근데, 상무님 좋아하시는 곳이 거의 정해져 있어서 기대가 안된다…"

"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다. 높은 상사들이 끼면 아무래도 불편해진다. 아주 높은 확률로 말이다.

‘어? 우리 회사는 안 그런데?’

‘윗분이 끼면 맛난 거 사주고 좋던데?’ 라는 직장인이 있다면 정말 좋은 회사 다닌다고 생각해도 좋다.


상사가 유머가 있고, 후배들과 주니어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길 기대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바뀌길 기대하기는 좀 어렵다. 사람은 잘 안 바뀌니까 내려놓자.(좀 끼지 좀 마세요. 낄 거면 많이 듣고 미소만 지어주세요. 쫌.!)


상사의 합류로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면, 그 불편함을 잘 기억하자.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상사가 되면 반드시 바꿔보자. 윗 분이 되어 맛난 거 사주고 정말 맘 편하게 가고 싶은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의 점심은 모두가 점점 더 즐겁게 되지 않을까.  


세 번째는 즐거운 또는 의미 있는 대화


자, 맛있는 음식이 준비가 되었다. 오늘따라 자리도 편하다. 특별히 불편한 사람이 없고 그냥 편하게 밥 먹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사실 점심시간으로 힐링이 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좋은 점심식사 자리여서 상당한 행복감마저 든다.


사실 이 두 가지가 갖춰지면 자연스레 따라 나올 것이긴 한데, 그래도 가끔 뜬금없는 말을 한다던가 말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점심시간이 되기 위해 한 가지 더 굳이 얘기하고 싶다. 그건 바로 ”즐거운 또는 의미 있는 대화“ 이다.


자리가 편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대화는 피어나겠지만, 그게 꼭 좋은 주제들만은 아니다. 회사의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으레 나오는 얘기들이 뻔하다. 회사 내의 조직 이야기, 부서이동 이야기, 개인별 사생활 같은 가십거리가 주요 주제가 된다. 그런 얘기들에서 박장대소도 나오고 분노도 하고 공감도 하고, 그런 것이 회사생활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기억에 남는 대화는 사실 회사 얘기들이 아니다. 서로의 일상 중에서도 말하기가 부끄럽거나 조심스러워서 아껴두었던 일상의 얘기들이 있다.

‘저는 사실 그림 배우러 다녀요.’

‘어? 나는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

‘오! 그래요? 와. 느낌이 어떠세요?’

그런 얘기들을 나눌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되고, 나중에는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인데도 정말 좋았다’ 라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그렇게 편한 자리가 있다면 최대한 회사 얘기는 뒤로 미루자. 그런 가십거리는 꼭 그런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많이들 하고 또 결국 들리게 된다. 굳이 좋은 자리에서 할 필요가 없는 얘기들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회사생활 점심시간에 맛있는 음식과 편한 자리가 갖춰진 날은 1년에 며칠 안 된다. 그렇게 좋은 요건들을 누리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얘기들을 나누자. 그렇게 되면 심지어 먹은 것이 부실했다고 할지라도 그 대화의 기억이 그 식당을 추억하게 만들 것이다.  




"맛있는 거 먹으면 힐링이 돼요."

"오전에 너무 짜증 났는데, 그래도 점심시간에 좀 나아졌어요."

"아, 그때 그 사람들과 약속한 날이 드디어 오늘이네. 점심시간 30분 남았다. 아..기대가 된다."


이런 말과 생각을 하는 행복한 점심시간이 점점 많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분명히 사막 속의 오아시스가 맞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러한 요건들이 맞는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그래도 한주의 어려움이 잊힐 것이다. 또 그러한 시간이 다음 주에도 계획되어 있다면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새로운 한 주에 대한 걱정과 짜증이 조금 가라앉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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